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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Jul 20. 2021

박목월과 서정주

우리 문학 이렇게 읽기(3)

"목월의 윤사월과 미당의 映山紅」 견줘 읽기"



  박목월의 짧고 단정한 작품인 「윤사월」의 얼개를 거칠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때는 윤사월(5월), 봄이 한창인 외딴 산봉우리에는 노란 송홧가루(소나무 꽃가루)가 부옇게 날린다. 인적 없는 산골 느리게 흘러가는 해는 더욱 길기만 하고, 꾀꼬리라도 울어 준다면 그것은 고요한 풍경을 깨우는 유일한 소리의 파문(波紋)이 될 터이다. 그 소리를 외로운 산지기의 더욱 외로운 ‘눈먼 처녀’가 문설주에 기대어 엿듣고 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날, 외딴집에 갇히고 시각의 무기력에 갇힌 ‘눈먼 처녀’의 심사가 시적 화자의 절제된 언어로 묘사되어 있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 박목월(1915-1978), 「윤사월」 전문(『상아탑』, 1946)     


  ‘눈먼 처녀’가 등장하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는 시각적인 이미지가 돋보인다. 관찰자인 화자는 (1)멀리 외딴 봉우리부터 처녀가 귀를 대인 문설주까지를 줌인하면서 찍거나, (2)귀를 쫑긋 세운 처녀의 문설주에서 시작해 꾀꼬리 울고 송홧가루 날리는 봉우리까지 팬(pan)하는 촬영자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광각의 화면에서 점점 클로즈업되는 영상이든, 그 반대의 앵글이든 모두 ‘눈먼 처녀’라는 핵심적 이미지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언어적 절제를 통해 외로움이나 쓸쓸함의 정서에 긴장미를 더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3음보의 율격과 7•5조의 자수율이지만, 각 연의 주요 시어마다 조사를 생략해 언어적으로 매우 견고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런 장치들의 조화 속에서 4연 8행의 짧은 「윤사월」은 단정하고 엄격한 작품이 되었으며, 이것으로써 봄의 일상적 어의에 반기를 드는 ‘눈먼 처녀’의 비극적 심사에 도달하고 있다.

   

영산홍 꽃 잎에는

山이 어리고

    

山자락에 낮잠 든

슬푼 小室宅     


小室宅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山 넘어 바다는

보름 살이 때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 서정주(1915-2000), 「映山紅」 전문(『미당 시전집 1』, 1994)     


  소실(小室)은 말 그대로 작은집이다.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는 이른바 첩을 말한다. 한 여성이 첩이 되는 사정이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 작품에서 소실댁의 내력은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소실댁은 ‘슬픈’ 사람이다. 왜 슬픈가. 남편은 어디에 있는가. 밤에도 없고 낮에도 없으며, 보름이 지나도 오지 않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소실댁의 슬픔은 남편의 부재와 그로 인한 외로움이 주요 원인임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집에는 툇마루가 있으니 아파트나 다른 공동주택이 아니라 전통 가옥이다. 농경사회의 전통 가옥은 가족공동체이자 노동공동체인 한 가정의 식구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다. 가족이 한 곳에 모여 살며 정을 나누고 음식을 함께하는 곳이 툇마루가 있는 집이다. 지금 그곳에 남편과 자식은 없고 놋요강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요강은 집 안에 화장실이 없어서도 필요했겠지만, 오줌도 거름에 보태던 농경사회의 생필품이었다. 외로운 소실댁의 심사가 놋요강에 은유되어 처연해진다.


  소실댁이 사는 마을은 고즈넉하다. 너무나 고요하고 맑아 ‘영산홍 꽃잎’에도 ‘산’이 어린다. 멀리 산이 있고 가까이 영산홍 있는 한 폭의 한국화를 상상한다면, 산과 영산홍이 서로 비추고 되비추는 물상임을 그려 볼 수 있다. 그런 산자락에서 낮잠이 든 소실댁 또한 자연과 사람으로 구별되지 않고 하나의 풍경 속에 그대로 포함된다. 그러므로 화면 전체는 외롭고 쓸쓸하고 슬픈 정조로 채워져 있다.


  영산홍 꽃잎에 산이 어리는 이 마을에서 멀리 떠나면 바다가 있다. 먼 바다의 물때는 지금 ‘보름 살이’(보름사리)다. 그믐사리와 달리 밝은 달밤에 집어등 효과가 나빠지는 보름사리는 조황을 장담할 수 없는 물때라고 한다. 미당의 다른 작품인 「자화상」과 「해일」에도 등장하는 ‘외할아버지’처럼 소실댁의 남편은 보름에도 바다에 나가야 했던 어부인가. 그가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도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 버린”(「해일」) 때문인가. 그래서 갈매기의 발은 ‘소금 발’이고 쓰라려 우는 것인가.


  「윤사월」과 「映山紅」은 모두 산골에 사는 외롭고 쓸쓸한 여성 주인공의 상황을 주관적 개입을 최소화한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하지만 「윤사월」의 처녀가 고적한 산속에서의 삶과 더불어 그 ‘눈멂’으로 하여 탈속적 순수성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한다면, 「映山紅」의 ‘소실댁’은 범속한 생활 세계의 고통을 견디는 오히려 세속적인 인간상을 떠올리게 한다. ‘눈먼 처녀’가 외로움에 맑음을 더한다면, ‘소실댁’은 외로움에 한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두 작품에서 보이는 목월과 미당의 시정(詩情)은 외로움에서 같고, 맑음과 한스러움에서는 다르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나아가 외로움을 굳이 더 세밀하게 분별해 본다면, 「윤사월」의 그것은 ‘사람 없음’이라는 어떤 절대적 고립에 닿고, 「映山紅」의 그것은 ‘남편 없음’이라는 상대적 고립에 닿는다. 또한 「윤사월」과 「映山紅」는 각각 꾀꼬리와 갈매기라는 새를 통해 외로움과 고통의 정서를 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고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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