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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Oct 20. 2021

정지용의 「도굴」

우리 문학 이렇게 읽기 (12)


"범신론적 세계와 물질주의 세계의 충돌"



  도굴은 크게 두 가지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나는 유물이나 귀금속 등을 획득할 목적으로 고분이 따위를 파헤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허가 기관이나 광주(鑛主)가 인정하는 광업권 없이 광물을 채취하는 경우이다. 모두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행하는 절도 행위이다. 문화권과 지역에 상관없이 각국은 문화재의 훼손이나 밀반출이 우려되는 고분 도굴을 엄하게 금지하고 있으며, 국가의 자원인 광물을 훔치는 도굴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정지용의 「도굴」에는 그 서사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도굴의 구체적 양상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도굴’을 제목으로 삼았으면서도 그 어의에 해당하는 행위를 전혀 보여주지 않고, 단지 한 늙은 심마니가 산삼을 얻기는커녕 외려 산속에서 잠을 자다 경관들의 총격에 피살되었다는 내용이 전면에 부각돼 있다. 문체도 ‘後娶감어리 처럼’이나 ‘唐紅물감처럼’ 등 몇몇 비유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건조한 편이다.     


  百日致誠 끝에 山蔘은 이내 나서지 않었다  자작나무 화투ㅅ불에 확근 비추우자  도라지 더덕 취싻 틈에서  山蔘순은 몸짓을 흔들었다 심캐기늙은이는 葉草 순쓰래기 피여 물은채 돌을 벼고 그날밤에사 山蔘이 담속 불거진 가슴팍이에  앙징스럽게 後娶감어리 처럼 唐紅치마를 두르고 안기는 꿈을 꾸고 났다  모래ㅅ불 이운듯 다시 살어난다 警官의 한쪽 찌그린 눈과 빠안한 먼 불 사이에 銃견양이 조옥 섰다  별도 없이 검은 밤에 火藥불이 唐紅물감처럼 곻았다  다람쥐가 도로로 말려 달어났다

- 정지용, 「도굴」 전문     


  시적 의미의 다의성이나 해석의 다양성을 침해할 위험을 무릅쓰고 작품 분석을 위해 그 내용을 시행별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1)“百日致誠 끝에 山蔘은 이내 나서지 않었다” → 백일 동안 지성을 들였는데도 산삼은 이내 나타나지 않았다. 산삼은 아무 데서나 자라지 않고, 깊은 산속 특정한 식생 지대에 소집단을 형성해 군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전문 채취꾼들인 심마니들도 쉽게 구할 수 없다. 때문에 심마니들은 요즘도 입산할 때 초입에서 산신에게 일정한 제의를 바치며 산삼 채취를 기원하고는 한다. 산삼은 쉽게 보이지 않을 뿐더러 많지도 않고 느리게 자라기 때문에 귀하게 취급되며, 더욱이 그 효능이 다른 약재와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다고 하여 고가로 거래된다.


  (2)“자작나무 화투ㅅ불에 확근 비추우자  도라지 더덕 취싻 틈에서  山蔘순은 몸짓을 흔들었다” → 자작나무 장작 화톳불이 화끈 비치자 도라지, 더덕, 취 싹 틈에서 산삼 순이 몸짓을 흔들었다. 앞 시행에선 나타나지 않았던 산삼이 도라지, 더덕, 취 싹 틈에서 얼핏 드러난 장면이다. 그런데 자작나무 화톳불에 비추어져서야 나타났으므로 때는 밤이다. 여기서 산삼은 아직 심마니에게 드러난 게 아니라 시인의 전지적 시점에만 나타났다. 다음 행에 나오는 ‘심캐기늙은이’가 가슴에 산삼을 안는 꿈을 꾸고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아직 그는 산삼을 만나지 못했다. 노인은 이미 잠들었고, 산삼은 그가 피운 불기운에 비추어져서야 얼핏 보인 때문이다.


