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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Oct 10. 2021

연암 박지원의 「주영렴수재기」

우리 문학 이렇게 읽기 (11)


때를 얻지 못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공감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주영렴수재기(晝永簾垂齋記)」는 모두 네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는 비교적 짧은 산문이다. 첫 문단은 주영렴수재라는 초당의 주인은 누구이며 그 위치와 구조는 어떻게 되는지 묘사하고 있고, 둘째 문단은 초당의 주변 환경을 과수(果樹)와 시냇물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셋째 문단은 집주인 양군 인수(개성 사람 양현교의 자)의 게으른 본성과 방 안의 기물과 평소 일과를, 마지막 문단은 손님이 찾아 왔을 때 벌어지는 양군의 게으른 행태를 보여준다. 첫 두 문단은 양군의 초당 주영렴수재를 중심으로 한 외부적 환경을, 마지막 두 문단은 그의 게으른 습벽과 행동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내면적 상황을 건조한 사실적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이 짧고 건조한 산문을 통해 연암이 말하고자 한 바를 파악하려면, 그가 제시한 정보를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첫 문단을 보면, 우선 주영렴수재는 초당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띠풀로 지붕을 이은’ 작은 집이다. 기둥이 모두 여덟 개니까, 기둥과 기둥 사이를 한 칸으로 보는 전통 건축의 셈법을 따라 이 집은 분명 초가삼간이다. 그렇다면 좌우에 한 칸짜리 방이 있고, 중앙에 마루가 놓인 일(一)자형 건물 구조를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방 하나의 ‘안쪽을 칸으로 막아’ 깊숙한 방(深房)을 추가로 만들었고, 마루(대청)의 밝기를 고려하여 일부러 창살을 성글게 하였으며, 층루(다락)를 만들고 협실(곁방)을 만들었다. 또 대나무로 난간을 둘렀고, 바른쪽(오른쪽)엔 둥근 창문(圓牖)과 왼쪽엔 교창(交窓)을 내었다. 둥근 창문은 창틀을 둥글게 짜서 미적으로 멋을 부린 것이고, 교창은 채광을 고려한 것으로 전등이 없는 전통 건축에서 실내 생활의 편의를 고려한 구조물이다. 초가삼간이라면 가난한 농민의 다 쓰러져 가는 흙벽 집을 떠올리게 하지만, ‘주영렴수재’는 어딘가 이상하다. 연암의 표현대로 ‘오밀조밀 갖출 것은 거의 갖춘’ 집이고 나름대로 멋을 낸 집이다.


 이 초당 뒤에는 배나무가 있다. 한두 그루가 하니라 제법 많은 여남은 그루다, 또 대나무 사립 안팎에는 오래 묵은 은행나무와 함께 복숭아나무가 있으니, 봄밤 달빛 속에서 하얀 배꽃과 붉은 복숭아꽃이 벌이는 색색의 향연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가 하면 어느 맑은 가을날 오래 묵은 은행잎의 샛노란 낙엽(落葉)의 분분한 풍경을 떠올리기 것도 어렵지 않다. 게다가 돌을 차고 지나가는 시냇물 소리 힘차고, 섬돌 밑에는 ‘번듯한 연못’까지 팠다. 이쯤 되면 ‘주영렴수재’는 말이 초당이지 결코 허름한 농가이거나 늙은 산지기의 초막이 아니다.


