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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녕 쌩글삶글 Apr 13. 2019

용기있는자 세계 열고, 도전청소년 세계 우뚝

- 논산시학생 글로벌인재 해외연수 3년 

‘논산시 학생 글로벌 인재 해외연수’는 올해로 3년째이다. 지난 4월 2일부터 6월 22일까지 학교별로 나누어 진행중이다.  논산시 관내 12개 고등학교 2학년, 14개 중학교 3학년생 이들을 총합산하면 올해는 2700여명이 이 대열에 합류한다.


고등학생의 경우, 2016년 관내 고교 2학년 1559명이 중국을 처음 다녀왔다. 다음해인 2017년에는 중국의 싸드 보복 분위기 속에서 목적지를 일본으로 변경하면서 1623명이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올해는 다시 중국으로 환원하면서, 4~6월 총 1444명이 참여 예정이다. 

 동방명주 중국 최고 높이의 방송관제탑(강경고  중국 청소년 글로벌 인해 해외연수)


중학교도 100% 동참

한편 작년부터는 중학교까지 확대 실시하여서 졸업반 502명이 일본을 다녀왔다. 중학교 행선지는 일본 그대로 유지중인데, 올해는 14개 관내 중학교 3학년 천여 명이 일본 백제문화권 탐방을 순항중이다. 작년에 비하여 참여율이 두 배로 증가한 가운데, 금년도 중·고 전체로 보면 총 2700명 전원이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추세이다.


 중학교 해외연수 프로그램은 일본의 백제문화 역사 탐방 등 2박 3일간 진행된다. 오사카·나라·교토를 견학, 백제의 역사에서부터 시작하여 한일 관계까지 실제 백제문화권 땅을 밟아보고 느껴봄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일본의 발전상도 가감없이 보고 느끼는 프로그램들이다. 


 고등학교 학생 일정은 하루가 더 긴 3박 4일로서, 목적지는 세계 10대 경제도시인 중국의 상해이다. 상해임시정부와 윤봉길 의사 기념관 등 한국독립운동의 역사적 현장을 견학함과 동시에, 중국 경제수도 한복판에서 중국경제와 한중관계를 체감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및 노신공원


도전 없이 성과 없어(no pain, no gain)


논산시는 ‘사람중심 행정’이라는 시정철학을 반영, “교육에 대한투자가 미래에 대한 최고의 투자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2016년 전국 최초로 관내 학교 전체가 동참하는 ‘글로벌 인재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시동을 걸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학교밖 활동이 꽁꽁 얼어붙었던 시기였다. 다름 아닌 이때에, 황명선 논산시장은 공약에도 없는 해외수학여행을 들고 나왔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논산 관내 학생들이 청소년 황금기에 해외 여행의 소중한 경험을 온 몸으로 체득하고, 아울러 세계로 향하는 눈을 띄워주는 단초를 놓아주자.”는 취지였다. 


그 취지에는 내부직원, 학교관계자 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반대하였다.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는 지자체가 대한민국에 어디 있는가?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대체 어쩌려고 그러느냐?” 그러나 논산 시골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황 시장의 교육철학은 확고했고, 관내 학생들 해외 여행경비 일부분을 시에서 지급하는 등 구체적인 추진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결정권은 학생에게 있다. 경비부담이 제주도보다 싼 게 매력으로 작용했는지, 결국 학생들은 해외수학여행을 선택했다. 천신만고 끝에 출범은 했지만 다음해는 싸드의 장벽에 부딪쳤다. 올해는 선거철이 걸림돌이었다. 참모진들이 “올해도 속행하려면 선거 후로 미루자”면서 말렸다. 괜히 선심 행정으로 오해받을 소지도 있거니와, 선거운동 기간 동안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기면 시쳇말로 ‘한방에 훅~’ 가는 상황을 염두에 두어서이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도 황시장은 “교육과 정치는 엄연히 별개”임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앞당겨 실시할 것을 권하였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지난 4월 6일, 강경고등학교가 선봉에 나선 것이다. 


논산시 청소년 해외연수는 타 시군에서도 호반응이어서 인근 부여도 작년부터 벤치마킹 후 실행중이다. 충남권 당진, 공주, 아산, 서산은 물론 강원도 태백, 평창 등에서도 문의가 왔었다고 담당자는 전언한다. 그러나 막상 실행까지는 ‘산넘어산’이기에 그 확산 여부는 미지수이다.  


