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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주 May 08. 2016

[르포] 벚꽃나무가 사그라지는 봄의 기억 2회

조화

기억식이 끝나고 나니 사람들은 크고 흰 천막 텐트를 향해 줄을 지었다. 텐트의 지붕 위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 라고 적혀 있다. 나도 텐트를 향해 줄을 서있었고, 차례에 맞게 텐트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좁은 입구 앞에 다다르자 천막 안으로 깊이 스며든 향냄새가 진동했다. 몇 발자국 더 걸어가니 입구가 좁은 탓에 안보였던 텐트 안 공간이 보였다. 바깥에서 봤던 것 보다 훨씬 넓고 천장이 높았다. 그런데 그 넓고 높은 곳에 영정사진 수백 개가 항상 생기가 돋는 조화 여럿과 함께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영정사진은 대부분 학교생활기록부 증명사진이었다. 증명사진이라서 그런지 사진 속 학생들은 깔끔하고 예쁘게 머리를 정리하고,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가장 학생다운, 어쩌면 앳된 사진이다. 그런 사진들 앞에 사람들은 대부분 사진 속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이다. 어른이 아이의 영정사진 앞에서 국화를 놓고 향을 피우고 묵념을 했다.    

  

분향소를 나오고 나니 교복을 입은 학생 여럿이 분향소를 향해 들어갔다. 갈색 마이를 보니 단원고 학생들이었다. 생존자들이 분향을 하는 것인가 싶었는데 단번에 후배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존자들이라기엔 너무 많은 학생들이었기 때문이다.

분향을 마치고 멀뚱멀뚱 하늘을 쳐다보던 중에 행진 준비를 해달라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갑자기 화랑유원지는 분주해졌다. 깃발들이 하나 둘씩 일어났고, 깃발 아래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줄을 이루었다. 행렬 대형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한 곳에서 커다랗고 흰 인형 9개가 말없이 행렬 앞으로 걸어갔다. 실종자 한 사람마다 특징을 담은 인형들이었다. 인형들은 행렬의 선두를 맡았고, 그 뒤로 세월호를 집어삼킨 바다를 상징하는 파란 천 수십 장이 펄럭였다. “행렬을 시작하겠습니다.” 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커다란 인형들이 발걸음을 뗐고, 바다 물결이 일렁이듯 서서히 행렬이 움직였다. 이 행렬은 대로와 골목을 드나들다 단원고등학교를 경유했다.

행렬을 따라 걷는다. 대로에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갈 때 즈음 단원고등학교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뉴스에서 나오던 그 학교. 행렬의 일부는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들이 걷고 뛰었을 교문 앞 오르막길을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2층으로 올라가니 ‘단원고 명예 3학년 교실’이라는 종이가 벽에 붙어있었다.

복도는 온통 각기 색깔 다른 메모지로 가득하다. ‘아직 살아있지? 조금만 힘내!’ 라는 응원의 문구가 적힌 색 바랜 메모지와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게 지내’와 같은 추모의 문구가 적힌 방금 뜯은 것 같은 메모지 여럿이 공존하고 있었다. 복도에는 생사의 시간이 공존했다.     

교실 안에는 책상마다 다양한 과자와 음료수 그리고 꽃이 올려져 있었다. 꽃을 보니 지난번 단원고에 왔을 때 영만이 형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책상마다 놓인 꽃들을 둘러보시다가 한 꽃 앞에 서서 말씀하셨다. “생화는 여기다 갖다놓지 말자고 했는데...”

“왜요?”

“생화는 계속 관리를 해야되잖아. 조금이라도 관리가 안 되서 시들어져 버리면..... 그래서 계속 살아있는 조화를 놓기로 했었어.” 그리고 어머니는 다급하게 물을 떠다가 생화가 있는 화분에 물을 주셨다.          


칠판은 멀리서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빼곡하게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심지어 칠판 공간이 모자라서 칠판 테두리에도 매직으로 메시지가 써져 있었다.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이쁘다는 말은 대학교 때 해줄라고 했는데...”  
   

나는 이 문구를 마지막으로 단원고를 급하게 빠져 나왔다.      

행렬은 다시 화랑유원지로 향했다. 나는 행렬을 따라가지 못하고 나와 같이 있던 일행과 천천히 화랑유원지를 향해 걸었다. 도착하고 나니 행렬은 흩어졌다. 나도, 행렬 속의 사람들도, 그리고 화랑유원지도 모두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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