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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Jul 29. 2021

백석의 「가무래기의 낙(樂)」

우리 문학 이렇게 읽기(4)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려 나는 왔다

 빚이 안 되어 가는 탓에

 가무래기도 나도 모도 춥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응달) 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우쭐댄다 그 무슨 기쁨에 우쭐댄다

 이 추운 세상의 한구석에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고 락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베개하고 누워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

- 백석(1912-1996), 「가무래기의 낙(樂)」 전문(『백석시전집』, 창작사, P.85)


* 가무락조개 : 백합과의 조개. 몸의 길이는 25mm 정도이고 둥근 모양이며, 껍데기는 갈색이고 가장자리는 자색이다.



  가무락조개와 가무래기는 같은 말로 모두 백합과의 조개라고 한다. 시적 화자가 빚을 얻기 위해 걸어가는 뒷골목에는 이런 조개껍질이 떨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빚을 구할 수 없어 마음은 더욱 추운데 문득 눈에 들어 온 길바닥의 조개는 화자의 신세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그래서 “가무래기도 나도 모도 춥다”.


  추위에 떨며 조개껍질과 신세를 다투던 화자의 태도는 순간 돌변한다. 다른 누구는 몰라도 가무래기만은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알아 줄 것이며, 나의 가난하지만 개결한 삶을 기뻐하고 좋아해 줄 것이라 자각했기 때문이다. 조개껍질은 길바닥에 누워서도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향해 크게 입을 벌려 욕을 대신해 주리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가무래기의 낙(樂)」에는 가난하고 춥지만 그런 속에서도 세상을 향해 욕을 내뱉을 수 있는 ‘맑은 삶’의 자부심이 배어 있으며, 이것으로써 세상의 참으로 많은 ‘가난하고 추운 사람’들의 어깨를 도닥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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