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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Feb 04. 2019

옷수선집에서 하소연
“며늘아기 찾아 3만리”

- 화지중앙시장 10구역 사람들(3)

구제옷 속에서 찾은 보물들 


화지중앙시장 10구역 내에 구제옷 보세집은 몇 된다. 그 중 하나가 보/찾/사이다.  ‘노찾사’처럼, ‘찾사’는 찾는 사람들이라는 통념이 명함을 받으면서 깨진다. <보물 찾아 사세요!> 구제는 의류뿐 아니라 가방, 신발 등의 명품으로도 이어지는 모양이다. 가게 입구를 굴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진열된 물건들 물산물해이다. 신문을 전해주려고 헤집고 들어가니, 집에서 『놀뫼신문』을 본다는 게 첫 반응이다. 고맙고 반갑다고 해얄지, 척력(斥力)인지 헷갈리는 순간이었다. 하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 정도의 반응은 무리가 아니리라. 



정작 보물은 그 앞 엄지수선에서 찾아낸 기분이다. 기자가 엄지수선을 알게 된 것도 순전히 개인 추천에 의해서였다. 양복을 고쳐입을 일이 생겨서 어디로 가야 잘 하려나 고민하던 터에, 시장에서 옷가게를 하였던 지인이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소개받은 엄지수선을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물으니, 거기 가면 다 옷가게들이고 거기서 물으면 되니까 자꾸 되물을 필요가 없다고, 오히려 깝깝하다는 반응이었다. 과연 미로였고, 그러나 이름을 대니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다음에 찾을 때는 또 헤맸지만....


수선집은 환절기가 바쁘단다. 몇 달 전 첫 대면 당시 인사가 “지금 당장은 못하니 급하면 딴 데 찾아보든가, 며칠 기다리든가” 택일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급할 것도 없고 하여 양복 가봉하듯 실측하고 그러는 동안..... 손님이 간간 들어왔다. 내게 던졌던 말과 대동소이한 멘트가 반복되다가 갑작스런 반전! “아저씨, 커피 하시면서 조금더 기다렸다가 찾아가세요!” 기자가 죽치면서 그 아저씨에게 커피 인심 쓰는 동안 주인아줌마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거동도 불편한 저 아저씨, 또 오게 하기가 좀 그렇지!’ 특혜가 지속되는 동안 은진 남산리에 산다는 아저씨의 약간 어눌한 말은, 그러나 얘기꾼으로는 청산리 벽계수였다. 


몇 억 모아둔 아들이 아버지 입으라고 바지를 사갖고 오기는 왔는데, 길어서 줄여 입으러 온 거라면서.... “이딴 바지 백 개 사주어보았자 하나두 기쁘지 않다. 내 아들놈 장가 보내려고 시내 나오면 인근 은행 여직원들 눈여겨 봐두었다가 자연스럽게 점심도 사주고 하면서 벼라별 작업 다 걸어놓고서, 당사자인 아들에게 신신당부! 오늘은 어디 은행 들어가, 앞에서 왼쪽으로 두 번째 앉아 있는 아가씨 꼭  보고 오라....” 그렇게 흘러간 십수 년~~ 장가들 생각이 없어 보이는 아들이 이제는 왼수 같단다. 


거동이 불편한 것은, 오래 전 엄청 큰 교통사고로 100% 식물인간이 되었단다ㅠㅜㅡ 회생률 0!  대체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물어보니 두세 가지로 요약한다. 1) 마누라가 안 도망가고서 지극 정성 돌보아주었다. 2) 교인들이 아무런 소망이 없는 나를 끊질기게 찾아와서 기도해주었다.... 눈만 꿈벅거릴 수 있던 완전식물인간 5년여~ 이제는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적처럼 일어났고... 그 몸으로 퇴원한 후 다리 끌면서 논일 나가고.... 천신만고 끝에 재활회복쪽으로 상향곡선을 그어왔고~~ 그때 문병왔던 친구들이 오히려 먼저들 가버렸다고~~~


모닝커피계를 아시나요?


 김점덕 사장은 오후 4시면 문을 닫고 들어간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 몸 관리도 철저히 하는 편이다. 얼마 전부터 논산보건소와 함께 시작한 아침체조는 하루를 여는 뿌듯한 즐거움이다. 이웃집 식구들과 함께 우싸우쌰 하면서 약간의 땀도 빼고 손등을 얹은 다음 파이팅까지 외쳐댄다. 그리고 나서 재봉틀 앞에 앉으면 기분이 업된다. 아침 체조는 몸 운동만 해주는 게 아니다. 문 여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아침은 물건들 진열하고 정돈도 하느라 마음까지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하루 종일 동고동락하는 이웃가게 사람들과 아침 인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그러던 것을 시장상인회 마이크 소리에 맞추어 골목통으로 한데 나와 함께 체조를 하니 눈인사도 절로절로 어깨도 절로절로가 아니 될 수가 없단다. 시장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음을 조금씩조금씩 체감해 가는 요즈음이다. 


이런 전체 화합 분위기 이전에, 10구역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 하나 있다. 모닝커피계!  그냥 커피계라고도 부른다. 요즘은 문을 대개 8시경에 여는 편이다. 셔터 올리고서 어느 정도 열어놓은 다음, 아침 커피를 한 잔씩 함께 나눈다.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10여 분 수다를 떨다가 원위치한다. 커피계는 6명, 부부로 치면 12명이 정회원이다. 양장점/양품점이 넷이요, 수선집이 둘이다. 수선집 중에서 꼭지수선은 문을 좀 늦게 열어서 모닝커피계는 5명이 하는 편이다. 커피계의 시작은 좀 거슬러 올라간다. 


