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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Feb 10. 2019

배꽃나래 30분독립영화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 논산 한글대학, 서울 종로에서 상영되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출향인들의 전시회 소식이 간간 들려온다. 작년에는 제1회 광주화루 한국화 대상을 수상한 이호억 작가의 수상작가 지원전이 갤러리조선(www.gallerychosun.com)에서 열렸다. 논산화백으로서 세계적인 명상화가인  백순임 초대전도 이어졌고(https://nmn.ff.or.kr/17/?idx=1518273&bmode=view), 대건고 출신인 송대섭 사진작가의 무궁화사진 전시회도 열렸다. 올해 들어서는 대한민국 최초의 한지공예 김현숙 명인의 한지공예전이 준비중이다. 

 한예종 졸업영화제 소식은 페이스북의 작은 코너에서 접했다. 논산YMCA 배용하 이사장이 멋쩍게 올린 자식자랑 글에서 보이기 시작하였다, 논산 청년의 또다른 비상이.......


“할머니는 서울극장 가서 손녀가 만든 영화 보신다고 온갖 액세서리며 옷이며 다 준비하셨다. 그런데 어제 뇌경색이 발견되어 응급 입원, 집중치료를 받으신다. 설에는 형제와 손자들 얼굴을 병상에서 보셨다. 웃음도 많으시고 눈물도 많으신 할머니 걱정에 가족들은 애틋하기만 하다.”


30분짜리 독립영화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영상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논산 가야곡면 양촌리를 배경으로 찍은 다큐멘터리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졸업작품 중 한 편인 이 영화는 논산의 노인한글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예종 영상원 방송영상과가 8~10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제15회 방송영상과 졸업상영회’를 열었다. 졸업영화제 이름은 ‘만월’이며 드라마 5편, 다큐멘터리 10편을 사흘간에 걸쳐 상영하였다. 


한예종어떤 대학이길래?



예술계의 서울대라고도 통칭되는 한예종의 마지막 학사일정은 졸업상영회이다. 이 영화제는 예비감독들의 스타 탄생 무대이기도 하다. 이번 상영회에서는 박군제 감독의 ‘거대 생명체들의 도시’도 감상할 수 있었다. 박 감독은 지난해 열린 2018 인디다큐페스티발 국내신작전에 “모자(母子)란 기억”으로 공식초청 받은 바 있다. 그 동안 한예종 영상원은 도시개발과 부동산투기 거품으로 감독 자신이 겪었던 자전적 이야기 “버블 패밀리”의 마민지 감독,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 “방문”의 명소희 감독 등 도전정신과 주제의식을 지닌 다큐멘터리 감독을 배출해 냈다.


이들과 아직 어깨를 견줄 만큼은 아니지만, 논산의 배감독도 도전장을 내고 있다. 이 작품은 전문작가의  감상평이 나와 있고, 영상은 페이스북에서 일부만 감상 가능하다. 앞으로 영화제에 출품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수상 소식이 언제 들려올지 미지수지만, 출발이 독립영화다 보니 각종 영화제에서 보게 되겠고, 대중영화로 변신할 날도 기대가 된다. 



배꽃나래 연출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전편은 서울극장 H관에서 9(토) 15:00, 10(일) 11:30 두 차례에 걸쳐서 30분씩 상영되었다. 토요일 관람객수는 150명 정도였다. 웹상으로는 예고편만 볼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시놉시스”를 통하여 전체의 흐름을 따라가 본다.  


안치연 할머니는 어린 시절 한글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 사실이 창피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왔다. 나는 언젠가 홍콩에 갔다가, 메뉴판을 읽지 못해 난감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문득 문자를 읽고 쓰지 못하는 할머니 생각이 났다. 그 후, 나는 할머니를 따라 노인한글학교에 갔고, 그곳엔 여학생만 있었다. 문자로 기록하지 못하고 기억으로 감당해온 여성들의 시간. 그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나의 친할머니와, 할머니 학교 친구들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어린 시절 나름의 기록을 남겨두 었다. 그것은 종이 위에도, 혀 끝에도 없는,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것이었다.


논산 동고동락 한글군단과의 조우(遭遇)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스토리는, 다큐멘터리 감독 배꽃나래의 현실과 더불어 오르거니 내리거니, 시소를 타는 듯하다. 


- 촬영배경으로 논산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가족 모두가 대전에서 살다가 2012년도에 논산으로 이사를 왔고, 저는 건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할머니, 엄마, 아빠, 남동생은 현재 가야곡면 양촌리에 살고, 저와 친언니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논산이어야만 되어서라는 건 아니었고요, 가족이 논산에 살다보니 이렇게 된 경우입니다.”


