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각티슈로 계급을 나눕니다

'왜요?'라고 묻는 사람은 미움을 덜 받을까?

by Giagraphy


나는 꽤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중국에서 유학했고, 중동 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일했고, 직전 직장은 수평적 문화로 유명한 회사였다.

그런 내가 전통과 보수를 의인화한 듯한 현 회사에 입사했다.

면접 때부터 내 대학과 이전 경력은 호기심의 대상이고, 늘 화젯거리였다.


면접에 정장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락시키는 이곳에서 나는 명백히 이방인 캐릭터였다.

“제가 전형적인 한국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요. 정말 몰라서 실수할 수 있으니, 그때마다 바로 말씀해 주세요.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이 말을 한 건 진심이기도 했지만, 미리 말해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잘은 몰라도, 내 방패가 될 것 같았다.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무실 비품에 각티슈가 없어서 담당자에게 요청했다.

그렇게 받은 티슈 한 통을 거의 다 쓸 무렵이었다.

새 티슈를 가지고 나오는 내게 한 매니저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매니저님, 각티슈는 직책자만 쓰는 건데...”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앞자리 파트장님까지 웃으며 거들었다.

“진짜야. 상급자만 쓰는 거야.”

당황한 나는 물었다. “그럼 저희는 뭐 써요?”

파트장님은 본인의 책상 위에 놓인 두루마리 휴지를 가리켰다.


“이건 ‘Toilet paper’잖아요. 화장실에서 쓰라고 만든 건데... 외국에선 식탁에도 안 올려요.”

“그러니까, 두루마리 쓰는 게 품위 없어 보인다고 부서장들 품위 유지 차원에서 각티슈 쓰라고 한 거야.”

“그럼 매니저들 품위는요? 저희 품위는 누가, 뭘로 지켜줘요?”


조용한 사무실 한가운데에서 한 손에는 각티슈를 들고 다른 한 손엔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너무나도 당황한 내가 서있었다.

누군가는 “저도 집에서 가져왔어요”라고 말했고, 다들 웃고 있었다.

파트장님은 “이미 꺼냈으니까 이번엔 그냥 써”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쯤 되니 이게 진짜인지 장난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매주 수요일 퇴근 10분 전에 사무실 청소를 하는 문화가 있다.

처음 청소를 하던 날, 청소해야 한다고 말하는 직원도 민망해했고, 나는 당황해했다.

1층 커피숍에서 우리 부서 부서장님, 타 부서 매니저님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날은 마침 수요일이었고, 회의가 마무리되지 않았으나 어차피 결론도 안 나니 일단 청소하러 올라갑시다 하는 말에 나는 또 웃었다.

“저는 입사하고 매일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에요”

곧 정년을 앞둔 부서장님은 내 말을 듣고 웃으며 왜?라고 물으셨다.

나는 같이 웃으며 농담 투로 말했다.

“이 넓은 사무실을 저희가 빗자루로 쓰는 거밖에 안 하는데, 계속 이렇게 해왔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요.

그럼 바닥 닦고 이런 적도 전혀 없는 거 아니에요? 생각만 해도 기관지가 아픈 거 같아요”

부서장님은 재밌다는 듯 말했다.

“나도 입사하고 그렇게 생각만 하고 지나갔는데, 전 매니저가 20년 만에 그걸 상기시켜 주네”


또 뭐가 놀라웠냐고 물으셔서 얼마 전의 각티슈 사건도 얘기했다.

아직도 나는 그게 진짠지 장난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옆에 있던 타 부서 매니저님은 말도 안 된다며 자기 각티슈를 주겠다고 했고, 같이 엘리베이터 안에 계시던 건물 관리자분도 화들짝 놀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제 3자의 반응이 더해지자 비상식적인 관행은 순식간에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 되었다.

부서장님은 곧바로 파트장에게 “너 또 그랬냐”며 장난스럽게 핀잔을 주었다.

사무실 모든 사람이 함께 웃었고, 부서장님은 “전 매니저, 각티슈 꼭 써!!!!”라는 웃음 섞인 당부를 했다.


다른 매니저들은 말했다.

우리가 얘기하면 안 들어주는데, 지혜 매니저가 말하면 들어준다고.

정말 그런가? 왜 그럴까? 이유를 고민해 봤다.

사람들 말처럼 부서장님이 아무래도 20대 딸이 셋이나 있는 딸 아빠여서, 내가 우리 부서의 몇 안 되는 여직원이라서?

아니었다.


다른 매니저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지켜봤다.

각티슈를 쓰지 말라고 한 게 내가 처음이 아니었는데, 다른 매니저들은 그 말에 이해가 안 가도 그냥 ‘네’ 하며 돌아섰다.

대부분 불만이 생겼을 때, 표출하기보다는 혼자 삭히는 편을 선택했다.

간혹 그 불만을 얘기할 때도, ‘청소하기 너무 싫다’ ‘점심시간이 너무 짧다’는 “불평”을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니 나는 조금 달랐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항상 먼저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은 상급자와의 대화를 꺼려했다. 특히 나이가 차이 날수록 더더욱.

하지만 나는 매일 아침 인사하며 스몰톡을 건넸다.

“머리 하셨네요?” “오늘 너무 춥죠?”

오랜 해외생활과 서비스직 경력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이런 일상이 쌓여서인지, 그들은 내게 이미 마음을 열고 있었다.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질문을 던지니, 그들은 기꺼이 내 말을 들어주려 했다.


나는 불평이 아니라 궁금증을 말했다.

"이게 싫어요"가 아니라 "이게 이해가 안 가는데, 왜 그런 거예요?"였다.

진짜로 궁금했다. 이해가 안 갔다.

그저 내가 경험해 온 환경에서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 여기서는 당연한 게 신기했을 뿐이다.

비난할 생각도, 공격할 생각도 없었다.


나는 먼저 다가가고,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공격적으로 들리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게 심리학에서 말하는 I-message 화법이었다.

‘이방인’이라는 내 캐릭터도 한몫했다.

처음 던졌던 "정말 몰라서 실수할 수 있다"는 그 말이, 사람들에게 나를 순수히 바라봐줄 여지를 만들어주었다.

조직에 동화되지 않은 이방인이 던지는 순수한 질문은 당연시 여겨지는 부조리를 부드럽게 균열 냈다.


사람들은 나를 ‘MZ 아닌 MZ’라고 말한다.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뜻일 것이다.

틀리진 않지만 조금 다르다.

나는 눈치를 안 보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아마 꼰대회사일수록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우리 사무실을 보면 참 재밌다.

직급 상관없이 모두의 책상 위에 각티슈가 하나씩 놓여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자연스럽게.


굴러들어 온 특이한 돌 하나가 회사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글쎄, 나도 모르겠다.

애초에 변화시키려고 던진 질문도 아니었다.

정말 이해가 안 가서,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다.

그래도 그 질문 하나로 누군가의 머릿속에는 뭔가 남지 않을까.

'어, 맞네. 이건 좀 이상한데?' 정도의 작은 균열 말이다.


“원래 그래”라는 말 뒤에 숨은 낡은 관습들을 향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웃으며 물을 것 같다.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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