  (3)“심캐기늙은이는 葉草 순쓰래기 피여 물은채 돌을 벼고 그날밤에사 山蔘이 담속 불거진 가슴팍이에  앙징스럽게 後娶감어리 처럼 唐紅치마를 두르고 안기는 꿈을 꾸고 났다” → 엽초 잎담배를 피워 물고 돌을 베고 잠든 늙은 심마니는 그날 밤에야 산삼이 후취처럼 당홍치마를 두르고 가슴팍에 안기는 꿈을 꾸고 일어났다. 산삼은 얼마나 귀하디귀하기에 평생을 좇은 늙은 심마니에게도 꿈에서만 나타나는가. 백일이나 지성을 드려도 나타나지 않는 산삼을 갈구하는 노인의 그르렁대는 가슴에 젊은 후취처럼 안기는 산삼의 귀하고 앙증맞은 자태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로써 심캐기늙은이와 산삼의 대비는, (ㄱ)늙음과 젊음의 생물학적 표상은 물론 (ㄴ)인고와 기원의 심마니와 기쁨과 희망의 산삼이라는 정서적 대비까지 형성된다.


  (4)“모래ㅅ불 이운듯 다시 살어난다 警官의 한쪽 찌그린 눈과 빠안한 먼 불 사이에 銃견양이 조옥 섰다” → (그때) 모닥불은 시드는 듯하다 다시 살아나고, 경관들은 한 쪽 눈을 찡그린 채 줄지어 서서 총으로 겨냥했다. 시들어가던 모닥불이 어느 순간 바람을 타고 다시 살아날 무렵, 그러니까 늙은 심마니가 산삼을 품에 안는 감미로운 꿈을 꾸고 일어나는 그때 그를 겨냥한 일단의 무장 경관들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한 쪽 눈을 찌그린’ 경관들이 총을 들고 도열한 상태라면 이들은 이미 세심하게 노인의 동태를 살핀 끝에 사살하기로 결정한 상태로 보인다.


  (5)“별도 없이 검은 밤에 火藥불이 唐紅물감처럼 곻았다” → 별빛도 없는 깊은 한밤에 화약불이 당홍물감처럼 고왔다. 그렇게 깊은 밤 컴컴한 산속에서 경관들에 의해 발사된 탄환은 ‘당홍물감’과 같은 색조를 띠며 허공을 날아가 노인의 얼굴과 가슴과 배에 박혔을 것이다. 불길이 사위며 이울던 모닥불이 약하게 살아난 틈이었으니 피살자인 노인의 몸보다 굉음을 울리며 날아가는 탄환의 빛은 더욱 빛나고 날카로웠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보다 죽이는 ‘화약불’에 주목해 ‘고왔다’고 표현한 점이 경관들의 사격에 희생된 심캐기늙은이의 허망한 죽음에 비장미를 더한다.


  (6)“다람쥐가 도로로 말려 달어났다” → (총소리에 놀란) 다람쥐가 데굴데굴 굴러 달아났다. 다람쥐가 실제로 있었으며 총소리에 놀라 정말 굴러서 달아났는지 알 수 없지만, 「도굴」에서 가장 놀랍고 탁월한 표현이다. 어쩌면 시인 자신의 대리자일 수도 있는 다람쥐는, 한밤 깊은 산속의 정적을 가차 없이 깨는 총알의 굉음에 반응하는 뭇 생명체의 일반적인 행동 양태를 함축한다. 사태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짐승들의 몰가치한 도망 장면을 통해 독자들은 이 작품의 상황을 사실적•입체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경찰의 판단이나 의도와 상관없이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노인에게 가해진 폭력에 절규하게 만든다.


