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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Feb 03. 2019

"대한민국에서 미싱 고쳐주는 데 있음 나와보라 해"

- 화지중앙시장 10구역 사람들(2)

초촌 연화리에서 온 ‘연화상회’


#서울양품 아줌마 얘기 요약하면 이렇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뱃속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봉사는 못할망정, 적어도 민폐만큼은 끼치지 말자, 그거예요!”  다소 무거운 화두이다. 건너편 #문화양품도 슬쩍 보니까 그 물건이 그 물건이다. 커피계의 일원인 ‘연화상회’는 큰 길가쪽으로 떨어져 있다. 택시운전기사들이 진치고 부여나 성동, 광석쪽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쪽이다. 


조금 전 모닝커피계에서 봤다고 구면이라고 반색 일색이다. 요플레를 내오고 얘기 좀 나누다가 옆집으로 가버렸는데도 쫓아와 과도로 깎아온 복숭아 메겨준다. “연화상회? 내 친구가 간판집 했는데, 그 친구가 알아서 이름 파고 하여서 걸어준 거여!” 이제는 80이 다 되어 간다는 양갑상 사장님 설명이다. 고향이 부여 초촌면 연화리인데, 친구가 상의도 없이 그렇게 정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내막을 아는 주변 사람 거의 없다. 하긴 내 장사하기도 바쁠 터이니... 


기자가 들어서니 안주인은 사위 자랑이다. 여성지만 판치는 세상에서, 얼마 전 선보인 남성전용매거진이다. 딜럭스 사진들이 글자 별로 없이 파격적으로 펼쳐져 있다. 강남 사위는 딸이 하두 이뻐서 낚아챘다나 뭐래나... 논산 복숭아덕인 모양이다.  밀짚모자들이 즐비한데 패션형이어서 비싼 거 같아 예전 무늬 없는 걸로 물어보니, 요즘은 저렇게 다 디자인되어서 나온단다. 베트남 모자도 심심찮게 팔리니 격세지감이다. 


손님이 하나 와 긴 우산 찾으니 안주인은 일반장우산 꺼내준다. 80 다되었어도 여전히 훈남인 양사장님이 멀찌감치에서도 대뜸 알아듣고는 달려나와서, 산업용 우산을 끄집어 낸다. 단가가 12,000원이 얘기됐는가 싶었더니 나중 4개 값 총 4만원 낙착되고 만 모양이다. “이문 많이 남기고 안 남기고가 중요한 게 아녀. 재고가 안 쌓이도록 하는 게 잘하는 장사여!” 이 골목 남정네들,  셔터맨으로서만 기능하는 줄 알았는데 장사의 신(神)까지는 아닐지라도 역시 프로들이다.


이 우산 손님이 처음 들린 곳은 ‘서울미싱’이었다. 길다란 바를 본 손님이 긴 우산 달라고 하자, 연화상회로 가보라 안내한 것이다. 손님이 한 다발 그득 사가는 걸 보면서 서울미싱 아줌마 깔깔 댄다. “이제 나두 긴 우산 갖다 놔야겄써!” 


연산상회 지키는 모자(母子


연화상회 옆은 이름도 나란히 ‘연산상회’이다. 대표 김희순 여사는 방년 83세로 이 골목 왕언니이다. 이 왕언니와 서울미싱아줌마는 이제는 한집식구 오누이 같다. 왕언니는 끌개차 밀고 다닌다. 어쩌다 손님이 와서 끌개 끌고 맞으면 도망가는 손님도 있단다. 


미싱아주머니도 수술을 몇 번 하여 허리가 성치 않지만, 그래도 몇 살 더 젊었다고 아침 오픈할 때 연산상회 이불이나 베개를 가게 앞 진열대까지 꺼내 준다. 젊은 기자가 거들어 주겠다고 하니, 가만 있는 게 도와주는 거란다. 손님도 없는데 쉬엄쉬엄 제 자리에 디스플레이해 놓겠다는 속마음인가 보다. 


연산상회는 가게가 마주 보면서 둘이다. 살기도 아들과 함께 둘이서 산다. 아들이 어려서 약을 잘 못 먹었는지 궁민 학교도 못 보냈단다. 말은 잘 못하거나 안 해도 말귀는 알아들어서 못난 소나무이지만, 홀로인 엄마숲을 지켜주는 듬직 아들이다.



미싱 고쳐주는 할머니 아세요?

영감이 먼 나라로 먼저 가기는.... 건너편 서울미싱도 엇비슷하다. 10여 년 전 먼저 떠나버린 남편과는, 예전에 길 건너쪽에서 미싱가게를 하였단다. 미싱도 팔고, 고쳐주기도 하고 해서 호황였던 호시절 역시 다른 가게와 유사한 경제 사이클이다. 그러던 것을 지금은 오직 재봉틀 고쳐주는 일만 하신다. 


“대한민국에서 재봉틀만 전문 수리해주는 데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동시에 역해설도 곁들이신다. “이게 돈이 되면 너나 할 거 없이 대들었겠지, 왜 나만 홀로겠어?” 이제 논산시내에는 솜틀집이 없다. 이 미싱집도 언제까지일지는.... “할머니가 미싱 수리를 직접 해주니까 미싱 솜씨도 웬만큼은 되겠어요?” ....... “아녀, 다 고쳐놓고서 시험 삼아 해보는 정도야!  재봉기술을 배웠더라면 내가 수선집을 하지, 이 미싱을 지금까지 끌이고 있겠어?” 일당 정도는 두둑이 챙겨가는 수선집들이 부러운 모양이다. 미싱 고치는 거 말고 판매를 권했더니 뭘 모르는 소리 하지 말랜다. “옛날 철미싱은 고장이 안 났는데 요즘 플라스틱미싱들은 왜 그리도 시원찮은지?” 기술은 하이테크인데 브라더미싱 같은 기술은 오히려 퇴보하나보다. 


“오늘따라 바람이 없네?” 골목풍은 큰 길에 바람 없을 때에도 시원스레 찾아와 주고는 한단다. 때 마침 시골할머니 한분 검은 비닐봉다리와 함께 딸랑딸랑이더니만, 연산 상회에 와서는 그 보따리 풀어놓는다. 아직은 온기가 남아 있는 찰옥수수다. “이거 어제, 우리 동네 외성리 옥수수밭 정리하는데, 이삭 주워갈 거면 가라고 해서 따갖고 쪄온 겨!” “할머니! 그거 갖고서 버스 타고 오르고 내리고, 귀찮지 않았어요?” “버스가 데려다 주는데 뭘? 어여들 맛이나 봐요.”


큰길 주차장이 지척지간인데, 이 골목 길가는 이 할머니나 다른 할머니들의 또다른 주자장이 바로 여기 또였다. 동네 이야기, 자식이야기, 흉보는 뒷담화! 6·25 인공때 이장였던 친정오빠 살아남은 이야기..... 여기는 싸전이 아니라 이야기시장이다. 참새방앗간에서 한참 수다 떨던 할머니, 미사일처럼 갑자기 건너편 미장원으로 쑤욱~ 돌진이다. 안에 있던 미장원 아줌마 “어머! 오셨어요?” 반색이다. 그러고 보니까 옥수수는 단골인 미장원 아줌마에게가 아니라, 이 골목 터주대감들 떠올라서였나 보다. 시장 골목에는, 옥수수 잎 스치는 바람소리도 함께이다.



[글·사진] 이지녕  

이 글은 2017-07-20일자 『놀뫼신문』에 실었던 내용 중 일부분입니다. 

어쩌다 보니 인터넷판에는 누락되어 있는데, 순서에 상관없이 나누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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