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마저 무너뜨린 태풍이었는데 매점 컨테이너는 여전히 공원 한 복판에 건재했다.
저 컨테이너는 내가 6.25. 때 북한군의 총알을 피해 몸을 숨겼던 곳인데, 웬만한 소란으로는 끄떡도 안 하는 아주 든든한 녀석이지.
어디서 구해오는 건지 늘 새 소주병을 들이키며 비둘기에게 말을 거는 사내는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곧잘 했는데, 우리 공원의 명물 중 하나인 그가 최근들어 보이지 않았고 아마 이번 태풍에 비둘기와 함께 하늘로 날아간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삼촌, 여기 이 거미 완전 크다.
나는 거미를 좋아하지 않지만 태풍에도 자기 집을 지켜내는 거미의 억척스러움은 존경해 마다하지 않았고, 매점 컨테이너에 붙은 왕거미를 구경하며 우리는 닭꼬치를 두 개 주문했다.
매점 아주머니는 조카가 귀엽다며 음료수를 서비스로 주셨고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만으로는 모자른 듯해, 매점이 이번 태풍에도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여긴 내 집이나 마찬가지라 고작 태풍 따위에 집이 날아가버리게 할 순 없으니 뭐 못으로 여기저기 못질하고 줄로 칭칭감으면서, 진짜 온몸으로 꽉 잡고 버티는 거에요.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가려는데 조카가 마지막으로 왕거미를 한 번만 더 보고 가자고 내 팔을 잡았다.
아유 우리 딸이랑 또래처럼 보이는데 말도 참 잘하네.
나는 아 하고 웃으며 조카의 손을 잡고 왕거미의 거미줄을 바라보는데, 가만보니 그 주변으로 좁쌀만한 애기 거미들이 꾸물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