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로는 결코 분노를 없앨 수 없다. 오직 사랑으로만 그 분노를 없앨 수 있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다.”
불경《법구경》 5장
누가복음 23장을 보면, 어리석은 군중이 예수님을 향해 침을 뱉고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피 흘리는 예수께서 하늘을 향해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무조건적인 사랑의 간청을 우리는 곰곰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조롱하며 가시면류관을 씌우는 군중을 악하다고 단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어리석은 자들, 혹은 무지한 자들이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인간의 타락이 악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명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무지함을 깨우쳐 주는 일이었죠.
이 신의 메커니즘은 불교의 핵심 원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부처님은 인간이 괴로운 이유를 ‘악함’이 아니라 무명(無明),
즉 깨닫지 못한 어리석음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역시 인간의 악함을 벌하기보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려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리석음’은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자비의 결핍에 가깝습니다.
즉, 사랑과 자비는 곧 신의 언어이며,
하나님이 인간과 세상을 설계한 방식 — 바로 신의 메커니즘입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법륜스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꽃을 좋아하면 누가 좋은가요? 꽃인가요, 나인가요?
꽃은 식물입니다. 내가 좋아해도 꽃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꽃을 좋아하면 내 기분이 좋아집니다.
옆 사람을 사랑하면 누가 좋은 건가요? 옆 사람인가요, 여러분인가요?
그러니, 여러분 사랑을 많이 나누세요.”
이것이 신이 숨겨둔 사랑의 메커니즘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또 누가 복음 6장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여기서 질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원수입니까, 나입니까?
맞습니다.
원수는 내가 그를 사랑하며 또한 축복의 기도를 올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면, 그 때문에 죽을 것 같던 내 마음이 조금씩 살아납니다.
즉,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말씀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가난의 밥상에서 태어난 여러분은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셨나요?
드라마나 영화처럼 아버지가 나를 때리거나, 어머니가 나를 부끄러워한 적은 없으셨나요?
혹은 그런 일은 없었더라도, 마음 어딘가에 풀리지 않는 응어리 같은 게 있지 않나요?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 바로 미움입니다.
그런데 신이 설계한 사랑의 메커니즘을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이 구조 안에서는 원인도, 논리도, 이성도 중요하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하느냐, 미워하느냐는 감정선만이 핵심 동력으로 작동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부모를 미워할수록, 내 자존감은 낮아집니다.
인과관계로만 보면, 부모가 나를 천하게 대했기 때문에 나의 자존감이 낮아진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신의 메커니즘으로 보면, 내가 간직한 미움이 내 자존감을 낮추는 것입니다.
부모가 나를 어떻게 대했든,
내가 사랑의 감정을 품느냐 미움의 감정을 품느냐에 따라
나의 자존감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법륜스님은,
나를 천하게 대했다고 믿는 부모를 향해 이렇게 참회의 기도를 권하십니다.
아버지, 그 가난 속에서도 저를 먹여 살리시려 얼마나 애쓰셨습니까.
저를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나를 때린 것보다, 나를 때릴 때 아버지의 마음이 더 아프고 괴로웠을 겁니다.
참회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몰랐습니다.”
이 메커니즘은 단순합니다.
부모가 나를 천하게 대했다고 믿으면, 나 자신도 천해집니다.
부모가 나를 귀히 여겼다고 믿으면, 나 역시 귀해집니다.
내 직업이, 내 배우자가, 내 친구가, 내 취향이 천하다고 생각하면
나 자신이 천해집니다.
반대로 내 모든 것이 귀하고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나 자신이 귀하고 감사해집니다.
이는 마태복음 7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