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홍 Oct 28. 2020

안흥성당 가는 길

어느 현재주의자의 ‘길을 찾는 여행’ (30회)

“주천강 한기 속에서 그렇게 자동차를 갈망해 본 적은 없었다”


  하루에 세 번밖에 다니지 않는다는 버스를 기다리기보다 그래도 열 번은 다닌다는 강림삼거리로 가야 했다. 3km라면 한 20분 정도 부지런히 땀을 좀 흘리면 되었다. 거기서 다시 안흥면까지 7km 남짓 가야 하는 데다 배차 간격을 알 수 없는 시골버스임을 감안해 1시간 이상 말미를 두고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리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교중미사는 오전 10시에 시작이니 예버덩에서는 8시 40분 내외에 출발하는 게 옳아 보였다.     


  아직 컴컴한 새벽에 일어났지만 왠지 마음이 급해 서둘러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한 다음 황급히 옷을 챙겨 입었다. 묵주는 왼팔목에 차고 김수환(1922-2009) 추기경 사진이 담긴 열쇠고리는 바지 주머니에 넣고 둑길로 접어들었다. 강변 산책로는 벌써 군데군데 녹아들고 있었다. 20도 가까운 일교차는 흙길을 얼렸다 녹였다 마음껏 주무르면서 아주 탄력 좋은 양탄자로 만들어 놓았다.      



  성당으로 가는 길은 좀 경건해도 좋았겠다. 하지만 질척거리기 시작한 황톳길을 빠르게 걸어가는 마음에는 미사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조급성만 가득 찼다. 가늠할 수 없는 이동 시간과 이미 정해진 미사 시간은 너무 확고한 차이였다. 길이 더 불편해지기 전에 서둘러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러니 아직 덜 풀린 주천강 곳곳의 얼음들과 그 사이를 잽싸게 흘러가는 물소리는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이곳 둑길은 인공으로 조성된 게 아니었다. 홍수를 걱정해 일정한 높이로 조성돼 수면과 격리된 둑이 아니라 높은 데는 높고 낮은 데는 낮아서 물과 거의 닿을 듯한 곳도 있었다. 오르막이 길지 않으니 내리막도 길지 않았다. 높낮이도 다채롭지 않았지만 길은 곡선보다 직선에 가까웠다. 시간의 성질만 다르지 않았다면, 또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산보였다면 아마 이 부드러운 강변 흙길을 더 사랑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겨드랑이에 땀이 날 즈음 강림삼거리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시간은 9시, 이제 버스만 오면 되었다. 7km 거리는 아무리 버스라도 15분이면 댈 수 있을 것이었다. 버스만 와 준다면 말이다. 하지만 30분 동안 버스는 단 한 대도 볼 수 없었다. 그 시간 동안 마주친 사람도 딱 한 명. 그 ‘귀한’ 마을 어른께서도 최근 7년 동안 한 번도 버스를 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시간은 이미 9시 40분, 버스에 앉아 있다 해도 겨우 미사 시간을 댈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 순간 “환경오염이고 뭐고 자동차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 또 현대인들은 아주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 10km를 이동해 성당으로 가는데 왕복 4시간을 걸어야 하는 사람과 20여 분이면 넉넉히 도착하는 사람이 동시에 살고 있다는 생각.


  걷는 시간으로 사는 사람과 자전거를 타는 시간으로 사는 사람이 동시에 살고 있다. 자동차를 모는 시간으로 사는 사람과 비행기를 타는 시간으로 사는 사람도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동시대인이다. 때문에 이들에게 허용된 일상의 공간도 동일하지 않다. 시공간의 물리적 조건이 다르므로 마음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무수히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살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고 강변하는 게 국가의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야 원래 그런 기능을 하는 것이며 또 그래야 그나마 국채든 뭐든 유지할 수 있으니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떻든 나는 주일 교중미사를 놓치고 말았다. 고해성사를 바쳐야만 한다. 서울살이를 고통으로 느끼며 빠른 시간보다 느린 시간을 갈망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다 헛것이었다. 초봄 주천강 한기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서성거리는 순간만큼 절박하게 자동차를 갈망해 본 적은 없었다. 애초부터 농어촌버스의 자연주의 운행을 인간주의적 산수로 맞힐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거리와 시간을 가늠하는 나의 기준은 승용차의 속도였고, 그렇게 계산한 시간과 거리로 나는 버스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 주에는 반드시 버스를 타야 했다. 월현리(달고개)에서 8시5분에 출발하는 32번 농어촌버스를 타면 미사 시간에 댈 수 있는 것을 알아 두었다. 새벽 6시쯤 일어나 씻고 먹고 닦고 입고 나서면 될 것이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예버덩에서 출발한 시간은 7시10분, 버스 정류장에는 20분에 도착했다. 아직도 45분은 더 있어야 버스는 달고개를 출발할 것이었다. 날씨는 영하 4도, 강 물결을 타고 날아오는 찬바람은 아직 매서웠다.


