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2월
고슴도치 뒤집으면 무슨 냄새나는지 아나
아니
흙냄새
흙냄새?
어
흙냄새가 무슨 냄샌데
그냥 다 섞인 냄새
사촌형 이어 말한다.
밟히고 파이고 긁히고 묻히고 찔리고 했던 것들 싹 다 섞어놓은 냄새.
나는 고슴도치에게 다가간다. 큰 놈이 모로 누운 채 얇은 숨을 쌕쌕 몰아쉰다. 뒤집어진 배는 연한 분홍색이다. 그 주위로 작은놈들이 가시가 뭔지 모른 채 꼬물거린다.
느지막하게 영천 도착했다. 두 시간 반 걸려 다다른 영천에는 큰아빠가 먼저 온 어른들과 무언가를 깎는지 뜯는지 하는 듯한데 전부가 등짝에 가려 보이지가 않는다. 영천에는 큰아빠와 사촌형이 산다. 명절이면 가장 연장자가 있는 이곳으로 아빠의 형제자매들은 하나 둘 모인다.
니 신기한 거 볼래
옷가지를 벗어 둘 틈도 없이 사촌형이 물었다. 형의 방안에 들어갔는데 저기 침대 맡 탁자 위로 작년엔 없던 수조가 하나 놓여있다. 근데 자세히 보니 수조 안에 고슴도치가 살고 있다.
니 이런 거 본 적 있나.
난 고슴도치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고, 더 놀라운 건 멀리서 봤을 때 가시 등짝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새끼들이 조그맣게 옥시글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여러 마리 키우면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큰 놈 혼자 데려오자니 작은 것들이 눈에 밟혀서 그냥 가게에 놓여있던 것 통째로 들고 왔다고 사촌형은 말했다. 나는 그럼 큰 놈이 암놈인지 수놈인지, 아빤지 엄만지 물으려다 문득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아서 귀엽다고만 하고 말았다.
사촌형이 고슴도치를 기르는 게 놀랄 일은 아니다. 혼자인 성인 남성이 반려동물을 기르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진짜 놀라운 건 큰아빠다. 큰아빠는 고슴도치가 없는 것처럼 여긴다. 진짜 모르시는 것인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불안할 정도로 고슴도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신다. 모두들 저녁 식탁 위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지만 큰아빠의 눈치가 보여 제각각 한 번씩은 쓰다듬거나 기웃거리며 훔쳐봤던 고슴도치에 대해선 아무 말 않고 그릇들만 비우신다. 사촌형은 자리에 없다. 명절마다 사촌형은 저녁을 먹고 들어오곤 한다. 이것에 대해 집안의 그 누구도 뭐라 말을 얹거나 묻지 않고, 사촌형도 큰아버지도 이것에 대해 먼저 얘기하는 일이 없어 사촌형이 없는 명절 저녁은 우리 가족에겐 원래 그런 것이어야만 한다. 그 사이, 술병이 여기서 저기로 몇 번 오간다. 긴장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하다. 나는 누군가 고슴도치 이야기를 꺼낼까 봐 한쪽으론 조마조마하면서도 반대쪽으론 될 대로 되라는 술기운으로 흔들거린다. 모두가 영천을 떠나고 나면, 그러면 고슴도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려나. 문득 큰아빠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한 집에 단 둘만 살면서 고슴도치 같은 게 들어온 줄 모르는 건 쉽지 않다. 정말 모르는 것이라면 그것대로 슬픈 일이지만, 근 몇 년간의 관찰에 의하면 두 사람의 관계는 우상향곡선 위에 있는 듯해서 나는 큰아빠가 사촌형이 고슴도치를 들여왔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늙은 아버지가 나이 든 아들의 새 취미를 바라볼 때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다. 침대 엎드리고 수조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짐짓 웃어 보이거나 혹여 말이라도 한 두 마디 덧붙이는 생경한 모습을 목격한다면 큰아빠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하는 사이.
제수씨
갑자기 큰아버지가 숙모를 부르신다.
병호 방에 있는 거 봤습니까
나는 커진 눈으로 큰아버지를 봤다. 술로 달궈진 붉은 얼굴이다. 숙모는 대답할 시간을 버는 사람이 으레 하듯 분명하게 들은 질문을 다시 되묻고는 고슴도치 말씀하시는 거냐고, 안 그래도 봤다고, 쪼그마한 게 귀엽기도 하고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은 것들인데 지들끼리 기어 다니고 사부작사부작하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병호가 생긴 거랑 다르게 은근히 섬세하다고 그런 걸 키우려면 웬만한 꼼꼼함으론 힘들 것이라고 말하신다. 큰아버지는 가만히 듣고만 계신다. 그러다가,
내 처음 봤을 때 뭐 저런 걸 집구석에 들여놓나 했지요, 하신다.