 그런데 양군 인수는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멋스런 집을 짓고 사는 것일까. 연암은 양군에 대해 ‘본성이 게으르다’는 논평 외에 다른 주관적인 언급을 일체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은 궤(几) 하나, 거문고 하나, 검(劍) 하나, 향로 하나, 술병 하나, 다관(茶罐) 하나, 옛 서화축(書畵軸) 하나, 바둑판 하나”가 있는 방에서 권태가 오면 주렴을 내리고 ‘퍼진 듯이’ 누워 버리는 사람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세간들이 눈길을 끈다. 무언가를 담기 위한 궤야 여느 가정에도 있을 법하지만, 거문고는 그 소유 자체가 비상한 일이며 연주력까지 갖추었다면 더욱 특별한 것이다. 또 칼이 있다. 양군은 거문고와 함께 칼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향을 피우는 향로와 다관이 있다. 어딘가 그윽한 선비의 풍격을 느끼게 한다. 결정적으로 서화축이 있고, 바둑판도 있다. 이로써 양군은 상민이 아니라 양반임을 알 수 있고, 꽤 부유한 사람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지독하게 게으르다. 양반 취향의 그런 기물들 사이에서 자다 깬 시각도 한낮이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지만, “섬돌 위에 나무 그늘이 잠깐 사이에 옮겨 가고, 울 밑에 낮닭이 처음 우는” 때에 깬 걸 보면 양군은 아마 오전 중에 무료한 끝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자다 깬 연후에야 검을 살펴보거나 거문고를 타거나 술을 홀짝이거나 향을 피우고 차를 달이며, 서화를 펼쳐 보기도 하고 기보(碁譜)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일로써 이런 것에 집중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몇 년을 하거나 평생을 하기도 하는 법인데 양군은 그저 잠깐 잠깐 지나가듯이 만져 볼 뿐이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마지못해 하는 행동으로 보인다. 얼마나 무료하면 그러다가 또 퍼져 누워 버리기까지 한다. 그러니 모처럼 초당에 손님이 찾아와도 알 리가 없다. 손이 “주인의 자(字)를 서너 번 부르고 나서야” 일어나 앉는데, 그 때에도 해는 여전히 서산에 걸리기 전이다.


 초당이지만 구색을 제대로 갖춘 주영렴수재의 주인인 양군은 어엿한 양반으로서 왜 이런 삶을 사는 것일까. 거문고와 칼과 바둑과 서화축으로 미루어 비록 무관이라도 양반이 갖추어야 할 교양을 두루 갖춘 인물이 왜 이렇게 게으른 것일까. 그것은 깨어 있지만 깨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차단된 어떤 상황을 암시하는 듯하다. 양군의 내면은 깨어 있지만 외적 상황은 갇혀 버린 신세인 것이다.


 양군 인수는 개성 사람으로서 실력이 있더라도 입신출세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기회가 박탈된 처지였다. 넓게는 서북지역 전체, 좁게는 개성 사람들을 조선왕조는 중용하지 않았다. 전 왕조인 고려의 거점지역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하나 동서 분당과 남북 분당, 노소 분당과 청탁분당을 거치면서 한강이남 지역 양반들이 조선왕조의 집권 세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서북 양반들은 자연히 권력 심부에서 멀어졌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양군은 무능해서 무기력해진 게 아니며, 게을러서 기회를 잃어버린 게 아니다. 그는 유능하지만 능력을 펼 수 없었고, 깨어 있지만 깨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의 내면은 불 같이 타올랐지만, 외적 상황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런 점은 바로 연암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연암은 절친했던 친우 이희천(1738-1771)이 노론 청류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과거를 완전히 포기하고 연암협에 은거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대의 문장가를 넘어 한국의 대문호로 칭송되는 연암도 자기 시대로부터 버림받았던 것이다.


 「주영렴수재기」는 대단히 차갑고 시니컬한 느낌을 준다. 도입부 주영렴수재의 외관 묘사와 중반 이후 양군의 게으른 일상에 대한 묘사가 모두 건조한 필치로 주관의 개입 없이 전개되고 있다. 마치 “나 게으르다, 그래 어쩔래?”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원문이 아니라 번역문으로 읽은 탓인지 모르나, 적어도 연암이 ‘게으른 양군’을 타박하는 것이 아님은 명확해 보인다. 오히려 실력을 갖춘 인물이 때를 만나지 못한 모순적 상황을 적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런 문투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한다.