철저한 준비와 숨은 손길들 

 

무사고 제로를 위한 글로벌 연수는 준비에서 시작하여 준비로 끝난다고 할 정도로 치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시행사 선정 및 일정조정에는 교육공동체가 모두 함께 참여해야 한다. 학교별로 책임자가 선정되어서 선발대로 출발, 4일 정도 철두철미 사전답사를 함께 한다. 이때 동행요원 중의 하나인 소방서 직원은 방문하는 호텔마다 실제 상황을 상정하고 화재장비 등을 작동한다. 이런 안전 대책은 경찰, 의료로 확대되어 안전종합계획이 수립된다. 일본의 경우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는 총영사관이 논산시 학생들의 연수 기간 내내 총동원된다. 한편, 학교교류 프로그램 시범모델도 발굴중다. 건양중학교는 테즈카야마 가쿠인이즈미가오카 중학교를 방문하여 학교 상호 소개 및 참관도 한다. 건양중 40여명은 5월 29~31일 김포공항을 통하여  일본을 다녀올 예정이다. 중학교로서는 올해 4월 9일 첫 테이프를 끊은 곳은 쌘뽈여중이다. 어버이날 떠난 쌘뽈여고는 상해 공상외국어학교와 학교 참관은 물론 동아리 활동 등으로 교류중이다. 


고교 중에서 올해 선두주자였던 논산고 120여 명 등 논산의 고교생 전체를 위하여 상해영사관, 재한중국대사관도 직접 나섰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상해의 랜드마크 동방명주 방문을 위해 사전 VIP출입을 허락받아 학생들의 대기시간을 없애주고 있다. 학교별 담당자와 담임교사들은 두세달 전부터 학교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사전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다. 해외미아 등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철저한 시간 약속 등 단체생활에 훈련을 거듭하는 것이다.


중국대륙에서 상해를 고집하는 이유

 

공항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다. 세계를 향한 걸음마로 출국 순간부터 국제 감각을 최대한 익혀나가게 하기 위한 교육적 의도이다. 목적지 선정도 최대의 관건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다소 의아한 측면이 있다. 일본 오사카 선정이유는 백제 문화권 탐방 취지가 강하다. 그리고 청소년 세대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권 하에서 자랐다. 역사시간에 적대감도 교육받지만, 호감정도 동시에 느끼는 세대들이다. 이 양극 감정을 어찌 할 것인가? 쉽지 않은 이 시대의 화두를 중학시절에 스스로 풀어나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현지에서 체류하면서 기관들과 방문지 등을 찾아다니며 철저한 사전준비와 해외연수가 끝날 때까지 총괄하고 있는 오상근 대외협력실장은 ‘용서’와 ‘용인’을 구분한다. “용서는 하되 잊어서는 안 된다(Forgive, but forget)”와 일맥상통하는 냉철한 대안 같다.


상해에서는 교육가이드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한다고 한다. “윤봉길 나이 25세, 우리 고등학생들 나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두 번째로 방문하는 역사의 현장 임시정부, 당시 그 문턱을 넘는다는 것은 사선(死線)을 넘는다.” 이런 역사의 체득과 사관 정립은 역사문화탐방의 키워드답다. 그럼에도 못지않게 중요한 관점은, 현재요 미래이다. 총성없는 무역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 지근거리 이웃하면서도 서로가 모르쇠하기 십상인 애증의 대상국 일본과 중국..... 그 중에서 가장 앞서가는 경제도시 한복판을 통과해가는 동안 온몸의 세포들이 저절로 느끼게 되는 촉! 그것이 방대한 대륙 수많은 도시 중에서 세계10대도시 상해를 선정한 이유이다.


논산여고 2학년 전체가 상해 연수를  떠났다. 동고동락, 생사고락을 함께 한 이 여행에는 특수반 친구도 동참하면서 서손을 잡는 가운데 다소 빡빡한 일정도 별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상해수학여행 동행기]


 조기영어교육처럼, 조기해외여행도 필수


논산여고 2학년생 5개반 129명은 인솔교사와 관계요원 등과 함께 지난 1~4일 나흘간에 걸쳐서 상해(上海)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그중 4반과 5반은 새벽 3시에 제일진으로 출발하였다. 기자는 첫 버스에 동승하였고, 돌아오는 시간까지 동행하였다. 상해에서도 반별로 5개의 버스가 움직였는데, 시종일관 5반 전세버스와 함께 하였다. 많을 것을 알기보다는 한 가지라도 제대로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상해는 세계10대 도시이다. 중국에는 4개의 직할시가 있다. 그 중 북경은 정치수도이고, 상해는 경제수도이다. 북경은 역사가 유구하고 면적도 상해보다 넓혀졌다. 상해는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한 이후 외세가 지배한 곳이라서 자랑스런 역사도시가 아니지만, 대신 알부자가 밀집해 있다 할 만큼 경제적으로도 실속이 있고, 도시 전체가 꽉 차 있다. 