엄지수선이 논산에서 개업을 한 지 24년채니까 어언 4반세기이다. 여기는 개업했다 하면 40~50년이니 햇수로 명함을 내밀기에는 끗발이 딸린다. 이 명동 의류골목이 거기서 거기긴 하지만, 엄지수선은 저 골목에서 이 골목으로 이전을 해왔다. 그런데 이 또한 텃세라면 텃세인지, 좀 어색하다고 느껴졌다. 같은 골목에서 하루 종일 함께 일하는데, 이 분위기는 좀 그렇다 느껴지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래, 아침 인사를 겸하여서 모닝 커피를 청해보는 거야!” 다음날 아침부터 한 집에게 커피를 타다 주었다.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심전심 공감한 그 이웃은 또다른 이웃을 오라 하고..... 커피계도 계는 계니까 유사는 있어야 하므로, 오늘도 돌아가면서 커피 봉다리 대여섯 개씩 챙겨갖고 온다. 장소는 붙박이다. 언제나 물 좋은 엄지수선집이다. 이를 부러워한 다른 가게들도 모닝커피계에 들어오고자 하는 주인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너무 많으면 북새통이므로 정원을 제한하였다. 


한 달에 한번씩은 돈을 걷어서 식사도 함께 한다. 어저께 저녁은 번개팅으로 모였다. 만원씩 걷어서 삼겹살도 사고 밥도 앉히고, 상추도 씻고 마늘도 깠다. 마늘이 화근이었다. 남정네들이 마늘 까는 모습이 정겨워 카메라를 들이대니 화를 벌컥 낸다. “우리가 지금 80이 다 됐는데, 남사시럽게 마늘 까는 걸 왜 찍어?” 이렇게 촉발된 외부인 저항감은 곱상하게 생긴 문화양품점 안주인에게로 점화되면서 임계점에 도달하였다. “기자양반이 만원을 내겠다고 하는데 오늘 저녁은 우리끼리 상의할 일이 있어서 모인 거니까, 내일 모닝커피계에나 오세요!”  


그 다음날 발언권 쎈 그 아줌마만 안 나와 있다. “허허~ 오늘 아침 사진 찍히니까 옷 이쁘게 하고 나오라 했더니만....” “왜 그런 소리를 해서 신경 쓰이게 했대? 언능 가서 모셔 와!” 잠시 후 등장한 문화양품점 아줌마, 5명 정족수가 성립되었으므로 때는 이때다 싶어서 재빨리 카메라 셔터 한 번 누르니 마시던 커피 든 채로 조건반사 기립이다. “더 이상  안 찍을게요.”  큰 소리 다짐에 마지못하여 제자리 털썩! 지독한 사진 알레르기에 카메라만 보면 경끼를 느끼는 모양이다. 


나에게도너에게도 엄지척


엄지수선 점덕 여사의 수선 역사는 서울 양장점에서 시작되었다. 서울이 고향인 점덕씨는 친정엄마에게서 한 유산 물려받는다. “여자는 남자 잘 만나서 애 낳고 살림 잘 하면 그게 최고의 행복이란다.”쪽이 아니었다. “여자도 기술이 있어야 해!” 그래서 재봉틀 바느질을 배웠고 양장점을 다녔였다. 당시 전기기술자로 서울에서 일하던 꺽다리 남편을 만나 서울살림을 차렸다. 


그러다가 30여년 전, 양장점 일도 하향곡선을 긋고 남편 일자리도 변동이 있고 하여 남편 고향인 망성으로 내려왔다. 시골 농사에 익숙지도 않았던 점덕 씨는 갖고 있던 기술 썩히기도 그래서 5년여 인근 의류회사에 다녔다. 그러다가 읍내 사람들도 사귈 겸 논산공설시장에 수선집 가게를 차리게 된다. 상호는 엄지로 정하였다. 내가 맡은 분야에서는 으뜸이 되고자 하는 의지에서였다. 요즘 대세인 “엄지 척!”을 예견했을 리 없겠지만, 언제나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나, 즉 스스로에게나 찾아주는 손님, 이웃에게 엄지척을 해주고픈 일념뿐이다. 


손님들이 다양하다. “청년들 외에는 출입금지, 단 마음이 젊은 분은 예외!”라고 써붙인 10구역 이 청년거리는.... 실은 할머니 할아버지 전용도로이다시피다. 장날이나 병원에 가는 날, 예전의 명동였던 이 거리를 특별한 볼일 없이도 한번 거닐어 보는 추억의 길이다. 그런데 가끔 이 골목에도 아가씨들이 나타난다. 수선집은 멋쟁이 젊은이도 거쳐가지 않을 수 없는 필수 관문이기 때문이다. 시장에는 수선집이 15개 정도인데, 이 골목에 있는 성희수선은 주인이름이 김성희, 여자분이다. 수선집은 양잠점 출신이 대부분이지만 양복점 출신도 있다. 꼭지수선집이다. 남자 수선집이 또하나 있단다. 길 저편 ‘수선나라’라고 한 듯싶다. 


엄지수선에 한 남자 손님이 찾아든다. 태권도 검은 띠 같은 걸 몇 개 가지고 와서 몽땅 합체시켜 달라는 주문이다. 점덕여사 왈, “이건 저쪽편 신신제화로 가보세요.” 아직도 수제화를 하는 곳이다. 가방 두꺼운 것 재봉질은 오거리 철교 밑 수선집을 권한다. 확인해 보니 “밀리네오”다. 교통정리는 엄지수선을 나오면서 더 헷갈린다. 



[글·사진] 이지녕  

이 글은 2017-07-20일자 『놀뫼신문』에 실었던 내용 중 일부분입니다. 

어쩌다 보니 인터넷판에는 누락되어 있는데, 순서에 상관없이 나누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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