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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창 Apr 28. 2020

Last dance

디자인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이제 주짓수를 시작한지도 6개월째가 됩니다. 지낸해 여름 대학원 시험이 끝나고 지유가오카 근처에 사는 진성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전에도 진성이게 전화가 몇통이나 왔었지만, 입시 준비한다는 핑계로 만남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전화를 거니 일본어로 받습니다. 아무래도 제 전화번호가 저장이 되어있지 않았었나 봐요. 진성이를 본 것은 19년 봄에 발리에서 만난게 마지막이였습니다. '형이다, 기창이형.' 항상 텐셩이 높은 진성이가 아주 반갑게 맞이해줍니다. 형 이제 입시가 다 끝났으니까 얼굴 꼭 보자. 동네 주민인데 꼭 보자. 그렇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주말이라 오전부터 라멘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나카메구로 구립 수영장은 7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 야외수영장을 오픈합니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정말 한적한 야외수영장입니다. 태닝도 하고 독서도 하고 또, 수영만 할 수 있는 레일이 따로 있어서 운동하기도 참 좋은 곳입니다. 아, 얼마전에는 '형딱이'라는 유튜브를 보게 됐는데 알고보니 그 야외수영장에서 보안 요원을 하시던 분이더라구요. 세상 참 좁습니다. 게다가 한국인이라니. 아무튼, 그렇게 라멘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날씨가 너무 좋은게 오랜만에 수영장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진성이한테 연락이라도 해 볼까 하는데 느닺없이 진성이한테 연락이 옵니다. 설마 했는데 수영장을 가자고 하네요. 진성이는 참 바르고 착한 친구입니다. 정의롭고 유쾌한 친구입니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존경스러운 친구입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형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형은 할 수 있을거에요. 형 그 생각은 정말 멋있는 생각이에요. 응원할게요 형. 항상 긍정과 열정을 전해주는 정말 좋은 친구입니다. 진성이 이야기를 하려고 이글을 시작한게 아닌데, 진성이 이야기가 길어 졌네요. 


 수영장에 들어가니 진성이가 누워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안부를 주고 받고 수영 하고 태닝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진성이가 문득 '형 주짓수 한번 해볼래요?' 라고 권합니다. 지유가오카에 새로 생긴 주짓수 도장을 말하는 건가 싶었는데 거기가 맞더군요. 저는 크로스핏을 한국에 했었는데, 그 주짓수 도장이 '리복'마크를 달고 있어서 몇번이고 관심있게 봤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진성이 따라서 주짓수 체험을 하루 했습니다. 그날 코치는 토마스였습니다. 첫날에 무얼 했나 생각은 잘 나질 않았지만, 굉장히 고통스러웠던 느낌은 정확히 기억합니다. 크로즈 가드였는지 아니면 사이드 패스를 당하고 마운트를 당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질 않지만,  숨이 멎을 것 같은 상황을 맞이했던건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운동 끝나고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요즘 겪은 상황들, 별것도 아니구나. 토마스의 압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바로 주짓수 등록했습니다. 그때는 대학원 시험 결과가 아직 나오기 전이였는데, 합격할 것 같아서 지금은 학생이 아니지만, 다시 학생이 될 거야 라고 토마스에게 말하니까 그냥 학생 요금으로 절 받아줬습니다. 


주짓수는 내 모든것을 바꿔놓았습니다. 길었던 머리를 바짝 잘랐습니다. 여자와 술, 담배를 좋아했는데,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 포기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깨끗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타협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굴복하지 말자고 다짐 했습니다. 내 자신에게 지지 말자고 결심했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삶의 참된 가치와 내 인생의 철학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고통스럽고 힘들 운동과 훈련을 매일 반복하는 사람들에게는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나는 그날 그 분위기를 조금, 아주 조금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성이는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의 은인 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짓수는 제 꿈 또한 바꿔 놓았습니다. 제 꿈은 장인 같은 디자이너였습니다. 크리에이트브한 디자인도 좋지만, 무언가 나밖에 할 수 없는 고독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말 입니다. 일본의 디자인 교육 시스템은 도제식이 많습니다. 낮은 급료르 받으면서 일하고, 수당 없이 야근을 합니다. 내가 돈까지 주고 너를 가르치는데 야근 수당은 없다. 이런 곳이 많습니다. 21세기이지만, 격주 토요일로 출근하는 곳이 많습니다. 폭언이 난무하고, 폭력이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삶이 피폐해져 디자인을 포기하면 다시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너는 구제불능이라며 쳐버리는 곳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삶에 그다지 불만이 없었습니다. 디자인을 배우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진성이와 주짓수를 만나고 나서 그 생각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정의롭지 못하고 불합리한 곳에서는 나는 더이상 일 할 수 없었습니다. 타인의 철학과 삶을 고려하여 디자인한다면서, 자신의 스텝에게는 쥐꼬리만한 월급을 쥐어주는 사람밑에서 나는 더이상 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게 디자인이라면 디자인을 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정의롭게 살고 싶으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회사를 한번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를 반복했습니다. 나의 불만을 사장님에게 말하고 요구할 것을 요구 했습니다. 그러니, 사장님은 알겠다며 제 요구를 받아주었습니다. 하지만, 한달이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바로 사표를 냈습니다. 그게 4월 초 였고, 코로나가 일본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을때 였습니다. 


진성이는 3월 말부터 재택근무 중이였습니다. 나는 사장님이 4월 첫째주에 사표를 내고 그주부터 재택근무를 할 예정이니 집에서 4월 7일부터 재택근무를 하게되었습니다. 집에 있으니까 집중도 잘 안되고 나태해졌습니다. 그래서 진성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진성이는 일도하고 코딩 공부를 시작할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형에게 추천받았던 한국의 부트캠프를 소개해줬습니다. 그렇게 몇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진성이는 이 부트캠프를 수강신청한다고 합니다. 교육이 끝나고 지불 할 수있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그래도 가격이 천만원이 넘고 수강기간도 1년이나 되는 긴 여정이였습니다. 그런데 진성이는 그냥 신청하더군요. 나도 바로 신청했습니다. 주짓수도 코딩도 다 진성이 덕분에 시작하였습니다. 내 인생의 큰 은인입니다. 


나는 이제 한국에 갑니다. 14년 4월에 일본에 왔으니 만 6년을 살다가 갑니다. 6년의 일본생활중에 5년은 의식없이 보냈습니다. 진성이를 만난 1년은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올해 33살이 됩니다. 아직 어리지만, 절대 적은 나이는 아닙니다. 나는 디자인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가려고합니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이번이 아마 나의 마지막 도전이 될 것 같아요. 마이클 조던이 마지막 쓰리핏을 달성한 98년도 필 잭슨 감독의 테마는 'Last dance' 입니다. 나는 도전을 좋아합니다만, 이번 도전이 마지막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나는 도전을 끝내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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