<최근에 들은 좋은 소식>
어젯밤 10시 35분, 오랜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설거지를 하다가 창밖을 봤는데 엄마랑 닮은 사람이 마스크를 쓴 채 밤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옷차림도 걸음걸이도 얼굴형도 비슷했다. 엄마가 우리 집 앞에 왔다면 당연히 나에게 들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랑 한 달 넘게 통화를 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해서 겸사겸사 전화를 걸었다.
"어~진주야."
"엄마, 뭐 해?"
"그냥 누워 있어~."
"집이야?"
"어, 집이지~. 왜?"
"나 좀 전에 집 앞에서 엄마랑 비슷한 사람이 걸어가는 걸 봤어."
"내가 이 시간에 네 집 앞에 가면 너한테 들르지 왜 그냥 가겠어."
"응, 그렇지."
"저녁은 먹었어?"
"응, 먹었지. 별일 없지?"
"응~참, 언제 너한테 들러서 김치 좀 가져다줄까? 어제 새 김치를 담갔는데"
"저번에 엄마가 가져다준 김치도 아직 남았는데, 있는 거 다 먹고 연락할게요."
"그걸 아직도 다 못 먹었어?"
"응, 그러게~."
"그래, 알았어. 나중에 김치 다 먹으면 말해~."
"네, 주무세요~"
"그래, 어서 따습게 잘 자송~"
"네~"
오늘의 주제가 <최근에 들은 좋은 소식>이라서 고민이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도 최근에 어떤 좋은 소식을 들은 기억이 없어서. 그런데 어젯밤의 엄마와의 통화 내용이 갑자기 떠올랐다. 엄마가 새 김치를 담갔다는 소식.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엄마가 들려주는 소식은 다 내게 모종의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슬픈 소식도, 나쁜 소식도, 실망스러운 소식도 심지어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소식까지도 엄마를 통해 전해 들으면 슬프면서도 슬프지만 않았다. 그런 이야기들은 들으면 실망스럽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하고 귀찮은 일들을 처리해야 할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통해서 들으면 왠지 나는 그 불행에서 한 발자국 정도 비켜서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 새 김치를 담갔어. 가져다줄게."라는 소식은 당연히 나쁜 소식이 아니라 좋은 소식에 속한다. 엄마의 요리는 맛있기 때문이고, 엄마가 요즘 새 김치를 담글 수 있는 기운이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문득 있었다. 나는 엄마만 아니라 할머니, 아빠, 동생들, 반려고양이에 대해서도 이런 의구심을 가질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과연 가족을 사랑하기는 하는 걸까? 사랑이란 뭘까? 어떻게 하는 거지? 만약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는 어떻게 될까? 왜 가족을 생각하면 이렇게 복잡해지는 걸까?"
하지만 나는 엄마를 사랑하는 게 맞다, 는 생각이 오늘 들었다. 나는 엄마가 새 김치를 담갔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기뻐하는 좀 이상하고 웃기고 엉뚱한 자식이다. 엄마가 전해주는 좋은 소식을 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듣고 싶은 딸이다.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울고 안도하고 화내고 짜증 내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이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야겠다. 그리고 어서 남은 김치를 다 먹고 새 김치를 가지러 가야겠다. 아마도 엄마는 내 손에 새 김치를 들려주며 다른 좋은 소식을 또 전해줄지도 모른다. 엄마는 내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