  「도굴」은 ‘도굴’의 구체적 양상이 전혀 표현되지 않은 점 외에도 몇 가지 점에서 현대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다. (ㄱ)치안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관은 왜 주민들이 살지 않는 산에서 근무하고 있었는가. (ㄴ)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 제법 숫자가 많은 규모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ㄷ)무슨 사정으로 한밤까지 활동을 하였던 것인가. 만일 군대였다면 군사훈련 차원에서 산악행군을 한다거나 적군에 대응작전을 수행하는 등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경찰은 일반적으로 주민들이 거주하는 시가지 중심부에 본거지를 두고 일정한 경계 내에서 활동하는 조직이라는 점에서 특이하게 생각된다. 그것이 설사 ‘도굴범’을 잡기 위한 활동이라고 해도 과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먼저, 도굴의 구체적인 행위가 제시되지 않은 것은 심캐기늙은이를 통하여 쉽게 풀이된다. 말 그대로 심마니가 산삼을 캐러 간 상황을 묘사한 작품이기 때문에 도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늙은 심마니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습속대로 백일 동안 지성을 드렸지만 산삼을 볼 수 없었고, 오직 꿈에서만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작품은 이런 내용을 화려한 비유나 과장된 표현 없이 거의 사실대로 기록하고 있다. 도굴과 전혀 상관없는 심마니의 산속 행동이라야 지성을 드리거나 오르락내리락 산삼을 찾아다니거나 때가 되면 먹고 자다가 수확물을 챙겨 하산하는 일뿐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 등장한 경관들은 도굴범을 잡기 위해 입산한 것인데, 정작 그들은 잡지 못하고 애먼 심마니만 살해한 셈이 된다. 제목 ‘도굴’과 작품 내용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해 주는 것은 바로 이 경관들이다. 그런 점에서 도굴과 무관한 심캐기늙은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도굴’을 제목으로 삼은 것은 그의 죽음에 연민한 정지용의 의도적인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그를 살해한 경찰(국가)에 대한 일정한 비판 의식을 함축한다. 산삼을 얻으려는 간절한 마음에 꿈까지 꾸는 심마니를 경관들이 도굴범으로 비정해 총살하였다는 사실은, 그것이 비록 오판일지라도 죄 없는 민간인은 목숨까지 잃었다는 점에서 그러한 사실 기록 자체가 비판 정신의 발로가 된다. 그렇다면 「도굴」이 지면에 발표된 것이 일제의 검열제도가 엄격하게 적용되던 1940년대 초였다는 점에서 상당히 이채롭다.


  하지만 당시 일제 경찰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이미 1938년 5월부터 국가총동원령을 시행하는 비상조치로 국가총동원법의 조선 적용이 개시된 이후였기 때문에 (ㄱ)‘감시’보다는 ‘동원’이 업무의 중심이 되었을 개연성이 있고, (ㄴ)명시적인 항일운동이 아닌 시적 암시와 비유가 포함된 예술작품이라는 점에서, (ㄷ)같은 지면에 발표된 다른 작품들의 내용이 전반적으로 자연 서정을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굳이 시 한두 편의 발표를 통제할 필요성이 낮아진 때문일 수 있다. 그러니까 부분적이고 미시적인 감시가 아니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폐간처럼 아예 매체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에 오히려 「도굴」과 같은 개별 작품의 비판 의식은 간과되었을 수 있다.


  다음, 도굴범 체포를 위해서라고는 하나 경관들은 왜 산에 있었으며, 한두 명의 소규모가 아니라 여러 명의 부대급으로 구성한 이유, 또 “별도 없이 검은 밤”까지 야간 활동을 하게 만든 비상한 상황은 무엇인가. 그것은 당시 상황을 다룬 『조선일보』의 다음 기사들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1)“천하절승 금강산의 경승지에서 도굴한 국방상 중대 자원인 ‘당그스텐’(텅스텐)을 둘러싸고 일본 내지인과 조선인이 공모한 ‘장물고매급아보전신법’ 위반 밋 사기의 대사건이 발각되어…”(1937. 11. 18)

  (2)“중석(텅스텐) 광맥이 있다는 곳은 금강산의 생명인 만물상 일대와 구룡폭이 있는 윗골짝 등인데 그 동안에도 도굴한 것이 있어 구룡연으로 떨어지는 영산의 비단결 같은 폭포수가 흙탕물이 되었던 일도 있어…”(1937. 12. 24)

  (3)“도굴, 실화가 낭자, 영봉 금강의 경치 훼손, ‘승지 보존상 대책 시급’” (1938. 7. 5)

