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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ul 12. 2019

책읽기 타자로부터의 자유함.

내 경험으로 책읽기는 엉망으로 살았던 하루에 대하여 놀라운 보상이다. 존재감이 최저점을 찍은 하루도 단 몇줄의 언어 소생기도 한다. 후회막급한 하루는 한없이 깊은 암흑같은 공허와 같다. 특히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일상이 거듭 반복되거나 직장 상사로부터 엄청난 질책을 받게 되거나 본의 아니게 하루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거나 할때는 심각하지만 생이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물론 생각으로만 ...


마치 누군가에게 떠밀려 살아가는 것처럼 시간은 내 의지와는 별개의 우연의 것들로 채워진다. 어제의 시간은 오늘의 시간을 만들어가고 다가올 미래의 시간도 그렇게 순간의 우연에 기인하여 만들어진다. 하루의 일상들은 어제와 같지만 미묘하게 어제의 선택들은 오늘의 순간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하루는 예기치않은 순간에 망해버리기도 하고 어떤날은 행운처럼 오기도 한다.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은 자칫 나약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감정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아무일도 아닌것처럼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은 타자에게 부딫혀 돌아오는 감정으로 살아간다. 그 감정이 증폭되기도 하고 또는 사그라져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타자에게 휘둘린 감정은 하루종일 내 머릿속을 떠돌며 나를 괴롭힌다. 아무리 분석해보아도 타자의 속내를 전혀 알길이 없기 때문에 수많은 경우의 수를 대입해보고 생각해 봐도 그것이 쉽게 이해되거나 용납되어 질리가 없다. 결국 될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식 결론을 내리거나 반대로 머릿속에서 꼬인채로 몇날을 고민하고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낙천적이거나 또는 비관적이거나 사는 건 그렇다.


나에게 책은 그러한 수많은 갈래길위에서 고민의 답을 찾아가는 일종의 열쇠와 같았다. 책을 읽다보면 하루의 일상들이 차례차례 떠오른다. 책에 집중할 수 없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책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되고 그 감정의 이입이 오늘 하루 나를  휘둘리게 했던 그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같다. 상처를 입은 일에는 위로를 받게 되기도 하고, 꼬이고 꼬인 일들에는 운좋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좋은 점은 역시 따뜻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책은 위로의 따뜻한 말로 가득차 있다. 작가는 신기하게도 글 여기저기에 나라는 사람의 삶을 곳곳에 심어두고 부드럽게 상처받은 마음을 쓰다듬어 준다.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가야하는 세계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에 투기되어진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지만 어차피 혼자 살아내어야 하는 세계다. 하루의 일상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관계속에서 오해로 상처받기도 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탓에 밀려나는 느낌과 함께 고독할 수도 있다. 돌아오는 퇴근길의 축쳐진 어깨를 어느누가 감싸주진 않는다. 함께사는 가족들이라고 해서 큰 위안이 되지는 않고 그런 복잡한 감정은 가족들마저도 갑작스런 거리감을 만든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는 결코 존재의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내속에서 정립되고 내속에서 결정지어져야한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외부의 영향에 휘둘리게 된다. 문제는 그 휘둘린 영향들이 내 마음에 큰 생채기를 낸다는 것이 문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늘 자신있게 말하지만 혼자있을때는 공허하다. 또 어떤 사람은 지독히도 못나서 자신감없이 살아간다. 이런 슬픈 현실에는 늘 타자가 존재한다. 그 타자로부터의 인정에 감정이 좌우되고 섭섭함 또는 혹시나 받고 있을 미움이나, 죽고 싶을 만큼의 고립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타자는 내 삶의 가운데 들어와 있는 사람이 아니다. 타자는 단지 주변인이고 내 마음에서 이방인일 뿐이다.


책읽기는 타자로 부터 자신을 보다 더 자유로운 상태로 만드는 것같다. 나는 퇴근 시간이면 곧장 집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퇴근후 몸을 씻고 곧바로 책상으로 가서 앉는다.  TV는 없다. 꼭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인터넷으로 보거나 거실에 있는 TV를 본다. 그마저도 특별히 보고싶은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TV앞에 상당시간을 앉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식사는 미리 직장에서 해결한다. 집에서 저녁을 먹을 경우 탄수화물 중독인지 쏟아지는 잠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앉아서 책을 읽기시작한다. 커피한잔도 있으면 너무 좋다. 그렇게 나만의 공간에서 책읽기에 몰두하는 두어시간은 나만의 우주이며 내 사유의 드넓은 숲이다. 그 숲은 날마다 커지고 나는 행복한 자유의 존재를 맘것 향유한다. 그 숲이 내뿜는 청정한 냄새는 마치 세로토닌과 같다. 하루에 지친 육신과 상처받은 정신을 치료하는 물질이며 죽는 순간까지 나를 성장하게 하게 한다고 믿는다. 그러면 비로소 수동적으로 타인의 감정에 휘둘렸던 나는 스스로의 능동적인 주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재앙처럼 충격을 주는 책, 깊이 슬프게 만드는 책,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숲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자살처럼 충격을 주는 책이 필요하다.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한다. Franz kafka
책은 정원이고 과수원이며, 저장고, 파티, 여행을 함께하는 동료이며 카운슬러, 여러명의 카운슬라가 되어준다. Henry Ward Bee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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