서울과 비교한다면, 서울면적의 10배가 넘는 광역대이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인 2500만이 이곳에 밀집해 살고 있다. 명절날 관광지는 인산인해(人山人海), 우리 지하철처럼 자기가 목적하는 곳으로 갈 수 없고 떠밀려 다녀야 할 정도라고 한다. 


바로 이곳에 한글로 된 우리 대한민국 문화 유적지가 둘 있다. 홍구공원, 지금은 루신공원으로 개명한 곳 한 켠에  윤봉길 기념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백범 김구가 본거지로 삼았던 임시정부는 윤봉길 거사 직후 건물 전체가 폭파 위기를 맞았다. 위기 상황에서도 현재처럼 보전된 것은 당시 어느 중국인 변호사의 용기였다. 당시 중국 인구는 5억, 그 5억 중에 누구도 하지 못한 쾌거를 조선인 청년 하나가 상해로 건너와서 기어이 해내준 것이다. 현재의 임시정부는 그 보답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2중체제는 대한민국이 대만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였다. 중국과 정식 국교를 맺은 이후 우리 기업들은 중국에 대거 진출한다. 여행의 길도 열렸다. 작년 싸드 사태에서 보다시피, 자국의 이익 앞에서 냉정 엄격한 게 중국이다. 논산여고생들을 맞는 공항의 공안들은 엄격했다. 지문은 10개 다 찍는 걸로 강화되었다. 반복하는 과정에서 두 학생이 휴대폰을 두고 왔다. 하나는 자력으로, 하나는 공안이 친절하게도 우리 대열을 찾아와 건네 주었다. 변검에 능한 중국의 2중성인 듯도 싶다.


[1일] 5억이 어쩌지 못한 일혼자서 해낸 윤봉길


우리가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상해옛거리! 우리가 찾은 날이 5월 1일 노동절이라서 사람이 꽤 많았다. 상해 옛거리는 명·청 시대 거리 풍경이다. 한가운데 예원(豫園))은 16세기 중엽 명나라 고관 판윈돤이 아버지를 위해 지은 효도 정원이다. 그 잘난 효도를 위해 백성들에게서 착취한 재산이 얼마나 많아야 했는지는, 난간을 9곡으로 꼬불꼬불 꺾어놓은 데서도 읽혀진다. 착취당한 수많은 원혼들이 강시가 되어 엄습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인데, 강시들은 직진만 하기 때문이란다.

용의 형상으로 휘감은 담들이 눈길을 끄는데 발톱이 3개이다. 황제 이외의 관리나 백성이 용을 사유하면 사형감인데, 중국 용발톱은 5개이므로 이 형상들은 용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군산이나 강경의 근대거리에도 생생한 스토리들이 스며들어가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리이다. 


중국에서 처음 대한 점심은 완전 중식이었다. 학생들이 혀를 내두르면서 절반 정도 남긴다. 거리에 나가 취두부 판매식당 앞에서는 코를 잡아맨다. 김정연 5반담임은 “우리 홍어 삭힌 걸 외국인에게 먹으라고 권하면 엇비슷한 반응”일 거라고 비유한다. 외국음식체험은 여행의 유별난 쾌미이지만 장벽은 존재하는 듯하다. 


윤봉길기념관 앞에도 벽이 버티고 서 있었다. 홍구공원 이 노신공원(魯迅公園)으로 개명하면서 주인공이 뒤바뀐 느낌이다. 무수한 중국인들이 일본에 매번 당하는 현실을 한탄한 뤼신은 의사로서 사람 몸 고치는 것을 중단한다. 정신을 개조하는 게 급선무로 판단한 그는 “아Q정전” “광인일기” 등의 책을 펴내 중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부각한다. 그를 기리면서 거듭난 공원의 호숫가에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세 들어 사는 모양새이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거 현장길을 돌아보지 못하게 하려는지, 갑작스런 스콜이 일어났다. 30여 분 초입에서 진퇴양난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선생님의 선창에 따라 우중강행! 다행스레 비는 그 정도에서 그쳐 주었고, 학생들은 참배와 동영상 시청까지 마쳤다. 2층에는 한국학생을 환영한다는 배너현수막이 상해충청향우회라는 이름으로 우뚝 서 있다. 


