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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Dec 22. 2020

맑은 날의 ‘판공성사’

어느 현재주의자의 ‘길을 찾는 여행’ (38회)

“자유와 등을 맞대고 있는 것은 바로 허기라는 것을…”          


  버들개지는 이미 3월 초순에 피어 있었다. 영하 9도까지 내려간 때에도 예버덩 일원의 갯버들은 꽃을 피웠으니, 하순으로 접어든 때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태기산(泰岐山)에서 발원해 강림면을 지나 영월군 수주면, 주천면을 거쳐 남한강으로 이어지는 주천강 물줄기도 본격적으로 만곡의 유장한 흐름을 보일 터였다. 이제 강기슭 구석진 곳이나 산녘 응달진 곳의 얼음들도 다 사라졌을 것이다.     


  드넓은 산야와 강물과 논밭에 순하고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거대한 생명의 기운은 새봄의 풍경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비에 흠뻑 젖은 새 움은 참을 수 없고 막을 수 없고 멈출 수 없는 방사의 정기가 흐벅지기까지 했다. 산짐승은 산에서, 들짐승은 들에서, 물짐승은 물에서 기지개를 켜는 동안 하늘은 활공하는 새들로 활기찼다. 그런 기운 속에서 더욱 깊은 사색의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입주 기한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진짜 고독한 시간’이 바로 앞에 왔는데 열흘밖에 여유가 없었다. 기약했던 그 ‘긴 한 달’이 그토록 초고속으로 지나갈 줄을 미처 몰랐다.     



  직장에 매이고 일상에 갇혀 지내는 동안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진정한 자유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두려웠다. 시집 원고 정리 때문이 아니었다. 아직 미완의 에세이집 때문도 아니었다. 배부른 노예가 아니라 배고픈 자유인을 향한 나의 선택이 다시 시험대에 오를 것이 두려웠다. 거대 조직에 빌붙어 살며 고연봉과 복지 혜택 속에서 꼬리가 잘리고 팔다리가 잘리고 마침내 머리가 잘려 나간 노예의 시간에서 겨우 벗어났으나, 예버덩을 나서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었다.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김수영, 「푸른 하늘을」)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자유와 등을 맞대고 있는 것은 바로 허기라는 것을 나는 안다. 왜 자유에는 언제나 허기가 따라다니는가를. 자유는 우선 내 의식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여야 한다. 내가 나에게 명령하고 지시하고 검수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삶속에서 나는 자유를 누린다. 그러니까 자유는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때에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매우 원초적인 자유이다. 그런 속에서야 내 의식과 행동의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근본적 부자유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내게 시가 자유라면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며 평생을 두고 나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자유에는 언제나 허기가 따랐고, 또 따를 것이다.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서름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 서정주(1915~2000), 「풀리는 한강 가에서」     


  그날은 유난히 맑았다. 하늘은 높푸르고 햇살 반짝이는, 물결마다 일렁이는 은비늘과 콧날을 타고 오르는 맑은 바람의 날이었다. 봄눈 지나고 봄비도 그친 다음 유난히 상쾌하고 가벼운 날이었다. 시민들도 비록 겨울 외투를 입었을지언정 청량한 기운 속에서 모처럼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날은 꼭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윤동주, 「序詩」) 맹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맑은 기운을 몸속 깊이 받아들인다거나 괜히 자신을 정화하고 싶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것은 외부 자연의 자극에 대한 내부의 반응이라기보다 이미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그야말로 자연스런 ‘스스로 그러함’일지 몰랐다.     



  자연과 인간의 진정한 합일이 있다면 맑은 날의 의식되지 않는 심호흡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길을 걸었다. 을지로2가에서 명동성당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은 마침 점심시간을 맞은 직장인들의 분주한 걸음으로 가득 찼다. 부활절을 꼭 한 달 앞둔 금요일, 고백성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부활절과 성탄절을 앞두고 의무적으로 받는 판공성사를 보러 가는 길, 명동대성당 종탑을 바라보며 올라가는 계단은 세속과 하늘의 경계인 듯 위아래 풍경을 매우 다르게 가르고 있었다. 분주하고 복잡한 아래쪽과 조용한 대성전 앞마당은 대비되었다. 도시인의 삶에서 금요일 한낮이라면 확실히 성당보다는 일상적 공간에 있어야 할 것이었다.     


  고해소 앞은 더욱 한산했다. 대성전과 꼬스트홀, 성모 동산 주변에는 기념사진을 찍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기도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지만 옛 계성여고 자리로 옮긴 상설고해소는 차라리 고해(苦海)에 어울리는 고요가 흘렀다. 나는 무엇이며, 무엇을 하였으며, 무슨 죄를 지었는가. 배부른 노예에서 배고픈 자유인의 삶을 선택했다는, 나는 진실한가. 김종철 시인(1947-2014)은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 여간 어렵지 않다”(「고백성사」)고 했는데, 그렇다면 뿌리깊이 박힌 내 삶의 ‘못대가리’를 제대로 빼낼 수 있을 것인가. 원한과 분노와 고통과 슬픔과 희망과 공포의 못대가리를 정말 빼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맑은 날의 하늘과 바람과 물과 신록과 같이 진정 ‘스스로 그러한’ 자재(自在)의 기운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시인의 말처럼 어느 순간 “숨겨 둔 못대가리 하나가 쓰윽 고개를 내밀”것만 같은 불안감이 일었다.     



  판공성사를 바치고 나오는 하늘은 더욱 맑았다. 시간은 이미 1시를 향해 가고 있었지만 배고픈 줄도 모른 채 한걸음에 을지로입구역으로 갔다. 덜컹대는 열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횡성으로 달렸다. 안흥에서 내려 칼국수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운 다음 다시 농어촌버스를 탔다. 그리고 강림삼거리에서 걸어서 30분 만에 작업실에 도착했다. 죄를 고백한다고 해서 지은 죄가 사라질 수 없듯, 죄를 반성하는 마음만으로 앞날의 죄까지 모두 막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죄를 지을 것이며, 죄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죄를 고백하고 또 고백할 것이다. 그것이 ‘반성하는 영혼’의 삶,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삶인지 모른다. 저 산마루 위 빛나는 태양은 그곳에서 계속 빛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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