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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Mar 03. 2020

저수지 둘레길에서 생명수 주고받는 마을 가곡2리

- [다함께 돌자 동네한바퀴] 노성면 가곡2리 회춘약수마을

코로나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고 있다. 낮에도 아파트 주차장이 만차이다. 칩거하면서 집안일에 더욱 신경 쓰는 분위기다. 지겨우면 밖에도 나가는데 면역력 증강을 위하여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확진자가 나온 계룡시 향적산에도 등산객이 부쩍 늘었지만, 논산 노성산 초입 애향공원 주차장도 북적인다.  


산만 찾는 게 아니라 물도 찾는다. 노성산과 호암산 사이에 저수지가 하나 있다. 병사리에 있어서 병사저수지라고도 하는데, 요즘은 강태공들뿐 아니라 온 가족이 놀러온다. 아빠는 낚시하고 아이들은 이곳저곳 뛰어다닌다. 주말, 차량이 100여 대는 돼 보인다. 


숨겨져 있는 동네였는데, 근래 사람들이 부쩍 찾아온다. 노성산과 나란한 호암산 중턱에 충청유교문화원 공사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파평윤씨 종학당(宗學堂)도 노출이 덜 됐는데, 유교문화원을 유치하면서 총리도 다녀가고 도지사가 찾아와 기공식도 하면서 이제 충남, 아니 기호 지방의 명소로 자리매김중이다. 


회춘약수의 어제와 오늘


종학당에서 내려다 보면 병사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관(可觀)이 아니라 가관(佳觀)이다. 대한민국에 이리 아람다운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경이다. 종학당 주차장에서 회차하지 않고 직진하면 팻말이 하나 나온다. “종학당 사색의 길” 안내판에는 활터재현공간도 보이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저수지 북쪽으로 동네 하나가 나오는데 ‘회춘약수터’라는 팻말이 과객의 눈길을 끈다. 회춘(回春)이라 회춘! 팻말 따라 동네로 들어가자 마자 우물이 하나 나온다. “이 물 떠가도 돼요?” 동네 아줌마는 손사래를 친다. “아니, 못 마시는 물여!”


‘이름만 요란한 안내판이었네ㅠ’ 하면서 씁쓸히 발길을 돌렸던 적이 있다. 회춘이라는 이름을 다시 발견한 것은 기자가 노성산 애향공원을 들렀을 때였다. 노성산이 과연 얼마나 많은 마을을 품고 있는지 차편으로 노성산 한바퀴 돌기를 작정하고 저수지에 도착했을 때였다. 병사1리 마을회관 사거리에서 호암산 종학당쪽으로 직진하지 않고 우회전하여 저수지 따라 달릴 때였다. 환상적인 저수지 초입의 물가 빨간 파라솔을 뒤로 하고 언덕배기 교회를 통과하면서 병사리가 가곡리로 바뀐다. 


가곡리는 산수가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의미의 한자(佳谷)에서 유래된 설이 하나고, 옛날 이곳에 갓을 파는 점포가 있어 갓점골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화했다는 설이 또 있다. 어쨌거나 외지 사람들 반기는 흰 안내석에 ‘회춘약수마을’ 가곡리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어? 이미 망가진 그 약수가...?...”


다음날 이수행 이장을 만났다. 약수 얘기부터 물었고, 약수가 발원하는 구중골을 가보자고 했다. 14가구가 사는 구중골 동네 끝자락은 감나무밭이었다. 한전 다니던 분이 귀촌하여 전지 작업중이었다. 그 밭을 관통하여 좀더 산쪽으로 올라가니 봉인된 샘물이 나타났다. 뚜껑을 둘이서 들어봤지만 으씩도 하지 않는다. 그 물줄기는 관을 따라 대형 알루미늄 저수통으로 집수된다. 이 동네 상수원이다. 


회춘약수터 가는 길의 뾰족바위(워)와 약수터 발원지(좌)

이수행 이장 집도 지척지간이다. 지금 봉인된 약수터 옆에 집이 하나 있었단다. 노인과 젊은 여인이 살았는데, 어느날 출산 소식이 들려왔다. 그 딸 이름이 애림이고 대구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한다. 푹 들어가 있는 이 물은 가끔씩 부르륵 끓어오르는데, 효험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SBS ‘물은 생명이다’ 프로에도 소개된 바 있다고 한다.  


