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저 인간이 왜 저럴까
인간의 모든 행위는 심상을 반영한다.
언뜻 보기에 별 뜻 없어 보이는 타인의 행위에서 나는 그의 의식 저변에 깔린 생각을 읽을 때가 많다. 내가 예민해서일까.
Highly Sensitive. 사람들은 예민함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리걸 에일리언
한국 사회에서 예민함은 미덕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예민함이란, 그 자체로 불필요한 감각이자 배척의 대상이며 피로감의 동의어로 취급받을 뿐이다. 동양의 뿌리 깊은 집단주의 문화, 더군다나 ‘우리’라는 관계주의적 가치를 좋은 덕목으로 여기는 한국에서는. 언뜻 보기에 상냥하고 동등해 보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우리’의 관계성 속에는 반드시 수직의 구조가 존재해서, 나이를 묻고 위아래를 나누며 너와 나 사이에서 깨알같이 서열을 찾아내 개선장군처럼 선언한다.
나름 ‘외국계’ 회사임에도 (외국계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어색한 합성어처럼 보이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회사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첫 번째가 ‘실례지만 몇 년 생이세요?’, 두 번째가 ‘혹시 몇 살이세요?’였다.
실례인 것 같다면 왜 물어보시죠. 혹시 그게 왜 궁금하시죠. 반사적으로 마음속에서 고개를 드는 문장을 찍어 누르던 내 모습이 루시드 드림처럼 객관화되어 보인다.
나이 말고는, 저에 대해 궁금한 것이 그리도 없으신가요. 되묻고 싶었다. 처음 본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새로운 동료에 대한 반가움에 기반한 질문이라 하기에는 묻는 이들 스스로 조차 본인이 내뱉은 질문에 대한 어색함이 한 바가지였으니까. 내 인생을 통틀어 이처럼 내 나이를 궁금해하는 곳은 처음이었다. 원래 이런 것일까? 평소에는 밥 먹듯 묵비권을 행사하는 내가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아서, 내 생각의 흐름이 빤한 몇몇 지인들은 내게 '너는 별 시답잖은 것을 가지고 참 오래도 생각한다-'하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도 내가 제발 그런 시시껄렁한 것들에 관심을 주지 않는 인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오늘도 생각한다.
그나마 개인의 특성이 중시된다고 하는 광고회사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이곳은 동방예의지국. 한국이다. 수평적 상호작용을 위해 직급까지 없앴지만.
잊지 말자. 튀지 말자. 매일 되뇐다.
나대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입을 닥치고 사는 것이 최고의 덕목임을. 예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들킬수록 돌연변이 취급을 받고 본인만 괴로울 뿐이다.
이곳 지구에서의 생활(?)에서 예민함은 결코 미덕이 아님에도, 오늘도 나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타인의 속마음을 또다시 목격하고야 말았다.
타인의 사소한 행동, 미묘한 뉘앙스가 내 눈과 귀에 철컥 걸린다. 악명이 자자한 파파라치의 대포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 듯 퍽. 번개가 치고 빠지는 속도로 타인의 민낯이 드러나는 그 순간을 본능적으로 캐치한다. 특히나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상대에 속할 때는 더더욱. 정말이지 저 인간의 생각을 격하게 알고 싶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이 시선을 거두는 찰나에 잠깐 드러나는 싸늘한 눈빛, 자기 위주로 대화가 흘러가지 않으면 순간 얼굴 위에 드리웠다 사라지는 그림자, 누군가 지적하기 애매한 선상에서 무례함을 범하고는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제스처. 아무 생각 없이 우연인 척, 일단 저질러 놓고 멋쩍은 웃음 뒤에 스치듯 따라오는 곁눈질이라든지. 다른 이들도 이런 순간들을 하나하나 발견하고 느낄까? 미세한 터치에도 반응하며 잔뜩 말려드는 미모사 잎사귀처럼. 그런 순간들을 포착할 때마다 나는 못 본 체를 한다. 거의 대부분은 나 홀로 조용히 속으로 뜨악하다. 기분이 표정에 다 드러나는 편인 나는 내가 목도하고 느낀 것을 얼굴 위에 내놓지 않으려 애쓴다. 그 순간은 정말 지옥처럼 흘러간다. 대의를 거스르지 않는 보편적 감수성이 중요한 대한민국에서, 이 나이 먹도록 사회성이 없는 것은 지능과 판단력 문제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사사건건 거슬리고 견디기 어려운 기분이 드는 것은. 왠지 모를 구역감이 치미는 것은. 알고 보면 내가, 어딘가 고장 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름 모를 자책감과 죄책감에 잠깐 젖는다. 가면 뒤에 숨은 타인의 적나라한 민낯. 내가 목도한 그 모습이 제발 내가 잘못 본 것이길. 오만하게 멋대로 생각하고 오판한 것이길. 나만의 뇌피셜이기를 바라지만 불행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꺼림칙한 느낌은 구체적인 사건의 형태로 내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가 많다. 회사를 다닐 게 아니라 돗자리를 깔았어야 하나.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프로파일러가 되거나 멋들어진 마약 탐지견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번 생은 글렀다. 오늘도 재확인한다. 태어난 김에 열심히 산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예민함은 과학이다
달에 한두 번씩, 편두통을 달고 산다. 두통은 내 삶의 동반자 정도의 포지션을 꿰차고 있다.
평소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세요? 나이에 비해 혈압이 좀 높긴 한데, 깨끗해요. 스트레스 말고는 없어요.
그놈의 스트레스. 매달 이미그란 상비약 타러 가기도 지치고, 두통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작년에 뇌혈류 검사를 받았다. 보다 과학적이고 납득할만한 근거를 찾고 싶었다.
쒝쒝쒝쒝. 내 뒷목 혈관을 통과하는 핏 소리는 상당히 우렁찼다. 머리가 안 터지고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귓가를 쟁쟁하게 울리는 혈류의 흐름. 아우토반이 따로 없더라. 머릿속에선 촌각을 다투는 레이싱 대회가 열리고 있는 듯한 소리가 났다.
뇌가 남들보다 예민해요. 본인이 빛에도 취약하다는 거 알고 있어요? 햇빛은 시신경을 자극해서 두통을 유발해요. 바깥에 나갈 때 항상 선글라스 끼고 다니세요. 운동은 이른 아침에 하든지, 오후에 절대 하지 말고 열 시 전에는 무조건 누워 자려고 노력하세요. 본인이 타고나기를 이런데, 광고 쪽 일 계속하시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 거예요. 무슨 말인 줄 알죠? 뇌신경과 의사의 말이었다.
7년 전쯤이었나. 나더러 책도 읽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말고, 글도 쓰지 말고, 일도 하지 말라던 한의사의 말보다는 평이했다.
예민함은 분명 흠이 아니지만, 딱히 자랑거리도 아니라는 것.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다.
예민해서 내가 얻은 거라곤,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각설이 같은 두통뿐이니까.
그만하고, 마그네슘이나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