  (4)“‘금강산탐승시설조사위원회’에서 예정계획대로 실시하기로 가결되었다. 그리고 또 중석광 허가에 대하여는 풍치에 관계되지 않는 변두리로만 허가하기로 결정하는 동시에 중석 도굴은 조사 취체 인원을 증원하야 엄중히 취체하야 발견되는 대로 엄벌할 방침이다.”(1938. 7. 16)

  (5)“금강산 도굴방지 취체책 결정, 무장 경관대를 파견, 오천명 도굴당 청소. 승지 보존에 최후적 수단! 도굴의 배후 흑막은 상당한 계급의 인물”(1938. 7. 24)     


  정지용의 「도굴」에는 작품의 무대가 금강산이라는 사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위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도굴당이 오천 명에 이르는 등 규모도 상당히 크고 또 수년간 지속적으로 성행한 범법 행위였기 때문에 총독부와 강원도, 강원도경찰부 등 관계 기관이 금강산탐승시설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의결하여 ‘무장 경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할 만큼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적어도 정지용이 이를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도굴」에 도굴 얘기는 전혀 없지만, 경찰이 부대를 이뤄 산속에서 심야까지 근무한 상황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도굴」의 내용 가운데 (ㄱ)경찰이 산속에 있는 이유와 (ㄴ)여러 명의 부대급으로 구성된 이유, (ㄴ)“별도 없이 검은 밤”까지 야간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던 사정은 충분히 설명이 된다.


  그런데 중석 도굴범을 잡기 위해 파견된 무장 경찰대가 정말로 삼캐기늙은이를 오인 사살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을 하기 쉽지 않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조선중앙일보』 등 당시 언론 보도를 검색해 보아도 명확한 기사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경찰관의 부상 소식은 보도되었지만, 경관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에 대한 기사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산에 산삼이 있고, 도라지와 더덕과 취와 같은 약재들이 있는 한 이를 채취하려는 심마니들과 약초꾼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삼캐기늙은이’와 같은 민간인이 도굴과 상관없이 당시 금강산 일대 어디서든 있을 수 있음은 확실하다. 또한 이들은 아침에 올라 저녁에 하산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양을 채취할 때까지 며칠씩 산속 생활을 하기 때문에 5천여 명의 도굴범을 체포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파견된 무장 경찰대와 마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도굴」에 도굴 이야기는 없고 심마니와 그를 피살한 경관들만 표현된 것은 논리적 타당성을 잃지 않는다.


  또한 삼캐기늙은이의 에피소드와 무장 경찰대의 도굴범 체포 활동이 별개의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도굴」의 시적 가능성이 허구로 전락하지는 않는다. 산에 무장 경찰대가 있는 게 비정상적인 만큼 약초꾼과 심마니들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관에 의한 민간인 사살이 비정상적인 만큼 그와 같은 기록으로써 ‘후취’로 표현될 정도로 귀하고 고운 산삼을 갈구하다 허망하게 죽음을 맞은 한 소박•순수한 인간에 대한 시인 정지용의 연민은 적실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도굴」은 사실 관계에 의해 지탱되는 시가 아니라 죽음의 비극성에 대한 연민에 의해 유지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도굴」은 세 가지 미적 감수성을 보여준 때문에도 시인 정지용의 위의에 부합하는 작품으로 보인다. 하나는, “심캐기늙은이는 葉草 순쓰래기 피여 물은채 돌을 벼고 그날밤에사 山蔘이 담속 불거진 가슴팍이에  앙징스럽게 後娶감어리 처럼 唐紅치마를 두르고 안기는 꿈을 꾸고 났다”는 표현이다. 늙은 심마니에게도 산삼은 여전히 귀하디귀한 존재이며, 그것은 산삼을 갈구하며 평생 피운 잎담배로 인해 ‘담속 불거진’ 그르렁대는 가슴으로 시각화되는 동시에 내면화된다. ‘담속 불거진 가슴팍이’는 심캐기늙은이의 간절한 내면이자 가래 끓는 신체적 외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꿈속에서야 만날 수 있는 산삼은 ‘당홍치마를 두르고 안기는’ 앙징스런 후취와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별도 없이 검은 밤에 火藥불이 唐紅물감처럼 곻았다”는 표현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죽은 심마니보다 죽인 ‘화약불’에 주목해 ‘당홍물감’처럼 고왔다고 표현한 것은 오직 산삼만 알고 산삼과 함께 산속에서 평생을 보낸 늙은이의 비극적 죽음을 표현하는 데 매우 적실한 비유이다. 결코 곱지 않은 것을 곱다고 말함으로써 새롭게 형성되는 의미의 파동이 여기에 있다. 캄캄한 밤 선홍빛으로 날아가는 총알의 시각적 이미지 속에 한 순수한 영혼의 간절한 바람이 불의에 중단되고 마는 비극적 정서가 겹쳐진다.


