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속 비워야 비상하는 촉새의 일요일

- 겨울박제 산책기(골아니- 6)

by 이지녕 쌩글삶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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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첫날이라 하니 설날 기분이다. 눈을 치워야 해서 무건 몸 일으킨다. 잔설처럼 야트막하니까 고모레는 금세 원대복귀다. 내친 김에 일어나서 돈버는 일을 해야는데, 나의 고질병 잠부족쯩이 발동.

희한타, 찬바람에 잠이 달아나기라도 하련만 눞자마자 이내 잠나라로. 마냥 퍼질 수만은 없어 10시쯤은 일어나 늦은아침 산길로 접어든다, 이래야먄 하루가 열리니 모닝 리추얼치고는 자의반 타의반.


오늘 코스는 실개천 물따라 하향곡선이다. 어쩜 저 얼음이 이번 겨울의 마지막 선물일 거라는 생각에서. 실하게도 얼었구나, 숨구멍 빼놓고는... 아쉬움에 기수 돌려서 상류쪽으로 거슬러올라가본다. 여름 같으면 철퍽철퍽, 베트남 밀림 속 행군이련만.... 조신조신 걸어가는 논두렁에 놓여 있는 새 한마리. 부리쪽이 여전 빨강인 게 딱따구린가붑다.


겨울 숲은 무덤이자 부활의 자췻방


그러고 보면 자연은, 숲은 무덤이다. 작년 가을, 중2골아니 엄마가 논 한가운데 널부러져 있었다. 올 때마다 위치가 달라졌고, 급기야 갈비뼈만 남았다. "뼈 빼고 다 빼준다"는 다이어트 카피가 무색한 그곳에 서 머잖은 곳의 새 사체. 걍 지나치려다 보니, 겨울박제다. 내 손아귀에서 깃털이 체온처럼 느껴진다. 살 하나 없이 사라진 덕다운 감촉이 온도로 치환되다니....


천재가 된 박제剝製를 아시나요? 겨울 자연 박제는 으스러지지 않는다. 운구를 속세로 이동해가는 동안 1미터 길이의 뱜이 탈피한 곳도 통과한다. 그래 그 뱜 대가리도 입 모양 그대로 살아 있었지. 내가 잠옷 벗어놔도 원형은 허물어진 채 애기고추 뻔데기처럼 쪼그라들건만, 그 사두는 포효하며 건재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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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따구리의 긴 혀와 뱜 대가리의 포효

딱다구리 입에서 혀가 흘러나와 옆으로 삐쳐 있다. 그러고 보니 부리는 참으로 길다. 숲속에 묻혀 있는 동안 저 부리로 쪼아대는 소리에 나는 열호했다. 어쩌다 카메라 챙긴 날, 그놈을 바짝 땡겨서 잡기도 하였다. 페이스북엔가 올렸더니 "저거 쉽게 잡히지 않는데?..." 나는 이런 인정 칭찬이 퍽이나 좋으다. 돈 잘 번다, 일 잘한다 그런 소리보다 훨.


작설차의 작설雀舌과는 달리 박제 속 혀는 참으로 기을다. 허긴, 부리가 저리 길으니 동일선일 밖에. 10여 년 전, 노래하는 건달이 밀양아리랑인가를 구성지게 불렀다.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도 잘 파는데....." 긴 부리새 박제를 대추나무 가시에 걸어놓았다. 일전, 애꾸눈 해적이 형상화된 말벌집 위에다. 나의 대추나무에 걸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쏘세지가 터져나온 부들도 흩날린다. 나의 영기를 보노라니 나는 해적왕이다. 먹이를 까시 위에 걸어놓는 때까치 추종자다.


대추나무는 해적왕의 보물창고

일요일 아침잠은 더 강적이다. 겨우 추스리고 5천원 국밥집에서 배를 따십게 한 다음, 아침잠 완전 떨구기 위해 잠시또 산길이다. 인적 드문 수풀 더미에서 때까치 한마리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 푸드덕 일직선으로 빠져나올 줄 알았건만 비비적 거리면서 스텝바이스텝이다. 상거 1m도 안되는 거리에서 1초 조우다. "이노마. 가긴 뭘 가?" 10m쯤 날아가 앉은 저 진상은 놀라는 눈빛, 성가시게 해서 비기 실타는 기색 하나 없다. 하긴 1m 안팎에서 까불던 콩새들도 꽤 있지, 근데 이 작것들 누구라 할 거 없이 내빼기는 왜 내뺀다냐들.ㅡ. 짐이 이뻐해 주겠다는 데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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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마친 중2골아니와, 새 짝

