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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May 29. 2019

혁명의 완성

길위에서 꿈을 꾸다.

 "대중이 구체제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이 정치의 각축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장벽을 부순다"면서 "역사적 사건에 대중이 직접 개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혁명의 가장 명확한 특징"이라고 강조한다.-러시아혁명사 서문


레온 트로츠키의 "러시아혁명사"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이 서문을 읽고는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을 수 없었다. 1,040페이지나 되는 책임에도 그닥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레온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사에서 레닌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사람 중에 한사람이다.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더할나위없이 모범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리어 혁명에 배반당하고  결국 스탈린에게 암살 당한 사람이었다. 러시아 혁명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진보는 분열로 실패한다는 딜레마가 오버랩되기도 한다. 러시아 혁명의 역사가 그러하다. 수많은 논리와 철학과 주의들은 파벌을 만들고 민중의 힘으로 굴복시킨 체제를 결국 또 다른 권력자에게 돌려주는 순환의 고리. 끌어내려진 권력은 항상 사회 곳곳에서 기회를 엿보며 파수꾼을 세워놓고 혁명이 스스로 분열하는 조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혁명의 역사는 그러한 반복의 역사였다. 하지만 역사의 속성에는 느리지만 한걸음정도는 진일보해가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2016년10월부터 6개월간 수많은 민중들은 광장에 있었다. 민중은 분노로 들끓고 있었고 농단의 실체가 하나하나 들어날 때마다 경악하고 분노했었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인원 1,500만명이라는 기록적인 인원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연일 권력자의 무능과 헌법유린을 성토하며 탄핵을 요구했다. 민중들은 부끄러웠고 분노했다. 민주국가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참담한 일들이 자국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났으니 세계의 조롱거리가 된 민중의 자괴감은 권좌의 자괴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연일 더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한목소리로 외쳤다. 분노는 희망과 기대가 전제될 때만 발생한다. 그리고 제 의지를 관철시킬수 있다고 믿는 상황, 즉 정치적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있고 자신이 그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더욱 분노한다.(한나아렌트) 그러한 분노였기에 시민들은 냉정할만큼 질서정연할 수 있었고, 혹여라도 있을 폭력의 빌미는 스스로 자제하도록 했다. 놀라운 시민의식이었다. 혁명하고자하는 의지가 그대로 담긴 전율하는 거대한 힘이었다. 전세계의 언론들은 이 수준높고 또 기이하기도한 혁명의 현장을 앞다투어 보도했고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을 부러워 했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올려도 아무런 이의가 없을 아름답기까지한 혁명의 현장. 시민들의 자부심은 세계 어느나라의 그것보다 더 높았다. 혁명의 촛불아래 정권은 국민의 힘에 의해 평화적으로 교체되었고 결국 우리는 기대를 담아 민중이 원하는 새로운 대통령을 자리에 앉일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그런 수준 높은 나라다. 그러나 이 수준높은 나라에 왜 자유한국당이란 정당이 아직도 건재하고, 30%가 넘는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지 모를 일이다. 분명 그들은 탄핵정부에 책임을 져야할 당이고 한동안은 자숙해야할 당이다. 수준높은 민중의 정치의식을 두려워 해야할 당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탄핵후, 당에 잔류한 부류는 차치하고, 탄핵과 함께 우린 다르다며 합리적보수를 외치던 수십명의 국회의원들까지 얼마지 않아 다시 자신의 판단이 옳바르지 못했다며 제발로 돌아갔다. 국민이 보내는 야유와 굴욕과 모욕을 참고. 그리고 자기네들이 했던 수많은 적폐적 행동들 블랙리스트, 사찰, 댓글조작 등을 현정부에 덮어씌어 양비론을 부추키는가하면 그것도 모자라 정부를 독재로 몰아세우고 희생자 코스프레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의 상상력과 억지주장은 도데체 어디까지 가능한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정당이란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양한 정당이 등장할 수 있다. 민주국가란 다양한 생각과 이념, 주장들을 수용하고 허용하는 국가의 형태이기 때문에 어떤 정당의 주장이든 사회의 질서와 안녕에 반하지 않는 다면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당들은 잠재적으로 다수의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홍보하고 설득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더욱 많은 지지자들을 추구하는 주장에 동조하게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생 정당이라면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치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더욱 많은 지지층을 확보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정당은 태어나고 자라고 성숙해지기도 하고, 때론 지지자가 없어 일찍 수명을 마감하기도 한다. 실로 한 정당의 생애는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격지 않은 한국 정당사의 유일한 정당이다. 자유당때부터 권력과 함께한 정당이다. 아니 어쩌면 일제강점기의 친일세력까지 포함한다면 그 역사가 유구하다. 한번도 권력으로 부터 소외되어본 적이 없는 정당이니 정책을 홍보한다거나 미래를 위한 근사한 비젼같은 것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권력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동조자일 뿐 그들은 권력자의 그 어떤 불의에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그들에게 국민은 없었다. 오직 권력을 가진 권력자만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기득권을 위해서.


