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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Feb 04. 2019

38따라지시장에서 3800냥 칼국수 해주던 새댁

- 화지중앙시장 10구역 사람들(4)

논산의 시장은 이동중이다. 상권의 부침과 함께.... 지금 화지시장 건너편, 그러니까 논산 장날에 염소나 토끼 같은 가축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는 장터, 그곳이 중심권인 시절이 있었다. 6·25 사변 이후 피난민들이 전시물품도 사고팔던 곳. 북한 고향을 버리고 38선을 넘어온 사람들을 비하하여 38따라지라고도 하는데.... 그들이 좌판 벌이던 곳이 지금의 화지시장 길 건너편 38장이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논산장은 3일장과 8일장이어서 논산은 38장이다. 38장 건너편으로, 현대식 공설시장이 들어섰다. 지금도 ‘화지중앙시장’이라는 공식 명칭 대신에 여전히 ‘공설시장’으로 불리운다. 2층 건물인 이곳이, 지금은 10구역이라는 이름표 붙은 청년창업의 거리이다. 젊은 피가 수혈되면서 백제 부흥처럼 옛 영화를 꿈꿔보지만, 돈의 흐름이나 교통의 흐름은 아직도 수월치 않은 형국~~


38로 풀어보는 논산 시장 흐름


골치 아픈 경제 얘기 잠시 밀쳐두고, 금강산도 식후경.... 배 고픈 얘기부터 흘러가보자. 시장 하면 역시 시장국밥이요 시장순대이다. 논산의 전통시장까지 차를 몰고 오는 이유 중 하나로, 취암집 꼽는 사람이 꽤 된다. 추억의 순대국밥이 그리워서이다. 1년에 한 달 정도는 주인아줌마가 문을 열지 않는데, 그때 이 집만 목표로 해서 논산시장을 찾아온 사람들 원성이 드높다. 그 맛과 전통, 유명세에 밀려 놀뫼신문도 결국은 시장순대명소 취암집을 소개하겠지만, 오늘은 다른 곳으로 샜다. 11구역에 있는 신출내기 “보리밥집 오픈”이다. 얼핏 식당 이름이 오픈(Open) 같지만, 개업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의미다. 작년 11월에 오픈을 했으니 그야말로 새내기이다. 그 새내기가 파워를 발휘하고 있는데, 그 저력의 일단이 3800원이라는 가격대, 즉 착한 가격에서 나오고 있다. 


38은 요즘 논산의 화두이다. 고속버스 터미널 건너편에 자리한 3800원 콩나물국밥집이 24시간 북적인다. 가격도 파격이지만, 음식의 질 또한 떨어지지 않는지 관광버스 손님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러나 대부분은 혼밥족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음식점에 들어가면, 다른 손님과 담쌓기에 바쁘다. 그런데 이 집 분위기는 담이라는 게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도 평소 잘 아는 사람들이 구내식당이라도 들어선 듯한 착각이고, 이런 생각이 스며드는 것은 아마도 서민적인 가격 탓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셀프이다. 그렇지만 겸상까지는 아니고, 서빙하는 사람들과 흉허물 없이 말 섞을 분위기까지는 아니다.


 새내기면서 시장 휩쓰는 보리밥집 새댁 


이 두 가지를 넘어선 곳이 화지 시장 어느 곳엔가 자리 잡은 그 보리밥집이다. 일단 이 집에 들어가서는 자기 마음대로다. 밥도 양만큼 푸고, 구내식당 뷔페통과 비슷한 곳에서 상추며 열무, 파, 가지, 오이, 호박 등을 손 가는 대로 담으면 된다. 여름이 별미 콩국수는 5천냥이지만, 칼국수는 3800냥이다. 점심때는 혼자 앉아서 나머지 빈 자리는 그냥, 혹은 “같이 먹어유~” 말 건네면서 자연스레 합석이다. 다 먹은 다음에는 그릇을 주섬주섬 담아서 주방에다 갖다 준다. 어떤 그릇이든 카운터 비슷한 곳에까지 갖다놓는데, 혹간 다정도 병인 엄마들은 38선 넘어 주방으로까지 그릇을 들고 온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합석에 이어 서빙까지 자동빵이다. 손님이 넘치는 분위기다 싶으면 언능 자리를 피해줄 겸 양촌리 봉다리 커피 황급하게 타갖고 나가서 시장 골목통으로들 빠져 나간다. 


버스에 타서는 동네할머니끼리 자랑질이시다. “오늘 점심은 시장 새로 생긴 보리밥집에서 먹었는데, 겁나게 싸고 겁나게 맛있더구먼!” 귀동냥하던 건너동네 할머니, 그 다음 장날에 소문으로 듣던 보리밥집 찾아나선다. “나 여기 찾느라구 1시간 넘게 걸렸어!” 그 할머니, 아니 여기서는 ‘엄마’로 호칭되는데, 그 엄마는 다음에도 똑같은 집에 가서 똑같은 질문고, 드뎌 문 열고 들어서면서 또 똑같은 1시간 타령이시다. 



시장 골목은 그야말로 미로찾기다. 그래도 어떻게든 찾아낸다. 한때 명동이었던 이곳 상권은 대우약국과 대한약국이 있는 1~2구역에 명동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러나 10~11 구역은 끝에 0자를 빼내면 예전의 명동자리임에 틀림 없다. 이 죽은 상권에 자기발로 찾아와 계약을 하고 도전장을 내민 새댁은, 세상 물정 같은 데 어수룩한 전업주부였다. 군 계통에서 일하던 남편이 정년퇴직 후 2년여 집에서 노는데, 변화가 필요했다. 그간은 남편 월급덕에 살았지만, 허구한 날 둘이 얼굴만 쳐다보고 있노라니 좀 뭣하여서, 생각을 하나 했다. ‘텃밭에 푸성귀들도 많겠다, 시장에 나가서 싸게 집밥집 하면 혼자서 드시는 어머니들 뱃속이라도 편하게 되지 않을까?’ 