[2일] 하루 전기세 10억 와이탄 야경


둘째날은 첫방문지는 자동차박물관이었다. 상해에는 폭스바겐 공장이 있어서 택시도 폭스바겐이 많다. 자동차산업을 위시한 거대 공업도시이기도 하여서 자동차박물관 같은 분야별 전시장이 학습과 관광을 겸비하는 게 가능한 듯싶다. 여학생들이어서인지 남자들만큼 열광하지 않는다는 가이드의 비교평이다. 상해박물관(上海博物館)은 중국 내 최대 규모의 중국고대예술박물관이다. 상해, 베이징, 시안, 난징 등 중국 4대 박물관의 하나로 총 14개의 전시실에 소수민족 공예, 화폐, 옥, 도자기, 서화, 조소 등 다양한 중국 전통 예술품의 총집결지이다. 상해도시계획관은 미래박물관이다. 상해의 도시 형성 과정과 현재, 미래의 모습까지 보여주는 전시관이다. 거대도시도, 실은 개인적인 아이디어와 기본 설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을 유발해주는 교육장이다. 


중국의 명동거리인 남경로(南京路)에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20세기 초반 상해 최고의 번화가로서 5.5km 거리 양옆에 대형 백화점과 쇼핑상점, 각국 음식점이 즐비하니 서울 명동에 진배 없다. 진짜 여행은 뒷골목이라고, 번화거리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서민의 애환이 그대로 있고.... 아웃사이더, 명암(明暗)에서 외곽으로 도는 암흑가의 외(外)! 그 외탄, 와이탄(外灘)은 그러나 전쟁에서 이긴 외인들의 독무대였다. 아편전쟁에 승리한 외국인들이 입성하여 신도시 건설의 시발점이 된 이곳은 한때 중국인들 출입금지구역이었다. 내 땅에서 오히려 서러워야 했던 와이탄은 내심 허물어버리고 싶은 상처딱지들이지만, 건물이 튼튼하여 원형대로 유지되는 곳! 외탄에서 황푸강 건너 푸동의 동방명주와 세계금융센터, 아르데코풍의 고층건물이 속속 들어서 있다. 하룻밤에 전기료 10억씩 쓴다는 이곳 야경은, 시간대별로 변화해간다. 각기 다른 빛 유람선에 남극의 밤은 깊어가고....


[3일] 우주인체험과 주가각족발


셋째날은 그 빛의 진원지인 동방명주탑부터 시작되었다. 상해의 랜드마크 동방명주(東方方明珠). 동방의 여의주를 밝히는 동방명주는 중국에서 최고 높은 방송 관제탑이다. 높이 468m로 아시아에서 첫번째, 세계에서 5번째로 높다. 학생들은 263미터에서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내린 다음, 바닥이 투명유리인 전망대에서 까마득한 아래를 보며 열호하였다. 우주인처럼 공중부양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아우성들이다. 보는 것 위주에서 온몸으로 체험하는 곳으로 이동하니, 참여도가 전혀 달라지는 것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1층에 내려오니 상해역사전시관이 기다리고 있다. 이곳 원래 이름은 상해역사문물진열관이었으며, 1994년 개관한 곳이다. 상하이 100여 년의 역사를 소개하는 이곳의 대표적 소장품으로 영국기업인 후이펑인항(汇丰银行,회풍은행) 동사자 한 쌍과 물화호백자대예교(物华号百字大礼桥),100년 된 상점 훙윈러우[鸿运楼,홍운루)의 금간판 등이다. 상해 = 돈이라는 등식을 실감시켜 주는 현장이다. 중국인들은 부를 상징하는 6과 8자를 좋아하여서 상호도 8ight, 건물도 88층 식이다. 


상해에 20층 이상의 고층건물이 4천여 개라고 한다. 이 중 일본이 지은 속칭 ‘병따개 빌딩’이 있다. 일본에게 200년 땅을 빌려주고 짓게 한 이 건물은 아시아최대 높이를 구가하면서 상단의 한가운데를 일본국기 상징하는 원형으로 뻥 뚫으려 했지만, 결국 병따개 직사각형으로 수정되었다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중국인의 자존심은, 사무라이 칼을 연상시키는 일본 건물 바로 옆에다 그 칼을 막아내는 칼집 건물을 더 높이 짓고 만다. 


