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만난 아빠, 그리고 처음 마주한 내 감정
20년 만에 마주한 아빠는 너무 늙어 있었고,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어제, 나는 20년 만에 아빠를 만났다.
어릴 적부터 우리 부모님은 사실상 따로 살았다.
엄마의 회사 사정과 숙소 문제로 인해 아빠는 평일엔 집에 없었고,
주말에 잠깐 얼굴을 보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소파에 누워 술 냄새를 풍기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어린 나에게 아빠는 존재감보다는 풍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중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나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편모가정’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정작 나는 “별로 상관없다”라고 생각했다.
이미 마음속에서 아빠는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존재, 그냥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고등학교 때 아빠가 나를 한 번 찾아온 후로 우리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내가 해외에서 살기도 했고, 시간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빠를 내 일상에서 밀어냈다.
그렇게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얼마 전, 아빠가 서울 병원에 올 일이 생겼고 내 연락처를 알 수 없어 초본을 떼어 우리 집까지 찾아왔다.
그날 나는 집에 없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다시 연락이 닿았고
바로 어제, 직접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었다.
정말 오래된 남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었다.
살이 많이 빠졌고, 얼굴엔 세월이 깊게 내려앉아 있었다.
마르고 늙어버린 아빠가 그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불쑥 올라왔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아빠는 몇 년 전 뇌수술을 받았고, 최근에는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도 세 달에 한 번씩 서울로 올라와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몸속에는 기계를 심었고, 며칠에 한 번씩 충전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아빠는 말했다.
“살면서 지금이 제일 건강한 것 같다.”
수술 전엔 술과 담배에 의지해 마음이 늘 불안정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정신적으로 제일 편하다고.
아마 그래서,
나를 다시 찾아올 용기가 났던 걸지도 모른다.
그날 아빠는 내게 백만 원이 들어 있는 봉투를 건넸다.
고등학생 때, 몇 년 만에 날 찾아와 밥 한 끼 사주기조차 어려워 보였던 그 아빠가
이제 와서 무언가 보태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처음엔 받지 않으려다
“그럼 20년 치 용돈으로 받을게”
웃으며 반농담을 던지고 받아들였다.
낯설고 어색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이 저릿했다.
나는 아빠를 위해 기차표를 예매해 주고, 택시도 잡아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려고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기차를 놓친 건 아닐까,
역에서 쓰러진 건 아닐까.
불안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결국 택시 기사님께 연락해 확인하니 기차역엔 무사히 도착했다고 했다.
내 공간에 들어서자,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감정이 나조차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고,
내 목소리만 듣고도 엄마는 내가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 알아챘다.
“엄마가 연락해 볼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숨이 풀렸다.
그런데도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여전히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다.
숨이 넘어가듯 울고 있으면서도 엄마가 걱정할까 봐 감정을 누르고 있었다.
최근에 내가 다른 일로 엄마에게 화낸 일이 있었는데,
엄마는 그 일이 신경 쓰여 잠도 잘 못 자고, 소화도 안 된다고 했었다.
게다가 한때 사랑했고 함께 살아갔던 사람이 그렇게 병들고 늙은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엄마도 엄마 나름의 큰 감정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내 불안까지 보태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는 엄마 앞에서도 늘 강한 척을 해왔구나.
“나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그 말이 얼마나 오래 내 입에 붙어 있었는지를.
엄마에게 망설이다 말했다.
“연락이 안 돼서 불안한 것도 맞지만, 지금은 그냥… 감정이 너무 복잡해서 그래.”
엄마는 조용히 듣고, 이해해 주었다.
“엄마는 엄마니까 괜찮아. 넌 너 마음 먼저 챙겨.”
그 말이 너무 따뜻했다.
잠시 후,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내가 알려준 내 유튜브 채널 영상을 보다가
소리를 줄여놓은 채 잠들어 전화가 온 줄도 몰랐다고 했다.
지금은 무사히 가고 있고, 오늘 만나서 정말 좋았다고, 걱정시켜서 미안하다고 했다.
괜히 울컥했다.
사실 유튜브 채널을 알려준 건 처음엔 마음 내켜서 한 일이 아니었다.
친구가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보는데 가족한테는 왜 못 보여줘?”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 움직였을 뿐이었다.
나는 엄마에게도 자주 연락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내 일상을 볼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은 알려드렸다.
하지만 아빠는 인스타가 뭔지도 모르니까 썩 내키진 않아도 유튜브라도 알려준 거였다.
그리고 아빠는 그걸 보고 있었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일상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던 거였다.
우리는 때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이 더 어렵다.
나는 내가 아빠를 그저 남처럼 여긴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유튜브를 알려주는 게 내키지 않았던 걸 보면
사실은, 아빠라는 존재의 공백이 내게도 꽤 컸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내 감정을 명확히 자각했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내 감정을 눌러두고 살아왔구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먼저 걱정하며,
나는 나를 늘 마지막에 두었구나.
오늘 나는 정말 많은 용기를 냈다.
아빠를 마주한 것,
감정을 꺼낸 것,
엄마와 마음을 나눈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나 스스로 돌보려 한 것.
‘그냥 그런 사람’이라 여겼던 아빠가
오늘 하루 만에
마음 깊이 파문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
그게 조금 당황스럽고,
조금 슬프고,
복잡하면서도 개운하다.
그리고 오늘,
그 모든 감정을 피하지 않고 마주한 나 자신이
처음으로 조금…
대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