전설 같은 이야기는 한 노인의 회춘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약수터 바로 옆에 사는 이장 자신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막둥이가 10살 터울로 태어난 것이다. 지금도 이 물은 구중골 14가구가 마시고 있다. 다리를 건너야 하는 저수지 건너편 마을회관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도 이 회춘약수가 콸콸 쏟아진다. 그런데 동네 길을 보니 한복판이 파헤쳐진 궤적이 보인다. 대청댐에서 출발하는 상수도 공사가 이 산동네까지 완료된 상황이다. 이제 14가구가 그 수돗물을 먹을지, 그냥 계속해서 동네물을 먹을지 결정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토광. 안으로 들어가면 아늑하다~


골짜기마다 숨겨져 있는 생활보물들


가곡2리는 전형적인 산촌마을이었다. 지형상으로 보아도 은신처이다. 그러던 이 동네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 2층집들이다. 크게 보아서 세 동네로 나뉘어져 있다. 중골에 16가구, 지장골에 15가구, 저수지 건너편인 구중골에 14가구 이렇게 해서  총 45세대에 80여명이 살고 있는 조용한 동네이다. 병사리에서 가곡리 통과하여 고개를 넘어가면 구암리로 이어지는데, 고개는 1차선 하나만 존재할 정도로 차량 소통이 별로 없던 동네였다. 저수지길 도중에, 언덕 위의 하얀집이 눈에 띈다. 2층집 중간에 가로 현판이 질러 있다. 자세히 보니 노은재(魯隱齋)다. 알고 보니 전 농업기술센터소장 이재식 씨의 집인데, 퇴직 후 그의 명함이 바뀌었다. ‘울림서각회 노은서각연구소’로 적혀 있기에 물어보니 노은(魯隱)은 ‘노성에 들어와 은둔한다’는 의미로 지은 호라고 한다. 고향이 이곳이고 은둔자처럼 살고자 들어왔단다. 뒷산에는 염소를 키우고 앞마당에는 텃밭을 일군다. 이장 집에도 그가 써준 서각이 하나 걸려 있다. 이렇게 각자 나름의 재능기부를 하면서 살아가는 오순도순 마을이다. 

가곡리에 2층집 못지않게 관직에 있던 사람들도 많다. 조관행 노인회장은 면장을 했다. 공직은 물론 교편을 잡았던 사람, 대기업에 있던 사람들이 귀향도 하고 귀촌도 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처럼 고향이라고 해서 다 귀향하는 건 아님에도 이 동네는 귀농귀촌 인구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추은희 부녀회장 부부도 7년쯤 전 귀농한 케이스다. 버스 운전을 하던 남편은 다람쥐 쳇바퀴같은 동일노선을 견디지 못하고 귀농을 선택하였다. 3년 전부터 부녀회장을 맡은 추 부녀회장은 컴퓨터에 능하여서 마을지도자인 남편의 서류 작성은 물론 마을회관에서 빔프로젝트로 영화도 틀어주는 문화전령사이다. 


현직 택시기사도 있다. 지장골 초입은 한때 민박을 했던 농가도 있다. 거기서 쭉 더 올라가면 펜션이 하나 나온다. 중간에 낙만당(樂滿堂)이라 써있는 미니2층집인데, 이 집 가족 6남매가 모두 내려왔을 때 풀가동되는 별채이다. 서울에서 개인택시하는 이순석 씨 어머니가 독거하는 집이다. “오늘은 5년전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인데” 코로나로 장남인 자기 하나만 내려왔다고 들려준다. 올해로 91세인 어머니는 이경순 씨. 이야기를 청하니 청산유수다~~ 이순신 장군의 덕수 이씨라는 이야기부터, 생일이 8월이니 그때 돼야 진짜 91이라는 여유 등등.... 사위가 치장해준 꽃 전동차로 마을회관에 가서 한글도 배우고 이야기하면서 노는 재미로 사는데, 요즘 문을 닫아서 두문불출 살림만 한단다. 모처럼 내려온 장남 멕일 요량으로 도라지 껍질 벗겨내는 손길이 바쁜데도 입은 연신 사위자랑, 아들자랑으로 다물어지지가 않는다.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 자랑이다. 집이 산중턱이고 언덕바지인데, 뒤란으로 가니 토굴 문이 하나 보인다. 언덕 땅속으로 파고든 광인데 벽은 시멘트로 돼 있고 맨 끝까지 가보니 정사각형 창문이 하나 뚫려 있다. 하늘 보이는 창문이 아니라 흙이 보이는 공간이다. 거기부터는 땅을 파고 들어가는 진짜 토굴 시작 지점인데, 공사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토광은 다용도였다. 동빙고 서빙고처럼 냉장고 구실을 했을 뿐 아니라 추운 산골 겨울, 따신 물 데워서 목간해주던 곳이라고 추억한다. 언덕배기 뒤란에는 장독대가 가지런한데, 그 초입이 또 토광이다. 장독대 뒤로는 경사도 가파른 언덕 위에 옛날식 담장이 그대로다. 부엌에 들어가 보니 아직도 나무를 때는 아궁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산골살이 생활박물관이 가곡리에 숨어 있는 것이다. 뜨뜻한 부뚜막에 앉아서 차 한 잔 청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운전경력 21년째인데, 서울에서 개인택시 구입할 때 1억 들었단다. 지금 팔아도 7~8천은 받으니까 이제는 매각하고 내려와 어머니와 함께 살 계획도 밝힌다. 저수지에 가서 낚시도 하며 고향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내고 싶다며 본인 나이를 밝힌다. 


