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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Sep 09. 2021

정지용의 「삽사리」

우리 문학 이렇게 읽기(8)


  그날 밤 그대의 밤을 지키던 삽사리 괴임직(사랑받을 만)도 하이  짙은 울 가시 사립 굳이 닫히었거니  덧문이오 미닫이오 안의 또 촉불 고요히 돌아 환히 새우었거니  눈이 키로 쌓인 고삿길 인기척도 아니하였거니  무엇에 후젓하던 맘 못 놓이길래 그리 짖었드라니  얼음 아래로 잔돌 사이 뚫노라 죄죄대던 개울물 소리 기어들세라  큰 봉을 돌아 둥그레 둥긋이 넘쳐오던 이윽달도 선뜻 내려설세라 이저리 서대던 것이러냐  삽사리 그리 굴음직도 하이  내사 그댈 새레 그대 것엔들 닿을 법도 하리  삽사리 짖다 이내 허울한 나릇 도사리고 그대 벗으신 고운 신이마 위하며 자더니라

- 정지용(1902-1950), 삽사리   전문



  한 편의 동화나 짧은 영화 같은 작품이다. 키 높이로 눈이 쌓인 고샅길 끝에 사립문 굳게 닫힌 그대의 집이 있고, 시적 화자는 인기척도 내지 않은 채 그 연인의 방을 지켜보고 있다. ‘둥그레 둥긋’ 달은 밝고 얼음 아래 개울물 소리 죄죄댄다. 그런데 고요한 겨울밤 삽살개는 무슨 일엔 듯 컹컹 짖어댄다. 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장면이다.


  인기척도 안 내었는데 삽살개는 왜 짖는가. 개울물 소리 때문에? 밝은 달빛 때문에? 그러나 화자는 “삽사리 그리 굴음직도 하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댈 새레 그대 것엔들 닿을 법도 하리”라며 소중한 연인을 지극히 아끼는 자신의 마음과 같이 삽사리도 그러한 뜻의 행동이라는 점에서 마땅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한 그것은 연인의 ‘고운 신 이마’ 곁에 얼굴을 대고 잠을 자는 삽살개의 행동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확실히 삽사리는 사랑받을 만하다.


  그런데 덧문도 있고 미닫이문도 있는 방 안에서 연인은 고요히 촉불을 켠 채 밤을 환히 새웠다. 이유는 명확치 않으나 화자는 그것을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행동임을 시사한다. 밤을 지새우는 연인을 바라보는 사람이 바로 화자이기 때문이다. 두 연인은 방 안팎에서 각기 밤을 지새우며 서로를 의식하고 있다. 그러니 겨울밤의 한기가 그다지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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