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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Jul 09. 2021

정지용의 「장수산(長壽山) 1」

우리 문학 이렇게 읽기(2)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벌목 정정(伐木丁丁)이랬거니 아람도리 큰 솔이 베혀짐 즉도 하이 골이 울어 멩아리 소리 쩌르렁 돌아옴 즉도 하이 다람쥐도 좇지 않고 묏새도 울지 않어 깊은 산 고요가 차라리 뼈를 저리우는데 눈과 밤이 조히보담 희고녀! 달도 보름을 기달려 흰 뜻은 한밤 이 골을 걸음이랸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 뒤 조찰히 늙은 사나이의 남긴 내음새를 줏는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노니 오오 견디랸다 차고 올연(兀然)히 슬픔도 꿈도 없이 장수산 속 겨울 한밤내-

- 정지용(1902-1950), 「장수산(長壽山) 1」 전문


  산판을 겪은 사람은 안다. 아름드리나무를 찍는 도끼질의 쩌렁쩌렁한 소리, 이윽고 그 나무의 맨살이 찢어지며 꺾어지며 퉁기는 ‘쩌르렁’ 소리. 골이 깊을수록 숲이 우거질수록 소리는 공명하며 더욱 웅장해진다.     


  그런 산은 사람들에게 저절로 어떤 신령한 기운을 느끼게 하고 삼가게 하고 겸손하게 만든다. 그런 깊고 깊은 골 앞에서 어린것들은 저절로 도리질하고 어른들도 삼삼오오 패를 이뤄야 들어가고 막무가내 왈패라도 주눅 들고 만다.     


  장수산은 대체 얼마나 깊기에 다람쥐도 좇지 않고 산새도 울지 않는가. 어찌하여 고요는 차라리 뼈를 저리우며 얼마나 맑기에 눈 내린 밤은 종이보다 흰 것인가. 황해도에 있다는 장수산은 달마저 보름을 기다려서야 흰 이마를 들고 ‘이 골’을 걷는다.     


  그러므로 장수산은 깊고 맑고 고요한 어떤 ‘흰 정신’으로 승화된다. 물질적 세계의 심산(深山)에서 우주적 정신의 고아한 높이로 상승하는 장수산은, 판판이 지고도 웃고 ‘올라가는’ 웃절 중의 무욕(無慾)과 초탈(超脫)의 깊이를 그려낸다.     


  ‘시름’은 바람도 일지 않는 고요에 심히 ‘흔들리우’지만, 그곳은 겨울 한밤을 슬픔도 꿈도 없이 홀로 우뚝하게 견디어서야 도달할 수 있다. 그러니 시인은 아직 ‘시름’을 품고 속세간에 있다. 도달한 장수산이 아니라 이르고 싶은 장수산이기에, 우리는 이 시로써 우리가 견디어야 할 ‘시름’을 견디고 또 견딘다. ‘겨울 한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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