어쩌다 보면 기자도 찍히는 때가 있다


저수지에 멋진 둘레길 둘러놨건만


1955년, 그가 태어난 그 즈음은 가곡 저수지가 생긴 해이기도 하다. 가곡리 마을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저수지는 병사리지, 노성지, 가곡지라고도 이름도 제각각이다. 수면적 25만 7,850㎡에 이르는 준계곡형 저수지로, 수로와 비슷한 직사각 모양으로 뻗어 있다. 이 저수지로 인하여 이 일대는 문전옥답이 되었고 쌀이나 땅이 두 배 가치가 되었다고 한다. 저수지 연안을 따라 수초가 발달해 있고 중류 부분에는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다. 붕어, 가물치, 잉어 등 어자원이 풍부하여 주말이면 가족 단위의 민물낚시 인파가 몰린다.

2018년 저수지 상류 중심으로 해서 둘레길이 형성된 후에는 더욱 몰린다. 가곡2리 회춘약수 마을 경관개선사업은 논산시의 대표적인 희망 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2014년 논산시 최우수희망마을로 선정된 이 가곡리는 농림축산식품부 지역창의아이디어 사업을 신청하여 가곡지구경관개선사업으로 1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하였다. 추진위원장 이수행 이장의 극성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문제가 생겼다. 저수지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다. 농어촌공사가 관리사를 지어서 낚시요금도 받고 쓰레기 지도도 다녀야 하는데, 완전 방치상태이다. 낚시꾼들이 지천에 버리고 가는 쓰레기는 오롯이 동네사람들 몫이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수행 이장을 비롯한 동네사람들 급선무는 동네청소이다. 3년 전 마을자치회가 결성되었고, 작년에는 탑정리, 선샤인랜드 등 논산의 새 명소 둘러보며 동네에도 적용하였다. 올해는 마을경관을 더 깨끗하게 하는 일로 정하고 매달 한 번씩 대대적으로 청소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저수지 둘레길로 멋진 경관 조성까지는 성공했으나, 정작 문제는 관리(管理)가 돼버린 형국이다. 


가곡2리 마을자치회는 위원장 이수행,  총무 이재용이고 위원은 조관행, 김남학, 김영관, 추은희, 조동명, 신영수, 송영식, 조용구, 김순자, 홍성미, 이순례, 이영순, 조찬구 씨로 구성되어 있다. 회의 때마다 중지(衆智)를 모으고 다함께 실천 중이다. 수려한 경관으로 사람들이 몰려오니 저수지 인접한 논밭을 오토캠핑장으로 조성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농어촌공사나 관계기관이 법률상 어렵다며 No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물길 상류인 마을회관 앞마당은 동네 한복판으로 길다란 거리 공원이다. 공원을 끼고 도는 도랑에다가 하우스를 치고 장미터널을 구상중이다. 그 밑에서는 직접 들어가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어류체험장 밑그림을 제시했으나, 이 또한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장미터널 밑에서 물고기 잡을 수 있는 또랑을 구상함.


물고기체험, 바느질 체험....


물 관련 프로젝트는 지지부진하지만 뭍에서는 그래도 이것저것 하나씩 한걸음씩 진도를 나가는 중이다. 체험 하면 이 동네로 들어온 이명한전통문화체험학교도 일익을 담당한다. 최근 여기 산골에 버스로 들어온 학생들이 1만5천여 명에 달한다. 바느질을 하면서 강정도 만들고, 시골 외갓집이나 할아버지집 분위기로 인기 절정인 산촌하우스다.  