논리적으로 이해가 불가한 이들의 행태에 가장 안타깝고 우려스러운 것은 다수의 국민들을 적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논리적 주장이라고 할 수 없는 막말로 국민을 편가르고 자기들과 동조하지 않는 국민들은 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제주4.3이나 5.18민주화운동에서 보듯이 국민은 토벌의 대상일 뿐 주권을 가진 국민이 아니었다. 그들이 국민을 대하는 의식수준은 나경원대표의 별창발언,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세월호와 5.18망언으로 여실히 들어난다. 그들에겐 오로지 30 몇%의 사람들만 국민인 정당이다. 사회는 그들의 바람대로 극도로 어수선해진다. 이들이 만든 진흙탕 속에서 국민들은 진보와 보수, 지역주의의 프레임속에 또 다시 극단적으로 양분되고 정치혐오를 넘어 국민들을 절망하게 하고 있으며 패배주의적 탄식을 하게 하고있다.


사회개혁은 강한자들이 약해짐으로써 이루어지지 않는다. 늘 약한자들이 강해짐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이 야당이 되었다고 약해진 것이 아니다. 이들은 늘 독사의 또아리를 틀고 다시 제기할 날을 꿈꾸며 사회곳곳에 분열을 조장하고 불만을 심어둔다. 정면에 있는 적만이 적이 아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한다면서 우리를 수단으로 밖에 보지 않는 자가 바로 진짜 적이다. (시몬느 베이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권력과 기득권 유지에 있으며 그 수단으로서 이용가치가 있는 국민만 있을 뿐이다. 권력에서 밀려난 그들이 아직도 좌빨, 좌파, 주사파, 김정은 대변인 등으로 이데올로기적 프레임 짜기에 몰두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프레임이 먹히고 있다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기인한다. 하지만 지금의 대다수 민중들은 그런 착오적 생각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2.28민주화 운동, 5.18 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으로 인한 학습효과와 IT의 발달로 인한 정보습득의 용이성은 국민들의 수준을 한껏 끌어올렸고 성숙하게 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개인으로서는 약해보일지 모르는 시민이 이젠 조직된 힘으로 더욱 강해지고 있다. 군부독재정권하에서도 우리는 실날같은 희망으로 꿈꾸었다.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처음부터 땅위에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다 보면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수많은 민주항쟁과 열사들의 죽음으로 막다름인것같던 곳에  또 길이 만들어지고 이제 그 길위에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은 가야할 길이 멀어보인다. 그러나 굽어진 그 길위에도 모퉁이를 돌면 우리가 꿈꾸던 고향이 보이듯이 이 시대의 민중들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있다고 믿는다. 시대와 역사를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큰 혁명적인 것에만 아니다. 일상의 사소한 변화를 통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 물한방울이 커다란 바위를 쪼갤 힘이 될 수 있는 것도 그런 것이다. 약한자가 강해짐으로 세상을 바꾸는 힘. 보잘 것없는 개인이지만 참여하고 힘을 보탬으로 새로운 길과 새로운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 깨어있어야할 가장 중요한 때가 바로 이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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