아랑곳하는 눈빛은 따로 있었다. 점심 산책길 되짚어오는 길에 가출한 걸로 포기했던 골아니를 잠시 또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하구 많은 곳 놔두고 여기다 자췻방 얻은 것은 이유가 있었나 보다. 시묘살이, 그래 엄마 골아니 몸을 들개들에게서 지키지는 못하지만, 옆에서라도...." "이제 삼년상, 아니 삼개월 풍장이 끝났으니, 때가 됐으니 환속했나 보다"


이제는 으레 덩그란 빈집이려니 그리 무심하게 통과하는데.... 잊혀졌던 중2골아니가 튕겨져 나간다. "이리와, 이리와, 이리 와보란 말야" 내가 지껄이는 소리는 구글번역기도 쇠영없나 보다.


어쨌거나 은신처 수색 당했어도 가출은 아닌가 붑다 하면서 뭔지 모를 미련에 갈대숲 쳐다보다 깜놀! 깜놀! 말랑말랑 눈동자가 날 주시하고 있는 게 아니련가. 오늘의 내 조건반사는, 눈길 거두지 않는 쪽이었다. 30초쯤 됐으련가. 3m 둘의 시선 사이로 꿀이 혈행하면서 도중도중에 뚝뚝 떨어지는 싶더니..... 경망하기 짝이 없는 내 촉새 입이 벌써 열려 있었다. "이리 와, 이리 와봐." 자연의 소리 아닌 괴성에 북으로 튀는 소리! 아뿔싸, 현대판 소금기둥이 오늘 또 하나 생겨났다.


입만 촉새가 아니다. 뇌도 무뇌에 가깝다. 하긴 새가, 촉새가 비행을 하려면 뼈도 비워야 한댔지. 노브레인은 이제 더 잔인한 카피를 써야겠다. "뼈속까지 비워드립니다. 뼛속까지요!"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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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의 촌평]

1) 공감을 자아내는 '백미(白眉)' 대목


"살 하나 없이 사라진 덕다운 감촉이 온도로 치환되다니...."

촌평: 죽은 새의 깃털에서 체온을 느끼는 감각의 전이가 압권입니다. 비정하고 차가운 겨울 숲을 가장 따뜻하게 위로하는 문장이라 가슴에 훅 들어오네요.


"나의 대추나무에 걸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 나의 영기를 보노라니 나는 해적왕이다."

촌평: 대추나무에 '사랑' 대신 '말벌집'과 '박제'를 거는 아찌만의 괴짜 같은 유머가 매력적입니다. 일상의 풍경을 자신만의 서사(해적왕)로 점유하는 에너지가 읽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해요.


"3m 둘의 시선 사이로 꿀이 혈행하면서 도중도중에 뚝뚝 떨어지는 싶더니..."

촌평: 야생동물과의 눈 맞춤을 '꿀의 혈행'이라 표현한 대목은 정말 로맨틱합니다.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느껴지는 찰나의 묘사가 아주 훌륭해요.




2) 관점/발상 전환이 필요한 '물음표(?)' 대목


"베트남 밀림 속 행군이련만 / 노래하는 건달이 밀양아리랑을..."

촌평: 비유가 베트남에서 밀양으로 급격히 튑니다. 아찌의 머릿속에선 연결되겠지만, 독자는 '갑자기 왜?'라며 길을 잃을 수 있어요. 연결고리를 한마디만 더 보태주면 좋겠어요.


"중2골아니 엄마가... 시묘살이... 환속했나 보다"

촌평: 고라니의 사체와 새끼 고라니의 등장을 '시묘살이'와 '환속'으로 연결한 건 기발하지만, 종교적·민속적 어휘가 겹치면서 의미가 다소 무거워졌습니다. 조금 더 담백하게 풀어내도 그 슬픔과 신비함이 충분히 전달될 것 같아요.


"입만 촉새가 아니다. 뇌도 무뇌에 가깝다."

촌평: 자조적인 유머이긴 하지만, 앞선 문장들의 문학적 깊이에 비해 '무뇌'라는 표현은 너무 투박한 느낌이 있습니다. '비워야 비행한다'는 멋진 통찰을 살려 "가벼워지기 위해 뇌마저 비워낸 비행" 정도로 표현하면 격이 더 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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