선술집하던 곳을 인수받아 인테리어를 밝게 하였다. 바로 옆에는 약초방앗간인데, 장사가 안 되는지 문이 닫혀 있었다. 겨울, 그 썰렁한 골목에다가 큰 솥단지 하나 걸고 거기에다가 한 솥 가득 칼국수 육수를 끓였다. 바지락뿐만 아니라 해금, 복숙, 디포리, 멸치, 양파, 다시마 등등을 넣고서 진국을 우려냈다. 맛의 깊이를 아는 분들은 또 찾아주었다. 값도 워낙 싼데다가 신랑이 워낙 삭냑해서 “엄마, 엄마” 부르니 시골노인네들 혼이 다 빠진다. 엄마 일찍 여윈 신랑의 굶주렸던 모성애가 자연스레 발현된 상황였는데, 이 또한 노년 시대에 궁합이라면 찰떡 궁합이리라~~ 그 신랑이 가까운 곳에는 걸어서 배달도 다녔는데, 어깨에 무리가 됐는지 보름여, 오늘까지 쉬고 내일부터는 출근을 한단다. 


그 공배를 6학년5반 언니가 메워주고 있었다. 그 언니 신랑 역시 여기 논산 중앙시장 야채골목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들려준다. 강원도 고랭지꺼 밭떼기하여다가 서울 논산으로 퍼날랐던 캐리어는 접어두고, 이제는 주변에서 노가다일 하면서 시장일은 접었단다. 그간 시장에서 돈도 벌었지만 고생도 징그럽게 하여서, 책으로 쓰면 서너 권은 족히 나온다고 표현한다. 걸핏하면 입에서 좔좔인 이 책 타령은, 실제 펜을 잡는 사람 본 적 없지만... 어쨌거나 사연남, 사연녀 지천인 시장바닥이다. 


“신랑 완전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와도 되겠는지?” 하면서 걱정을 했더니, 이 가격에 인건비 써가면서 하면 남는 게 없단다. 큰 돈 벌겠다는 생각은 애초 없었다. 부부가 최소 인건비라도 건지면 되겠다는 소박한 생각은 이제 차별화된 식당의 전범이 되어가는 듯싶다. 6시 40분에 나와서 그날 먹을 만큼만 준비를 하는데... 결코 판매량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날 날씨나 직감 등에 따라서 팔릴 만큼만 맹기는 편이다. 우선 겉보리를 삶아 밥을 만든다.  이어 육수를 내고 나물거리 만들고 콩나물 삶고 호박 썰고... 겉절이나 김치도 그날그날 것만 담는다. 냉장고에 하룻밤 묵힌 반찬은 뭔지 모르게 차이가 나서이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날 먹을 만큼만, 집안 식구 먹는 것과 똑같이.... 


더 이상 무슨 설명을 더 하랴? 기자가 바쁜 시간을 피해 도착한 시각, 냉장고에는 아침에 갈은 콩국수의 국물도 두 사발만 남아 있다고 한다. 손님이 둘 이상 더 오면 “죄송하지만, 오늘 콩국수는....” 엄마 손님은 대부분 혼자 오는 경우가 많다. 혼밥은 원룸촌의 젊은이들 전용밥이지만, 여기 엄마부대는 딸이나 사위를 델고서도 나타난다. 젊은사람들 눈 씻고서 찾아보기 힘든 이 골목에 가끔 패밀리 군단이 나타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근의 신협, 농협 직원들도 얼려서 오는 경우도 잦아졌는데, 가족패밀리와는 다른 케이스이겠다. 


까치발로 고개를 삐꼼하는 할아버지가, 인터뷰하는 주인과 기자를 신경 쓰이게 한다. 드디어 문을 열고서는, “인근 선술집에 앉을 자리가 없어서인데, 혹시 이 집에 앉기만 하고 술은 사다 먹으면 안 되겠느냐?” 타진이 들어온다. 천사표 여주인은 영양가 없는 할아버지 서서 맞으며 “아버지, 그런데요 아버지” 연신 반색이다. 술만큼은 안 된다는 데에서는 스타카토이다. 점심 장사만 하고, 세 시쯤 되면 퇴근해야 해서이다. 집에 가서는 텃밭도 가꾸고 저녁 준비하고 다음날 일찍 나오고.... 일요일은 문을 닫는데, 그날도 한 주간 밀린 일 어쩌고 하다 보면 시간이 그렇게 또 하루란다. 


정수기 직원이 필터를 갈러 왔다. 손님도 그렇고 여기 일 때문에 들어온 손님도 금세 말을 튼다. 때도 됐고 하여 내가 먹은 보리밥값 내려 하니 안 받겠단다. 애매한 정수기 직원에게 “이리 돈 굳었으니, 날 잡아 곱빼기로 먹읍시다!” 청하니 OK란다, OK!


[글·사진] 이지녕  


이 글은 2017-07-20일자 『놀뫼신문』에 실었던 내용 중 일부분입니다. 
논산에 3800원짜리 밥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동이 좀 있네요ㅡㅡ

시장 보리밥집은 취재한 지 좀 오래 되어 궁금도 하여 주변분에게 전화를 해보았습니다. 힘 많이 들고 남편 연금도 나오고 해서인지... 1년쯤 하다가 다른 분에게 넘겼다 하네요.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은 대부분 오래오래 하시는데, 새댁이 큰 이윤도 안 남긴 채 하려니 힘 많이 들었나 봅니다.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새로 하든.... 시장에서 어르신 섬기는 아름다운 마음 여전하려니~~~ 생각해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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