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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진영 Nov 01. 2021

부고

10월의 마지막은 그의 마지막이기도 했다

류춘이 씨가 사망했다. 이름은 낯설지만 '고모'라는 호칭은 익숙하다. 가난한 삶을 꾸리느라 시장 한구석에 좌판을 열고 사계절 생선이 가득 담긴 붉은 함지를 앞에 끼고 살았다는 여자, 비늘을 걷어내고 지느러미를 자르고 툭툭 토막내며 네 명의 아이들을 거뜬하게 키워낸 사람이다. 어느날 찾아온 알치하이머는 그가 기억하는 모든 순간을 천천히 지우고, 먹고 걷고 눕고 앉는 간단한 행위마저 정지시켰지만 오십이 넘도록 가정을 꾸리지 않은 큰 아들만은 삭제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진 속 류춘이 씨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 표정이었다. 그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거나 무심히 바라보는 것 같았다. 향을 올리고 큰 절을 두 배 반, 상주들과 한 배 반. 사촌 오빠의 첫마디는 '우린 어떻게 이럴 때나 얼굴을 보냐'였다. 5개월 만에 상복을 바꿔 입은 우리는 그렇게 미지근한 손을 맞잡고 울지도 웃지도 않는 표정으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한 세대가 저물고 그 다음 세대가 늙어가고, 그 다음 다음 세대가 전성기를 누리며 뒤따르는 것은 순리다. 여든여섯의 큰아버지는 올해 아내와 남동생과 여동생을 잃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해 동안 스러진 어른들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보이지 않는 눈으로 형체를 더듬거나 소리를 들어 인지하는 그에게 나는 어떤 위로나 희망도 전하지 못했다. 그는 10월의 마지막 날 잠자리에 누우며 긴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내가 먼저 가야하는데' 같은 문장을 내뱉었을 것이다. 다음 다음 세대인 사촌오빠들과 언니들의 자녀들은 10대부터 20대까지다. 나는 그들의 이름도 정확한 나이도 좋아하는 색과 즐겨 읽는 책도 알지 못한다. 어디서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사는 동안 열 번도 마주하기 힘들 것을 안다. 참 예쁘고 참 고운 아이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할머니의 영전 앞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그 누구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는 것은 피 속에 전해진 선함 때문이다.


류춘이 씨는 더러 말을 날카롭게 쏟아냈지만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동생이 채워주고 간 쌀이나 연탄 같은 것들을 내내 기억하고 있었고 동생들이 힘들다 하면 쌈짓돈을 풀었다. 어린 시절 대전에서 만난 사촌들은 모두 좋았다. 엄마를 꼭 닮아 정 많고 따뜻한 큰 언니, 대체로 말이 없는 큰 오빠, 미소가 예쁜 다정한 작은 언니, 장난꾸리 막내 오빠까지 모두 나의 친 형제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류춘이 씨가 잘 키워낸 덕분이라고 아버지는 말했고 어머니는 수긍했다.


2021년 10월의 마지막. 류춘이 씨가 하늘나라로 간 날에 아버지 생각을 했다. 그곳에서 둘이 만나 어릴 때처럼 함께 다슬기를 잡거나 뛰어 놀거나 다정히 손을 잡고 걸었으면 좋겠다고. 눈물 대신 웃음이 더 많은 다른 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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