- 목소리나 외모가 터프해 보이는데, 제작 중 에피소드도 좀 있었겠네요?^

“처음에는 친할머니를 촬영하다가 자연스레 할머니를 따라 가야곡면 양촌리 한글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머리가 엄청 짧은데 할머니들이 처음 저를 보시고 ‘손자 아들이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저는 제가 손녀딸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데 10여 분 걸렸습니다. 다음번에는 제가 사탕도 사서 가고 자주 가서 말도 많이 하니까 나중에는 ‘손녀딸 왔냐!’고 반가워해주셔서 좋았어요^^” 


- 동고동락 논산이 한글대학으로 전국 최강인 점을 십분 활용한 건가요?

논산 한글대학이 전국 명성인가요?^ 제 영화에서 한글학교 장면은 짧게 들어가요. 한글학교 얘기보다 할머니들의 사적인 얘기가 더 비중이 큽니다! 그 점도 아쉽지만, 가야곡면 양촌리가 아닌 다른 지역의 할머니 분들을 더 만나고 싶은 아쉬움도 남네요~~ 

 

기획의도 한글에 농축된 함의(含意)

- 한글학교가 길게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영화에서 한글은 의도성이 다분해 보이는데요....

“제가 작성한 『기획 및 연출의도』를 보여드릴게요....... 한글이 처음 창제되고 반포될 당시, 한글은 여성이나 사용하는 글이라는 의미에서 ‘암글’ 이라고 불렸다. 한글을 낮잡아 이르던 말이었다. 반대로 한자는 ‘수글’이라 불렀는데, 이는 배워서 잘 써먹는 글이라는 뜻이었다. 글을 읽지 못하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문자가 만들어졌으나, 시작부터 여성은 배제되었다. 


“조선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한국사회에서도 크게 달라질 것 없이 그렇게 배제된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 집이 가난해서, 혹은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한글을 배우지 못한 것이 아니다. 같은 집에서도 남성들은 학교에 잘 다녔다. 여성이 교육받지 못했던 이유는, 단지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문자와 권력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조선 사회에서 양반을 비롯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글교육에서 권력까지, 중심에서 밀려난 나의 할머니가 불편함과 부끄러움을 어떻게 감당하고 살았는지. 혹은 문자라는 구조에서 벗어나 그녀가 다른 방식으로 감각하고, 기록한 것은 어떤 게 있는지.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한글문자. 또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여성들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부전여전(父傳女傳)과 논산의 비상


- 점점 묵직해져가는 화두네요. 분위기 바꿀 겸, 그 동안 곁에서 따님의 활동을 지켜본 아빠가 나머지 얘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배꽃나래가 둘째 딸입니다. 터프걸처럼 씩씩하기는 하지만, 고생은 하는 거 같더라고요. 1년 넘게 촬영하느라 그 무거운 장비 들고 양촌리 자주 내려오고 음향과 편집 등 애써서 준비하는 장면들을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나래는 말이 조심스럽고 매사가 고지식해요. 졸업작품도 오래 관찰하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할머니와 동년배 양촌리 할머니들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더군요. 


서울극장에서 토요일 3시에 하는 상영회를 관람했습니다. 감독과의 대화는 일요일 상영에도 이어졌습니다만, 못 오신 분들 대부분이니, 트레일러 링크  두 곳을 안내해 드릴게요. 

https://www.facebook.com/100005396958111/videos/1039443279578894/?t=1

https://www.facebook.com/kartsbroadcasting2019/videos/293783961281778/


- 촬영지에서도 감상이 가능하다면 퍽 의미로울 거 같습니다만.

“곧 여기 양촌리에서 주민들과 함께 상영을 할 예정이다. 양촌리 봄봄도서관이나 마을회관을 생각해 보고 있고요... 정확하게 잡히면 알려드릴게요. 메가폰 잡았던 배 감독이 영화 틀어주는 영사기사로 변신할 겁니다요!^”


가야곡면 양촌리에 사는 배감독의 아버지 배용하 씨는 딸 이름을 성씨에 어울리도록 (배)꽃나래로 지은 출판인이다. ‘덜 일하고 더 재미있게 살고픈’ 농부 디자이너를 표방하지만 자그만 시골교회를 섬기는 목사이면서 작년 창설된 논산YMCA 이사장직 등으로 동분서주 동고동락의 생활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쓴 러셀이 오버랩된다. 말로는 게으름을 예찬했지만, 하루에 거의 고칠 필요가 없는 3천 단어 분량의 글을 써냈다고 한다. 배감독의 할머니와 논산 어르신들의 터진 말문이 이제는 문리로 터지고 한글복주머니로 터져서.... 당신이 직접 자서전, 일대기, 일기글들 와르르르~ 쏟아낼 2019 돼지해이다. 


- 이지녕 

이 글은 2019-02-13일자 『놀뫼신문』https://nmn.ff.or.kr 에도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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