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매커니즘 2부

by 이영우

“원수를 사랑하라.”

“나를 때린 아비를 위해 감사의 기도를 올려라.”


저는 이 말씀을 실제 삶에서 한 번 실천해 본 적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가슴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원수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원수는 더 이상 눈앞의 ‘사람’이 아니라,

아득히 먼 옛날의 기억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로 느껴졌죠.


처음 겪는 감각이었습니다.

마음 한편에 예상치 못한 평화가 찾아왔고,

한때 저를 가장 괴롭혔던 사람들이

오히려 저를 여기까지 버티게 한 스승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분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분노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제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쳐 지나가는 직장 동료,

지하철과 거리의 인파였습니다.


그들은 저를 미워하지도, 해치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작은 무례, 가벼운 조롱, 사소한 이기심과 맞지 않는 생활 습관으로

제 신경을 조금씩 긁어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대놓고 미워지는 원수보다,

이렇게 하루 종일 나를 긁어대는 평범한 사람들이 더 힘들다고.


정약용 선생도 이 ‘사소한 것들의 공격’을 시로 남겼습니다.

호랑이가 울타리 밑에서 울어도 나는 코를 골며 자고,
지붕에 뱀이 매달려도 그저 바라볼 뿐인데,
모기 한 마리가 귓가에서 앵 하고 울면
혼이 나가고 넋이 흩어진다.
슬프도다, 피만 빠는 것인데
어찌하여 뼛속까지 독이 스미는가.


큰 일 앞에서는 오히려 담담한데, 사소한 말 한마디, 냉랭한 눈빛 한 번에

하루가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소한 존재들에게 크게 흔들릴까요.

왜 그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몸 전체에 신경질이 치밀어 오를까요.


두 번째 ‘신의 매커니즘’은 이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찾은 답은 '자기중심성'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꽉 막힌 도로, 혼잡한 지하철 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 더럽게 많네.


하지만 잠시 멈춰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 ‘불편한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자기중심성 때문에 마치 나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이는 배움이 많고 적음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조차, 주식 투자로 큰 손실을 입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역시 그 광기 속에 있던 평범한 군중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식과 명성이 너무 컸기에, 자신도 군중의 일부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을 뿐입니다.


이런 자기중심성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습니다.


육아로 지친 엄마에게 “얘는 참 순하다. 너 편하겠다”라고 말한다든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보며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고 툭 던진다든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데 천천히 걸어오며 “문 좀 잡아줘요, 같이 가요”라고 말한다든지,

지각할까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젊은 사람이 여유를 가져야지”라고 말한다든지.


극단적으로는, 손가락이 잘린 여러분 앞에 와서

자기 손가락에 난 생채기를 내밀며 보듬어 달라고 징징대는 것까지

모두 같은 스펙트럼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이기심이라기보다,

인간의 마음이 원래 그렇게 작동하도록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선도 악도 아닌, 그저 ‘본래’에 가깝습니다.


결론적으로,
괴로움은 타인의 자기중심성에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제가 발견한 두번째 원인입니다.

' 타인의 자기중심성을 견디지 못하는 나의 마음 '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쟤는 왜 저렇게 말해?”

“쟤는 왜 말이 저렇게 많아?”

“쟤는 왜 자기 얘기만 해?”

“쟤는 왜 말을 저렇게 지루하게 해?”


“쟤는 왜 음식물을 씹으면서 말해?”

“쟤는 왜 휴대폰을 보면서 말해?”

“쟤는 왜 확인도 안 하고 말해?”

“쟤는 왜 꼭 지금 그걸 말해?”


“쟤는 왜 말끝마다 한숨을 쉬어?”

“쟤는 왜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해?”

“쟤는 왜 핵심만 간추려서 말 못 해?”

“쟤는 왜 앞에서는 말 못 하고 뒤에서 말해?”


이렇게, 짧은 대화 속에서도

우리 마음에는 수십 가지불만이 생겨납니다.


그 순간, 괴로워지는 쪽은 상대가 아닙니다.

바로 상대의 꼴을 보기 싫은 나입니다.


그래서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을 하고

타인의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이 바꾸기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 내가 틀렸고 당신이 옳았습니다.”


이제 이 메커니즘을 삶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다음 3부에서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드립니다.

타인을 심판하려는 마음을 도덕적 결함으로만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생기는 마음의 습관입니다.


저는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괴로움을 줄이는 법을 적고 있을 뿐입니다.

다투지 않고 내 길을 가는 법을 적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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