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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주 Apr 24. 2016

'고3'이 아닌 '19살'이라 잊을 수 없는 것들.

토요일에 마주친 꽃과 장난감

나는 고3이다. '이우학교'라는 대안학교에 있지만 한국의 고등학생이고, 뭐 꼭 그렇지않더라도 언론인이 되고 싶은 나로서, 도시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은 나로서 대학은 필수이기에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한다. (물론 마음만큼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다만...)

그래서 주말 없이 학교에 나가서 공부를 하다가 온다.

오늘도 버스 시간에 맞춰서 학교로 나섰다. -우리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도보로 약 15분 정도 걸리기도 하고, 버스 배차 간격이 20분이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서 집을 나서는 것이 일상이다.- 집을 나서서 조금 걸어가니 공원 곳곳에 핀 꽃이 보였다. 자그마한 꽃도 아닌, 나무에 탐스럽게 매달린 꽃 여럿. 나는 이 꽃의 이름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꽃을 좋아한다. 지난 어버이 날, 이 꽃을 주워 옮겨다가 부모님께 드릴 편지에 붙여 드리기도 했다. 이 곳으로 이사하기 전에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형형색색의 화려한 조화가 달린 편지를 드려야 했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떨어진 꽃을 주워다가 편지에 붙여서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그 화려한 조화보다 떨어져서 꽃잎 몇개가 없지만 그래도 담백하게 살아있는 꽃을 더 좋아하셨다. 한동안 이 꽃은 엄마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나름 나에게는 의미도 있는 꽃이었기에 사진을 찍고 싶었다. 시간의 여유가 있지는 않았지만 가던 걸음을 멈추고 얼른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핸드폰을 집어 넣는 그 때 문득 생각이 났다. '왜 나는 이 꽃들을 보지 못했을까?' 하지만 물음에 답을 붙이지 않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뛰었다. 



공원을 지나 몇 십 걸음 정도 걸으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온다. 한 갈래는 사람들이 보이는 마을 골목길이고, 다른 한 갈래는 마을은 없고 왕복 2차선의 차도와 좁은 인도가 있는 길이다. 평소에는 좁은 인도로 다니지만, 오늘은 마을 골목길로 갔다. 골목길로 가는 것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버스를 놓칠까 싶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다가 장난감을 발견했다. 서툰 글씨로 '군인차'라고 적혀있는 나무 트럭 장난감이었다. 본드 자국이 남아있었고 테두리가 깔끔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직접 만든 것 같았다. 그냥 지나쳐야 버스를 놓치지 않는데 쉽게 그럴수가 없었다. 특히 글씨를 보고 나니 그럴 수 없었다. 앉아서 사진으로 남기지 않으면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괜한 생각이 들었다. 그냥 눌러 앉았다. 버스를 놓치던 말던, 어차피 버스는 다시 오기 마련이니까.


장난감을 굴려본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놀았을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 한 구석이 흐뭇해졌다. 벌써 이런 마음이 들 나이인가 싶기도 했지만 흐뭇했다. 왜 이 장난감이 여기까지 나와 있을까? 누가 가지고 놀았을까? 군인을 좋아하나? 하긴 나도 어렸을 때는 탱크, 트럭과 같은 장난감을 좋아했으니까. 

5년 전 까지만 해도 내 방 어느 구석에는 수 많은 미니카와 장난감들이 어지럽게 놓여져 있었는데, 지금의 내방은 문제집이나 책 밖에 없다. 장난감이 그립다. 그 많던 미니카는 다 어디로 갔을까 싶다. 특히 내가 가장 아끼던 bmw 세단 미니카의 행방이 그리워졌다. 미니카의 행방이 그리운건지, 정말 장난감 하나만 있어도 행복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그 때가 그리운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군인차 라고 쓰여져 있다. 한적한 동네에서 어떤 아이가 가지고 놀았을지 궁금하다. 아이가 얼른 이 장난감을 찾아야 할텐데...

조급함 없이 천천히 걸어 가는 동안 나는 꽃을 보았고, 어린아이가 놓고 간 장난감도 보았다. 오늘 버스정류장까지 걷는 동안 내가 고3이라서 챙겨야하는 것 때문에 정작 고3이라서 느낄 수 있는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공부 안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도 어쩌면 오늘 걷다가 느낀 것 조차 잊어버릴까하는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오늘 쓴 이 서툰 글을 보고서라도 내가 망각하고 있던 사소한 것들을 다시 기억할 수만 있다면 지금 이 시간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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