숙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삼촌은 술병을 들고 상 주변을 기웃거린다.
지가 잘 키워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삼촌이 큰아버지 잔에 소주를 따른다.
저래뵈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겁니다.
비어있던 잔이 조용히 차오른다.
병호 저것도 다 생각이 있어요.
숙모와 엄마는 거의 동시에 아무렴 당연히 그럴 거라고 나무라듯 말한다. 아빠도 삼촌도 자식이 아무리 어려 보여도 사실 부모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큰아버지는 그제야 천천히 소주를 비우신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어른들은 으레 고스톱을 친다. 막내 삼촌은 거실이 터져나가도록 고함을 지르며 화투를 뿌려댄다.
너희 삼촌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 사촌형이 방문을 닫으며 말한다.
나는 고슴도치들은 뭘 먹고 사는지 물었다.
고슴도치 사료, 그리고 지렁이. 살아있는 거.
살아있는 것이라니. 나는 살아있는 지렁이가 보고 싶어졌다.
그러자 사촌형은 침대 옆 장롱 문을 열더니 서랍을 열고 옷가지를 한 움큼 들어낸다. 그 밑에서 플라스틱 원기둥 통이 하나 나온다.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 안에는 지렁이가 미친 듯이 들끓고 있다. 금방이라도 통 뚜껑을 비집고 터지듯 쏟아져 장롱 안을 들쑤시고 다닐 듯해서 그렇게 보이지 않는 데 두면 불안하지 않냐고 나는 물었다.
달리 놓을 데가 없다이가.
침대 옆이나 대충 방구석 어디에 모셔두면 되지 않느냐니까 그럼 너희 큰아빠가 아주 좋아하겠다며 사촌형이 실소한다. 고슴도치도 겨우 밖에 내놓은 거라고 한다. 겨우 밖으로 나온 고슴도치들은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겨우겨우 움직이고 숨 쉬고 가만히 있는다. 형은 어디서 사료 봉지를 들고 와 아기 손바닥만 한 그릇에 사료를 살살 붓는다. 솥뚜껑만 한 손에 붙들린 봉지에서 황토색깔 사료가 수줍게 흘러나온다. 사촌형은 공장부터 공사판까지 현장일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잔뼈가 굵은 사촌형의 손등에는 털이 무성한데 그게 꼭 고슴도치 같고 그 모습에서 아주 잠깐 눈을 돌리려고 했다가 맹렬한 기세로, 거의 소리를 지르듯 벼락처럼 돌아가려는 시선의 멱살을 낚아채 사촌형 앞에다 들이밀었다. 한 순간도 놓쳐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료를 부을 적에 굽어지는 그의 두꺼운 허리, 바라보는 사촌형과 수조 사이에서 팽창하는 시간에 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 고슴도치들은 잠시 뜸을 들이다 사료 쪽으로 모여든다. 사촌형은 고슴도치를 바라보고. 나는 그런 사촌형을 바라본다. 삼촌의 환호가 방문을 흔든다. 한바탕 웃음이 천장까지 닿는다. 하루가 마지막으로 무르익고 있다.
음력 상의 새로운 해가 떠오른다. 제사상 위로는 향냄새가 새해의 빛에 따라 춤을 추며 상승한다. 그렇게 제사는 끝이 나고 상이 물러가면 집안의 언저리들이 대표로 집안 어르신들의 건강을 빌고 돈을 받아 갔다. 하지만 재작년부터 용돈 행사는 무기한 중단되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늙은 친척들께 넙죽넙죽 돈을 받아가기가 멋쩍기도 했던 시기라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을 아깝다는 생각보다 많이 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담백한 절을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숙모가 나를 부른다. 아 그래 숙모는 다르구나, 용돈을 주시려나 보구나 하고 재빠르게 두 손을 비워둔다. 중요한 건 건강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숙모는, 그러면서 한 손으로 정수리 부근을 빙빙 돌린다. 나는 순간 정지해 있다가 이윽고 음 그렇지, 그랬었지 하면서 그냥 감사하다고만 하고 차에 올라탔다. 차창 너머로 사촌형이 서서 커다란 손을 좌우로 흔들고 있다. 모두들 알고 있었지. 모르는 것은, 아니 깜빡하고 있던 건 오로지 나뿐. 그래도 뒤늦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는 것이 그리 슬프진 않다. 오랜만에 마음껏 뒹굴거릴 수 있었기도 했으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