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학 이렇게 읽기(28)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들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김종삼, 「묵화(墨畵)」 전문(『북치는 소년』, 1991)
‘여백의 시학’이라는 맥락에서 김종삼의 시는 의미와 무의미의 대립을 해체하는 미학주의 작품이다. “시가 시를 말하게 하고 시인은 깊은 침묵 속에 빠질 줄 아는” 작품이다. 그것은 의미 창출을 위해 시인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침묵을 통해 시가 스스로 의미를 형성하게 하는 미학주의라고 할 수 있다.
‘묵화’의 묵언(黙言)은 그 말 없음으로 하여 김종삼을 “‘민중시’가 목소리를 높여 가던” 70년대 시단 분위기 속에서 “기묘하게도 ‘절제의 시인’으로” 살아남게 했다. “모든 시들이 암울한 시대의 정치적 폭발을 향하여 치닫고 있던” 시대에 김종삼은 ‘가장 완성도가 높은 순수시인’이었다.
모더니스트 김종삼은 의미-무의미의 대립을 해체하는 ‘여백의 시학’을 통해 민중시의 리얼리즘적 기율을 넘어 ‘진정한 시인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