노성면에서는 조선시대 임금님께 참게와 조흥감을 진상하였다. 가곡리는 조흥감 복원사업을 진행중이다. 묘포장은 윗동네인 가곡1리에 700여평 있는데 가곡리 자연부락마다 초입 진입로 가로수는 유실수 지천이다. 요즘은 청매화가 한창인데, 조경업을 하는 이장의 영향도 큰 듯하다. 


올해 65세인 이수행 이장은 노성면에서 15년 최장수 이장이다. 이장이 되자마자 청년회부터 결성하였다. 초창기 10명에서 현재는 18명이 된 상황인데, 청년회를 주축으로 세 곳 갈라져 있는 동네를 하나로 모았다. 2012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서 3천만원씩 지원금을 받아 도랑가꾸기를 하였다. 2016년도에는 10억을 따내서 저수지 둘레길과 동네 요소요소에 운동시설을 겸한 정자 공원을 만들었다. 


마을 발전을 위해 지원금도 많이 따왔지만, 동네살림은 자발적인 기부금을 받아서 꾸려가고 있다. 이 동네는 함께 모여서 일하고 놀고 먹는 일이 많다. 올해는 코로나로 대보름행사를 건너뛰었지만 어버이날은 뷔페로 동네잔치를 해왔다. 부녀회 인력이 딸려서기도 하지만 가곡1리 사람이 하는 뷔페집 이용해주는 취지도 있다고 한다. 칠석날도 모이고, 한 여름에는 초복 중복 말복 빠뜨리지 않고 때마다 모여서 식사를 함께 한다. 매월 한번씩 동네대청소를 하면서 먹는 식사비도 50만원을 상회한다고 하니, 가곡리 엥겔지수는 꽤나 높은 편이다. 먹으면서 정이 든다고, 이 동네의 단결력도 덩달아서 높아간다. 이장이 문자 하나만 날리면 거의다 모이는 분위기다. 

약초 활용한 건강지킴이, 사상체질과 체질 건강법 등의 주민교육


배움터 마을회관과 보조교사 일기장


기자가 방문한 날, 회관 앞 동네공원에 도착해보니 10여 명이 나와 있었다. 노인회장, 부녀회장, 마을지도자.....인사를 나누다 보니 동네임원은 아니지만 이재식 농업기술센터 소장도 만나고, 2년전 놀뫼신문이 심층보도했던 연꽃전통체험마을 뚝딱이아저씨도 오랜 만에 만났다. 봄철 되어서 농사일도 바쁜 터, 이장 한 사람 시간 뺏는다는 것도 마음 쓰였던 상황인데 서프라이스, 갑작스런 상황이었다. 잠시 후 각자 하던 일로 원대복귀하고 이장, 그리고 노인회장 내외만 남았다. 


소독하느라 잠겼던 마을회관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벽에 붙어 있는 것들이 참 많다. 소감나누기, 마을회의 이렇게 하면 망한다, 마을에서 살면서 즐거웠던 일들... 마을자치회 회의록도 대문자로 써 있다. 있는 그대로 내어놓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문화가 읽혀지는 분위기다. 마을회관은 경로당으로도 쓰인다. 한글학교도 하고 웃음치료도 하고 약초교육도 하고 가벼운 운동으로 몸도 풀고... 2월 25일 문닫을 때까지 올해 세 번 나온 어르신한글대학 남금숙 강사에게 분위기를 물어보았다. “화, 목 오전에 두 시간씩 공부하는데, 서로가 챙겨주시는 모습이 돋보여요.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도 학구열 대단하신데, 밤에 잠 안 오면 공부를 하신대요^”


면장님 사모님으로서 한글학교에 나올 필요가 없는 이영순 여사도 학생이다. 자칭 보조교사로서 언니 동생인 동네사람들 돕는 노노케어의 전형이다. “그 동안 써둔 일기장이 한 박스여서 지금 정리중”이라는 말에 중골 집에까지 찾아가보았다. 가게부 겸한 80평생 일기장은 엄청난 분량이었다. 재정리하는 노트는 백지가 아니라 뭔가 흐리게 인쇄돼 있는 재활용지였다. 무아레 현상처럼 아리까리하니 백지에 쓰시는 게 낫겠다고 하니 노인회장님, 때는 이때다 싶다. “내가 뭐랬어? 종이 아끼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면서 정작 당신은 “자서전 정리한다 한다 하면서 진도가 지지부진하다”고 하신다. 벽에는 서예 액자들이 걸려 있어서 “면장님 서예인가 보죠?” 물었다. 노성의 향기를 뜻하는 호 노향(魯香) 여사가 은천 윤여익 스승에게서 배운 솜씨란다. 


