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제제무무

by 문독수

두개골이 흔들리는 기분에 잠이 깬 산타는 흐릿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헤이 산타. 여기라고.

허벅지 위에서 싸가지 없는 꼬마 요정이 산타의 수염을 당겼다.

난 정말로 당신이 선물을 나눠줄 자격이 있는 건지 의심돼.

산타는 하품을 하며 이번엔 또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싸가지 없는 꼬마 요정은 산타를 올려다보며 작은 종이 뭉치를 건넸다.

여기 내가 정리한 자료를 보라고. 당신 일처리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말야.

산타는 북극곰 털로 만든 외투 왼쪽 주머니에서 족집게와 돋보기를 꺼냈다. 싸가지 없는 꼬마 요정이 들고 있던 종이를 족집게로 집어 돋보기로 살펴보던 산타는 본인 눈엔 잘못된 것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아니지, 이 늙은이야. 잘못된 게 있잖아. 거기 당신이 정리한 선행 목록들을 살펴보라고.

산타는 선물을 나눠주는 기준 중 하나로 자신이 3천년 전에 정리했던 선행 목록들을 훑어봤다. 친절 바로 밑에 기부라는 단어가 빨간색 엑스표로 덮혀 있었다. 기부는 선행이 분명한데 이걸 왜 빼야하냐고 산타는 물었다. 싸가지 없는 꼬마 요정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기부가 뭔지 알고 거기 적어 놓은 거야? 기부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거야. 아무런 미련없이 뭔가를 순순히 내놓는 일이라고. 그런 일이 인간들한테서 가당키나 할 거 같아?

산타는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기부라는 말은 있지만 실제로 인간의 행동에서는 기부감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미 기부라는 말은 인간사회에서 선행 중 하나로 굳어졌기 때문에 목록에서 아예 빼는 것은 어려울 거 같다고 산타는 말했다.

그럼 어쩌자고? 있지도 않은 일을 한 대가로 선물을 나눠주자는 소리야? 당신 그렇게 한가해? 작년에 선물을 받지 못한 착한 아이들이 몇이나 되는지 벌써 까먹은 건 아니겠지? 순록들 컨디션이 안 좋았다는 핑계는 제발 하지 말아줘.

산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기부에 세부조건을 추가하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게 무슨 순록 수염 뜯어먹는 소리야?

기부로 인정할 수 있는 행동을 찾아보고 그 행동에 대해서는 선행으로 인정하면 되지 않겠냐고 산타는 말했다. 싸가지 없는 꼬마 요정은 자기가 한 말을 벌써 까먹었냐고, 인간 세상에는 그런 게 없다고 역정을 냈다. 산타는 말없이 허공을 쳐다보다, 불현듯 배변이라고 말했다.

뭐? 배변? 설마 똥싸는 거 말하는 거야 지금?

배변이야말로 아무런 대가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산타는 말했다. 모든 인간은 어떤 형태건 상관없이 행동에 대한 개인적, 혹은 사회적 차원의 대가나 인정을 바랄 수밖에 없는데, 배변은 그러한 욕구에서 벗어난 순수한 행동이라고, 그리고 똥은 작물을 재배하는 데 필수이기 때문에 농부에게 배변은 기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산타는 말했다. 허벅지 위를 맴돌던 싸가지 없는 꼬마 요정은 곧 작은 머리통을 끄덕였다.

괜찮은 아이디어야. 할 줄 아는 건 순록들 매질하는 것 뿐인 쓸모없는 털북숭이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생각이라는 건 할 수 있었나 보네.

싸가지 없는 꼬마 요정이 이죽거렸다. 산타는 요정의 얼굴 위에 잔뜩 기부를 하고픈 욕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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