한치도 밀리지 않겠다는 심사는, 거지 출신였다가 천하를 거머쥐게 된 명나라 주원장의 고향 주가각(朱家角)에서도 드러난다. 북경과 광조우 사이의 운하들을 연이은 경광대운하는 100% 핸드메이드이다. 만리장성 돌 한 개가 한 청년의 목숨이라 했는데, 이 운하 역시 사람 손으로 다 파냈다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인공강이다. 수향(水鄕)으로서 '상하이의 베니스'로 불리는 이곳에 중국땅을 다 살 수 있을 정도로 어마무시한 대부호가 살았다고 한다. 어느날 그의 집에 황제가 찾아와 “칼을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황제앞에서 칼을 갖다 바치면 대역죄로 몰리고, 안 갖다 주면 명령불복죄로 진퇴양난인 순간, 주방에서 족발을 삶고 있던 부인이 묘책을 냈다. 날카로운 칼모양의 돼지뼈를 갖다 바치게 한 것! 그래서 유명해진 주가각 족발!


[4일] 남의 나라 임시정부를 지켜주는 고마운 나라


마지막날 밤은 일탈을 꿈꾸는 학생들과, 중원의 고수인 지도교사들간에 진검승부 각축전이 벌어졌고, 결국은 교사들의 한판승이었다. 다음날은 7시 출발인지라 날밤새기도 여의치 않았다. 9시에 문을 여는 임시정부청사 인근에서 ‘신천지’를  스쳐 지나갔다. 19세기말 프랑스인 밀집 거주 지역으로 낮에는 커피샵, 밤에는 라이브도 하는 빠로 변신하는 지역이다. 


상해 도심에는 200억 호가하는 아파트지구가 있는데, 임시정부 주변 역시 100억 안팎의 초호화지구이다. 그러니 임시정부를 구심점으로 하는 예전건물들은 눈엣가시이다. 민원이 간단없단다. 그럼에도 중국정부는 이곳을 사수해 주고 있다. 해방 후 주소쪽지를 갖고 찾아오는 이곳 사람들을 보면서 새주인이 되었던 사람은 참으로 귀찮았을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구매를 해주었고, 내부 단장을 해서 이나마 틀을 갖추었다. 초입에 있는 쌍 태극기는 한땀한땀 자수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 엄연한 사회주의 국가 어디에서도 카메라의 저지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치외법권이 적용될 만한 이곳에서 중국인 직원들의 표정은 단호하기만 하다. 중국 속의 한국, 임시정부청사에는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의 방명록이 있다. 귀국한 그녀는,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국 법통이 상해임시정부에 있지 않음을 명시하는 교과서를 쓰라고 명한다.  


점심은 코리아타운에서 멀지 않은 한인식당에서 먹은 다음 서울의 인사동격인 타이캉루(田子坊)에서 마지막 자유시간을 구가하였다. 상하이의 가난한 예술인들이 서울의 문래동처럼 집세 싼 곳 찾아 모여들었던 곳. 작은 예술공방들이 생겨나 예술인의 거리가 됐지만 지금은 아기자기 작은 상점들의 쇼핑골목!


3박4일 하루 평균 보행거리는 1~2만보였다. 푸동공항 출발한 아시아나 항공기는 서해안의 피요르드 해안을 드론처럼 스캔하여 주었다. 인천공항으로 곧 착륙할 거라는 멘트가 그리도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한 학생은 엄마를 만나면 구수한 된장찌개를 끓여줄 생각에 기쁜 모양이지만, 기자는 SNS 통신이 살아나서이다. 중국, 거대한 나라를 통솔하기 위해 페이스북, 유튜브, 구글을 원천 차단하고 있는 나라. 카톡도 차단됐지만, 학생들이 준비한 포켓와이파이 덕을 톡톡히 봤다. 알고 보니 학생들의 사전 준비는 최첨단급. 중국에서 막아놓은 사이트들을 다시 열 수 있는 앱도 미리 설치하고 중국으로 투림했던 것이다.
 

이런 역량을 지닌 신세대들이기에 이번 여행기도 박지원의 열하일기 못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시대가 달라졌고 ‘집단지성’이 리드해가는 트렌드에서 여행기를 한권의 집단저자가 되어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다. 여행정보 같은 건만을 담는 게 아니라 각자 섬세한 감성과 시작을 곁들인.... 그리하여 이 책이 내년 직속 후배들에게 전달되고 또 전달되어서 세계와 우주를 향한 시야가 드넓어지는 길라잡이가 되면 좋겠다. 


[글·사진] 이지녕

사진 중 일부는 논산시청에서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 글은 『놀뫼신문』 2018-05-10일자 1~2면에 걸쳐서 실린 기사입니다.

https://nmn.ff.or.kr/21/?idx=791039&bmode=view


https://nmn.ff.or.kr/21/?idx=791089&b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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