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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잠 Jan 21. 2024

무뎌진 칼날





무조건 해달라는 민원인을 1시간 넘게 설득해서 보내고 나서야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을 갖는다.

분명 안 되는 게 맞는데, 누구한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인데

전에 해줬으니 해달라는 생떼는 내 표정을 굳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 명의 민원인을 상대하는 데 힘을 다 쏟아버려서인지 머리가 아프다.

어쨌든 마무리 지었는데 화가 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사실 화난 이유를 쪼개고 쪼개고 쪼개다 보면

그리고 이 시점에서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다지 기분 나빠할 만한 일도 아니고, 이렇게 지치지도 않을 텐데

내 삶에서 가장 가까운 내가 내 삶에서 멀어진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던가.


한때는 화날 일이 없다거나, 그런 일이 있어도 기분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었는데

그건 상상이라고 할지라도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서

차라리 화내고 싶을 때 마음껏 화내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나보다 몇 년을 앞서나간 사람들은 점점 무뎌진다고 조금만 견디라고 하던데

내 감정에 무뎌지는 게 그렇게 좋아할 일인가 싶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나를 무뎌지게 만든다니

무뎌진 칼을 휘둘러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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