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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별 Jun 16. 2024

잠 못 드는 밤

시 쓰기

7시

해가 뜬 아침은

검은 장막처럼 어두워

어쩌다가 이런 날도 있어

드디어 주검처럼

눈꺼풀 속으로 잠긴다


6시

멀리서 희붐하게 여명

아, 망했어

결국 이렇게 돼 버렸어

사실은 예감했어

이럴 줄 알았어


5시

지친 것 같아

피골이 상접했어

눈 아래가 컴컴해

광대뼈가 불거졌어

이럴 일인가 이게


4시

별 수 없어

오늘은 글렀어

차라리 카페인을 흡수하자

커피포트에 물 올리고

보글보글 끓면

조르륵 커피물을

찻잔에 한가득 부어


3시

비척비척 일어난다

책상 앞으로 가

읽다 만 책을 집어 들어

잠시 멍

마지못해 읽어

하릴없이 읽어

어쩔 수 없이 읽어


2시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소리

어둠을 비집고 내게 스며든다

말짱해지는 정신

반짝이는 눈빛

내 숨소리가 신경 쓰여

점점 더

또렷해져


1시

아직은 아니야

좀 더 기다려 봐

오늘 좀 피곤했잖아

너를 방문할 깊고 조용한 잠

곧 올 거야


0시

눕는다

내가 눕는다

나는 눕고

드디어 알았다

내가 아직

잠들고 싶지 않다는 걸

내가 눕는다

잠보다도 더 빨리 눕고

잠보다도 더 빨리 돌아눕고

잠보다 더 먼저 뒤척인다



자작시  <거꾸로 가는 취침 시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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