좌측부터 이수행 이장, 조관행 노인회장부부


일기장 속에서 편지 하나가 툭 튀어 나왔다. 25년 전 남편이 현직에 있으면서 업무상 술 마시고 왔을 때 써둔 편지 같다. 잠깐 봐도 되냐고 하니까, OK. 이제 이 나이 되니까 젊은 시절 낭군님이 잘한 거 속썩인 거 모든 흉허물이 없어졌단다. 편지를 보니 그 나이에도 남편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천상 여자였음이 구구절절 읽혀진다. 편지 말미는 모처럼 기분도 낼 겸 오늘은 외식을 하자는 추신으로 맺어졌다. 집에서 만들었다는 오디액 한 잔을 대접받았는데, 오디처럼 달달한 여운을 안고 인사를 나누었다. 밤, 대봉, 매실 과수원을 하며 사는 노부부 집은 묵향이고 노향이다. 

 


노성산이 품은 동네, 그리고 물 


동네 이곳저곳 돌면서 어느 골짜기로 들어가 보았다. 밭주인 이도범 옹을 만났다. “마을회관에 땅 희사하신 분 아닌지?” 여쭤봤더니 그분은 이보범이며 친척이라 하였다.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2층집에 살지만, 노인들 생활에는 불편해서 애들이나 오면 올라갈까 큰 의미 없다는 반응이다. “동네가 살기 좋아지면서 땅값도 올라 좋지 않은지?” 여쭤보니, 오른 데만 올랐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고 답하신다. 마침 염소막이 옆에 있어서 “요즘 염소 재미는 어때 보여요?” 물으니 값도 시원찮을 뿐더러 도축법이 시행되면서 도축비도 꽤 든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헤어질 때 “신문은 보실 수 있으세요?” 물으니 시력은 좋다시며 반긴다. 


이 동네 역시 노인천국이다. 총인구 90여 명 중 65세 이상 인구가 절반이다. 그 중 홀몸어르신은 11명인데 할머니가 9명이다. 차를 몰고 구암리 고개를 넘기 직전 노성산 임도가 숨겨져 있다. 황산성 임도와 엇비슷한 분위기의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암자도 하나 나온다. 할머니보살 한분이 혼자 사는데, 그 깊은 산 중턱까지 가곡리이다. 이장이 신경 써야 하는 영역도 그만큼 넓은 가곡리이다. 그 임도는 결국 월명저수지를 거쳐서 창공식당으로 빠져 나오게끔 연결돼 있는 호젓한 길이다. 


그 산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 병사저수지로 오면 산밑으로 충헌공윤전재실과 파평윤씨 덕포공재실이다. 거기를 지난 산밑동네는 가시라골인데 승마용 말도 두 필 보인다. 새빛감리교회부터가 가곡2리이다. 더 올라가 가곡1리 고개를 넘으면 구암리이다. 거기서 좌회전하면 공주역, 우회전하면 월오리이다. 월오리로 나와 23번 국도 바로 옆길을 따라 오면 정양원 입구이다. 노성산 자락의 시설이다. 커다란 연못 ‘산성골지’가 있다. 상월면사무소 뒤편 산쪽으로 가보면 산밑으로 집들이 옹기종기이다. ‘옥골지’가 있고, 신충리 산밑길 따라가면 나오는 산성리에는 ‘산성지’가 있다. 산밑 동네마다 어김없이 소택지나 둠벙이 나온다. 명재고택의 연못도, 월명저수지, 노성초 소곡저수지, 송당저수지.... 그러고 보면 노성산은 실로 많은 물을 품고 있다. 樂山樂水, 요산요수라고 읽어야 하지만, 노성산이 품고 있는 마을들은 요산약수라 읽어야 할 거 같다. 코로나 같은 잡귀는 물렀거라 할 생명의 회춘약수!




[글·사진] 이지녕

위 글은  『놀뫼신문』  2020-03-04일자 7~8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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