  습관처럼 귀에서는 음악이, 이렇게 찬 하늘과 맑은 물길 옆에서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습관처럼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버스가 올 방향을 틈틈이 주시했다. 절대 놓치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바라본 하늘에는 까마귀 떼가 유려한 V자를 그리며 날고 있었다. 너무 많이 본 모습 이미 전형적인 그림이었지만 갑자기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는 그 순간, 아 버스가 쾅하고 지나갔다. 무턱대고 뛰면서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매정한 버스 기사는 추호도 멈춤이 없었다. 직선주로를 만나 오히려 더 가속하는 것이었다.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그렇게 준비하고 벼르고 서둘렀건만 까마귀의 그 뻔한 V자 때문에 코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한동안 혼돈에 빠졌다. 다음 버스는 무려 10시에 출발하기 때문이었고, 그 시각은 정확히 교중미사 시작 시간과 같았다. 암담했다. 그 시점에는 두 가지 가능성만 남아 있었다. 하나는 예버덩문학의집으로 돌아가 거기 대표의 차를 잠시 빌리거나 데려다 달라고 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강림삼거리 방향으로 무작정 걸어가면서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는 방법.


  그런데 불현 듯 눈앞에 대표의 흰색 승용차가 나타난 게 아닌가. 심지어 나를 지나쳐 강림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는 게 아닌가. 또 다시 소리를 질렀다. “대표님, 대표니임~!” 아무리 소리를 쳐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오직 하나. 무작정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걷기 시작했다. 주일 아침이라 지나가는 차도 많지 않았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강림삼거리까지 걸어가다가 차를 얻어 탈 수 있으면 성당에 갈 수 있는 것이었고, 그렇지 않다면 미사 시간을 댈 수는 없었다. 지난주와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죄는 또 쌓이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의 흰 색 그 차가 다시 보였다. 분명 대표의 차였다. 마구 손을 흔들었다. 껑충껑충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대표의 차를 얻어 타고 겨우겨우 안흥면에 도착한 것은 8시30분. 거기서 또 걸어 성당에 도착했고,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바쳤고, 교중미사를 통해 성체도 모셨다. ‘이제 다 이루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침도 먹지 않고 새벽 7시 10분에 출발해 미사까지 마치니 벌써 11시를 넘겼다. 갑자기 몹시 배가 고팠다. 다시 걸어서 찐빵 가게와 복지센터와 농협이 있는 안흥면으로 갔다.


  식당은 몇 군데 있었으나 한 눈에 ‘칼국수’라는 글자가 들어왔다. 곧장 들어가서 국수 한 그릇과 밥을 시켰다. 그 엄청난 양이라니! 공기 밥은 괜히 시킨 거였다. 주인장과 대화도 해가며 그 많은 양을 다 먹었다. 아침과는 달리 시간도 넉넉했다. 급할 게 없었다. 그렇게 느긋하게 시장기를 다 채웠는데도 시각은 11시55분. 느긋하게 나와서 유명한 ‘안흥 찐빵’도 한 상자 샀다. 신세진 대표랑 나눠 먹을 작정이었다. 한산한 주일 시골 풍경도 구경하며 왠지 의무를 다했다는 뿌듯함으로 기분은 상쾌하기만 했다.



  아, 글쎄 이게 웬일인가. 농협 앞에 바로 그 농어촌버스가 떡하니 서 있는 게 아닌가. 횡성 만세공원에서 11시40분에 출발한 버스를 단 1분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 있다는 거였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저런 날도 다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거였다.

작가의 이전글 神을 기다리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