  세 번째는 “다람쥐가 도로로 말려 달어났다”이다. 산은 다람쥐의 땅이다. 산은 산삼과 ‘도라지 더덕 취싻’의 땅이자 산이 아니면 살 수 없는 뭇 생명들의 터전이다. 산은 심마니의 땅도 아니고 경관의 땅도 아니다. 그래서 심마니는 산을 오를 때 산신에게 제사를 바친다. 그것은 바다에 나갈 때 해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어부들의 습속과 같다. 놀란 다람쥐가 데구루루 말려서야 달아났다는 표현은, 죽은 심마니만 아니라 산 생명들도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어떤 충격에 휩싸였음을 표상한다.


  이와 같은 시행들은 늙은 심마니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자신의 삶을 그 운행에 맞추어 살아가는 자연주의적이고 범신론적 세계의 표현으로 해석될 때 깊이를 더한다. 농부가 땅을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산이나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도 대개 그것들을 귀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또한 여기나 취미가 아니라면 심지어 대도시의 직장인들도, 공장의 근로자들도 자신의 직업을 중시한다. 인간은 누구나 생명(계)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겸허해 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보면 꿈에서야 산삼을 만나는 늙은 심마니의 간절함은 산속에서 자연의 이치대로 살아가는 인간의 순수한 마음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무장 경찰대를 파견한 일제의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천혜 절경 금강산의 풍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중요한 자원인 텅스텐의 밀거래를 막아 총독부 통제 속에서 자원을 수탈하려는 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전시총동원령이 적용되던 시기의 중금속 텅스텐은 제국주의 전쟁 지도부에게는 인명보다 중요한 자원이었을 수 있다. 오직 텅스텐을 도굴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도굴범들의 풍치 파괴 행위 못지않게, 이들을 잡으려는 무장 경찰대의 무자비한 체포 활동도 금강산의 생명들에게는 위협이 되었을 터이다. 도굴과는 전혀 상관없는 「도굴」의 심캐기늙은이가 경관들의 ‘한쪽 찌그린’ 조준 사격에 의해 피살된 것도 이런 정황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런 점에서 「도굴」은 무장 경찰에 의한 조선인 민간인(심마니)의 피살을 다룬 점에서 일제의 잔혹함을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제국주의 정부의 자원 수탈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심마니로 대변되는 자연주의적이고 범신론적인 세계와 무장 경찰로 표현되는 비인간적인 물질주의 세계의 충돌로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도굴」은 이중적인 비판을 수행하고 있는 작품이다. 하나는 일제(경관들)에 대한 비판이며, 다른 하나는 물질주의 세계관에 대한 비판이다.


  끝으로, ‘도굴’을 제목으로 삼았으면서도 그 행위에 대한 일체의 묘사 없이 무장 경찰과 늙은 심마니만 등장시켜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중석 도굴 사건’을 다룬 「도굴」의 기법은 각별히 주목되어야 한다. 도굴을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결과적으로 도굴 사건을 완벽히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칫 뻔한 이야기로 흐를 수 있는 서사적 내용의 조리를 알 수 없게  만듦으로써 시종일관 ‘도굴’의 의미를 묻고 되물어야 하는 긴장 상태를 독자들에게 부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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