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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May 30. 2019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라이너 마리아 릴케

토르소를 이렇게 진지하게 쳐다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미완성처럼 보이는 조각이 완벽한 조각상을 만들어가는 기이한 체험. 머리가 있어야할 허공을 보면 토르소의 보이지 않던 머리가 보이고 그 시선이 똟어지게 응시하는 나라는 존재의 곳곳이 다 들켜버리는 느낌이었다. 시선을 돌려 뒤돌아 나올때면 등뒤에 꼽히는 시선이 걸음걸이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할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시선의 위력이 가히 아폴로의 위세처럼 느껴진다.


한번쯤 삶이란 것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언제든 남은 인생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기도 하거니와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터닝의 시점을 잡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하지만 그 터닝에 필요한 자각은 아주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온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가오는 위기의 순간, 그때는 이미 그 전환의 순간이 급박해지기 때문에 눈앞에 닥친 위기를 수습하다가 보면 많은 시간이 흘러가 때를 놓쳐버리고 만다. 내 삶의 위기를 보는 눈, 자각하는 감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거기 두 개의 눈망울이 무르익고 있던 
아폴로의 엄청난 머리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토르소는 지금도 촛대처럼 불타고 있다,
거기에는 그의 사물을 보는 눈이 틀어박힌 채, 

그대로 남아 빛나고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가슴의 풍만함이
너를 눈부시게 하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허리를
조용히 돌리며 보내는 하나의 미소가
생명을 가져다주던 그 중심을 향해 흐르지도 않으리라. 

그렇지 않다면 이 돌은, 두 어깨는 투명한 상인방 같지만
밑은 흉측하고 볼품없는 돌덩이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렇게 맹수의 모피처럼 반짝이는 일도 없고, 

그 모든 가장자리에서마다 마치 별처럼
빛이 비치는 일도 없으리라. 이 토르소에는 너를 바라보지 않는
부분이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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