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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Feb 02. 2019

화지시장 터줏대감 3총사 이야기

- 화지중앙시장 10구역 사람들(1)


논산 화지중앙시장 10구역은 옷의 거리이다. 서울양품이 있고 광진양품이 있고 문화양품이 있다. 3총사, 모닝커피계원 셋이 옹기종기인 양품점들이다. 서울 광진구, 대전 문화동이 연상된다. 넥스트 도어 투 앨리스격인 광진양품부터 들어가보았다. 광석 가는 시간표가 붙어 있다. 두 부부가 광석 출신인데, 아저씨 성씨가 진씨여서 광진양품이라는 설명이다. 


광진양품 ~ 문화양품


가게 한 지 50년 가까이 된, 서울양품/ 문화양품과 함께 시장 터줏대감들이다.  도중에 공설시장 불이 나서 6·25 못지않은 수난을 겪는 가운데 모진 세월 헤쳐온 장본인들이다. 한때 장사가 엄청 잘 됐지만, 지금은 너무 안 돼서 남들이 장사 경력 물어보면 입작은 개구리처럼 3~4년 됐다고들 답한단다. 유명의류, 명품만 찾는데다가 아울렛 지천이고 게다가 구제옷까지 사람들의 브랜드 과시욕을 충족시켜 주니 요즘 양품점은 설상가상이다. 몸뻬바지를 비롯한 예전 멋쟁이 패션, 일명 할머니패션은 시골할머니들에게서조차 하시받을 때가 없지 않단다. 어쨌거나 아줌마 할머니 한 벌 쫙 빼는 데 5~6만원 선이란다. 



시대가 변해가니 업종 전환을 검토해봤는가 질문해보니, 시장의 특성상 그 또한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옷 장사 신통치 않다고 해서 이 골목에다가 튀김집을 내겠어요?” 옷 장사는 잘 안 돼도 가게세 안 내도 되고, 이 나이에 대외적으로도 명함 하나 갖고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는 의미다. 청년창업 관계로 오모찌를 찍는데 찬조 출연하여서 한시간여 숱하게 찍었는데, 정작 본인이 나온 시간은 1~2분. 그런데도 부곡하와이 가니까 자기를 알아보며 TV에 나왔다고 난리가 아니더란다. 정작 그래도 고향 광석사람들이 찾아와주고, 그분들에게 요긴할 버스시간표 적어다가 복사하여놓고 필요한 대로 나누어준다. 시간 날 때는 십원짜리 동전도 정리하여서 은행에다 갖다 준다. 이제는 장사만이 능사가 아닌 생활이다. 



서울에서 당하고 도매집에서 떼었지만 


건너편은 경쟁업체인 서울양품점이다. 사람 좋게 너털웃음을 달고 다니는 남자사장님은 형식적으로는 커피계 회장이지만, 비선실세는 안주인이다. 기자양반 들어오니 바깥양반 나가 있으라고 명하신다. 자기가 이 소리 저 소리 하는 걸 싫어라 하니, 남편이 곁에 있는 게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서울상회라고 지은 내력은 알 수 없으나 유추 가능한 대목을 풀어낸다. 시집 와서 시아버지가 아들며느리 제금 내주면서 당시돈 37만원으로 가게를 하나 얻어주었단다. 물건 해올 돈이 없어서 친정어머니에게 10만원을 어찌 해달래서 그 중 2만원은 시누이 급하게 쓸 돈 해주고... 어쨌거나 신랑에게 서울 가서 물건 해오라고 3만원 또 꾸고 하여 13만원 해서 올려보냈는데.... 서울에 올라간 신랑, 일 다 보고서 그 보따리가 워낙 무거운지라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보고 잠시 봐달라면서 국밥집 가서 급히 밥 먹고 나와 보니...... 그 길로 서울 봉천동 큰 집에 가서 자초지종 얘기하고 통사정하여 8만원 빌려 어찌어찌 물건 해갖고 와서, 그래서 비로소 시작하였다는 옷 장사! 



빌렸던 3만원부터 시작하여 나머지 돈 돌려주는 데 숱한 시간이 흐른 이야기부터 보따리가 풀어진다. 3평 남짓한 가게에서 살림도 해가며 애들 복짝복짝 키우던 시절, 골목은 흙길이었다고 한다. 아침이면 세수를 하고 물을 버려야하는데, 그럴 상황이 안 되어 세수는 한 밤중에나.... 그 때부터 달려온 행로는 오직 앞만 보고 달리기! keep on running이 따로 없었단다. 애들 키우면서 사준 짜장이 자기 돈 내고 사먹어본 유일한 사치인데,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요’  랩가수의 노래가사 출처가 바로 여기인 듯싶다. 


중고 시절 남들은 3천원짜리 고급가방이었는데 1500원짜리 사준 아들 가방이 헤어져서 보니까, 아들이 어디선가 종이 골련데기 구해다가 기워서 들고 다니더란다. 과외라도 시켜주랴 했더니만 “엄마, 나 과외비 줄 만큼 부자야?” 3남매를 키웠는데 큰 아들이 고려대 나왔고, 별명이 왕소금였던 막내는 회계학과 나왔다고 자랑 아닌 자랑보따리다. 아들들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라고 불렀는데, 엄마라 부르는 딸은 워낙 이쁜데다가 삭냑해서 김치도 잘 담가오고 살림꾼이라고 자랑이 끝없다. 어렸을 때 자기 동생이 500원 주워서 300원어치 딸기 혼자 사먹은 모양이다. 이 얘기 건네 들은 엄마는 1년에 한번씩은 5관짜리 양은다라에다가 딸기 하나 가득 사다가 애들 물리도록 앵겨주었다고 술회이다. 장사로 그렇게 힘들었어도, 키우는 동안 애들 한 번 욕하거나 때린 적 없이 키운 것도 자랑이란다. 


어려우니 어려우니 해도 7번 이사를 끝으로 집 한 채도 장만하고 살림이 좀 폈지만, 그 때 아등바등 아끼던 습은 몸에 그대로 남아 있다. 50년 전 15원 주고 샀던 구멍 뚫린 양은바구리는 지금도 그대로이다. 지금도 새벽 3시에 일어나 밭일 하고 들어오면 5~6시, 아침준비하고 가게 나오면 8시. 도시락도 남편것과 함께 2인분 꼭 바구니에다 싸온다. 


기자가 부지런히 메모하는 이면지 내려다 보면서, “내 고생한 얘기 다 받아적으려면 A4 용지 수백 장 갖고도 모자랄껴!” 또 그 인생노트, 인생책 이야기다. 몸빼 바지 27,000원이면 처음에는 받았다가 2천원은 차비라도 하라면서 돌려줄 때도 있단다. 서울양품 아줌마 얘기 요약하면 이렇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뱃속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봉사는 못할망정, 적어도 민폐만큼은 끼치지 말자, 그거예요!” 


[글·사진] 이지녕  

이 글은 2017-07-20일자 『놀뫼신문』에 실었던 내용 중 일부분입니다. 

어쩌다 보니 인터넷판에는 누락되어 있는데, 순서에 상관없이 나누어서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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