[번역문]     

주영렴수재(晝永簾垂齋)는 양군 인수(梁君仁叟)의 초당(草堂)이다. 집은 푸른 벼랑 늙은 소나무 아래 있었다. 모두 여덟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안쪽을 칸으로 막아 깊숙한 방을 만들었으며 창살을 성글게 하여 밝은 마루를 만들었다. 드높이어 층루(層樓)를 만들고, 아늑히 하여 협실(夾室)을 만들었으며, 대 난간으로 두르고 띠풀로 지붕을 이었으며, 바른편은 둥근 창문이요 왼편은 교창(交窓)을 만들었다.

그 몸체는 비록 크잖으나 오밀조밀 갖출 것은 거의 갖추어졌으며 겨울에는 밝고 여름에는 그늘이 졌다. 집 뒤에는 여남은 그루의 배나무가 있고 대 사립 안팎은 모두 묵은 은행나무와 붉은 복숭아나무요, 하얀 돌이 앞에 깔려 있다. 맑은 시냇물이 소리 내며 급히 흐르는데, 먼 샘물을 섬돌 밑으로 끌어들여 네 귀가 번듯한 연못을 만들었다.

양군은 본성이 게을러 들어앉아 있기를 좋아하며, 권태가 오면 문득 주렴을 내리고, 검은 궤(几) 하나, 거문고 하나, 검(劍) 하나, 향로 하나, 술병 하나, 다관(茶罐) 하나, 옛 서화축(書畵軸) 하나, 바둑판 하나 사이에 퍼진 듯이 누워 버린다. 매양 자다 일어나서 주렴을 걷고 해가 이른가 늦은가를 내다보면, 섬돌 위에 나무 그늘이 잠깐 사이에 옮겨 가고, 울 밑에 낮닭이 처음 우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궤에 기대어 검을 살펴보고, 혹은 거문고 두어 곡을 타고 술 한 잔을 홀짝거려 스스로 가슴을 트이게 하거나, 혹은 향 피우고 차 달이며, 혹은 서화를 펼쳐 보기도 하고 혹은 옛 기보(碁譜)를 들여다보면서 두어 판 벌여 놓기도 한다. 이내 하품이 밀물이 밀려오듯 나오고 눈시울이 처진 구름처럼 무거워져 다시 또 퍼져 누워 버린다.

손이 와서 문에 들어서면, 주렴이 드리워져 고요하고 낙화가 뜰에 가득하며 처마 끝의 풍경은 저절로 울린다. 주인의 자(字)를 서너 번 부르고 나서야 일어나 앉는데, 다시 나무 그늘과 처마 그림자를 바라보면 해가 여전히 서산에 걸리지 않았다.    

      

[원문]     

晝永簾垂齋記      

晝永簾垂齋。梁君仁叟草堂也。齋在古松蒼壁之下。凡八楹。隔其奧。爲深房。踈其欞。爲暢軒。高而爲層樓。穩而爲夾室。周以竹欄。覆以茅茨。右圓牖。左交窓。

軆微事備。冬明夏陰。齋後有雪梨十餘株。竹扉內外。皆古杏緋桃。白石鋪前。淸流激激。引遠泉入階下。爲方池。

梁君性懶而好深居。倦至輒下簾。頹然臥乎烏几一琴一劒一香爐一酒壺一茶竈一古書畵軸一碁局一之間。每睡起。揭簾看日早晏。則階上樹陰乍轉。籬下午鷄初唱矣。於是乎據几看劒。或弄琴數引。細吸一盃。以自暢懷。或點香烹茗。或展觀書畵。或棋按古譜。擺列數局已焉。久來如納潮。睫重若垂雲。復頹然而臥。

客至入門。則簾垂寂然。落花滿庭。簷鐸自鳴。字呼主人三四聲。然後起坐。復觀樹陰簷影。則日猶未西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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