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週間作文」을 시작하는 글.
‘돈이 없다.’
「週間作文」을 시작하는 글.
545엔 하는 커피를 마시다가 300엔 하는 커피를 마시려고 하니까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다. 지갑에 돈이 두둑할 때는 오히려 100엔짜리 편의점 커피를 마셔도 그렇게 맛이 좋더니만, 상거지인 지금은 그야말로 245엔이 아까원 300엔 하는 커피를 마시니 맛은 맛데로 쓰고 기분은 기분데로 쓰다. 여유 있을때 즐겨 가던 카페는 ’Alpha Beta Coffee Club’라는 곳이다. 주말에는 자리가 시간제한이 있어 2시간 밖에 사용하지 못해, 평일에 주로 가던 카페이다. 핸드 드립카피, 니트로 커피, 에스프레소 등 커피 추출 방식도 다양하고 드립 커피 중에서도 또 원두 개수가 많은 날에는 6종류나 되기 때문에 선택권이 참 많아서 좋았다. 맛도 훌륭하다. 지유가오카역 정면 출구에서 5분거리에 위치한 이카페는 건물 3층에 위치해있다.(나는 2014년 이후로 지금까지 도쿄에서 살고있다. 지유가오카는 도쿄의 한 지명이다.) 카페의 반은 실내이고 반은 테라스이다. 테라스가 남향에 위치하기 때문에 낮에는 실내까지 햇살이 기분좋게 떨어진다. 공부 못하는 놈이 꼭 환경 탓 한다고 하는데 여기는 공부 잘하는 놈도 반 할 곳이다. 조용하고 쾌적하고 와이파이는 물론 전자기기도 충전 할 수 있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카페에서 전자 기기 충전 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없다. 무료 와이파이는 더더욱 찾기 힘들다.
300엔 하는 커피집은 ‘엑셀시오르’라는 체인점이다. 일본판 ‘카페베네’라고 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일본 좀 와본사람들은 알텐데, 그 ‘도토루 커피’의 상위 버전이다. 둘다 같은 회사이다. 이 카페는 흡연실도 있고 좌석도 넓고 또 전자기기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도 있다. 하지만, 뭐랄까 그 유니클로 면바지 같다고 할까. 취향이라는게 전혀 없는 곳이다. 그 바지 처럼 스탠다드 하긴 하고 어느정도 심플하고 멋도 나는데 굳이 내 바지 유니클로야 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그런. 왜냐 내 취향은 유니클로보단 멋지잖아?
‘엑셀시오르’에서 커피를 시키는데 내가 고를 수 있는건 ‘아이스’인가 ‘핫’인가 두가지다. (돈이 없어지니 이 선택지가 줄어드는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아이스 커피 쿠다사이.’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커다란 커피통을 꺼내 어름이 가득 담긴 컵에 콸콸 따른다. 저게 S사이즈인데 L사이즈 주문했다면 큰 일 났겠다 싶다. 내가 스무살때 한국에서는 아이스아메리카노만 죽어라고 마셨다. 그것도 아주 싸고 사이즈가 큰놈을 주는데로 찾아가서 이온음료 마시듯 마셔댔다. 그때는 한국의 커피 시장이 그랬다. 커피맛 보다는 가성비를 따지는 그런 시대였다. 커피좀 골라 마시려면 서초동 ‘고종의 아침’ 정도 였던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면 고종의 아침도 사실 커피 시키면 옆에 떨려 나오는 갓 구운 쿠키한점 먹으려고 갔다.) 한 벌에 300만원 하는 수트를 파는 곳에서도 캡슐 커피를 내줄 때 였으니까. 그러니까 그시절에는 선택지가 많이 없었다. 커피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도 높지 않았다. 그때는 잠깨는 음료 정도로 생각하고 마셨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커피를 사고는 2층으로 올라간다. 흡연실은 연기가 자욱하다. 비흡연실은 탁 트인 창이 그럴싸해 보이지만, 조악한 인테리어가 그 빛나는 자연채광을 모두 망쳐버린다. 가구 역시도 고급스런 나무로 한껏 멋을 살린 것 같지만, 합판과 시트지로 도배한 가구들이다. 마감도 좋지 않다. 좋아 보이는 것들에는 비밀이 있다. 마감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원목이 싸구려 씨트지로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합판대기 가구가 예술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다음번에는 ‘좋아보이는 것들의 비밀’을 주제로 마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 겠다.)
인테리어 이야기 시작하면 할말이 더 많다. 천장의 높이에 관련해서, 바람에 관련해서, 조명의 밝기에 관련해서 등등 정말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커피값은 값싸고, 나같은 거렁뱅이에게도 몇시간이고 이 더운 도쿄 여름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 카페이지 않은가. 모든 상업공간에는 그 목적이 있고 그에 걸 맞는 뚜렷한 디자인이 있을 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절간 떠날 용기가 없다면 참고 칼을 갈던가 아니면 겸허히 받아들여야지 불평할 일이 아니다. 누구는 돈 없어서 제발로 들어온 놈이 참 말 많다고도 하겠다. 여하튼, 이 글은 내 「週間作文」을 시작하는 글이다. 최근에 여러 시험에서 낙방하고 돈이 없어 정말이지 거지처럼 세상을 살고 있다. 그렇게 빈털터리로 세상을 살다보니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 낯간지럽지만, 작은 일이에도 감사하게 되고, 또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도 됐다. 디자인, 예술, 문학 등 이전에 내가 갖고 있던 시각이 180도 달라졌다. ‘나는 정말 보잘것없는 인간이였구나’ 라는 생각도 새삼하게 됐다. 마치 내가 공자라도 된 것 마냥 떠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고, 시쳇말로 꼰대 같은 소리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단지, 이번만큼은 정말 진실 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週間作文」을 써 보기로 했다. 음독만 해서 줄이면 ‘주작’인데, 나는 결코 ‘做作’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며, 정말 진실 되게 글을 쓸 것을 약속한다. 한 주에 한 꼭지 써갈 예정이다. 디자인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내 삶에서 내가 직접 보고 느낀 바를 토대로 쓸 예정이다. 실력도 모자르고 행동도 글도 모두 군둔하지만, 내 생각을 여러사람과 공유해보고 또 그안에서 좋은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2019년 10월 첫째주. 진실된 삶을 위하여.
시작하는 글 ‘돈이 없어서’를 마침. 다음 10월 둘째주는 ‘돈이 없어서 2’에서는 첫째주 카페 이야기를 이어서 경제 사정에 따라 얇아지는 선택지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풀이(디자인)에 대하여 이야기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