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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Mar 31. 2020

코로나 19

어떤 날은 의도치 않게 우울한 기분으로 시작한다. 먹구름이 가득한 그 음울한 대기의 색채가 또는 그 색감이 정신에 미치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하루가 우울해져 버리는 것이다. 코로나 19가 수많은 사람들의 폐 속을 옮겨 다니는 것을 보면서 죽음의 문턱을 밟는 사자의 그림자가 내 발밑에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과의 거리는 멀어지고 가슴은 자꾸만 차가워진다. 어제 만난 사람이 오늘은 갑자기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 사람과의 거리는 터무니없이 멀어져서는 유령처럼 허공에 떠있다. 짙은 안갯속에서 등을 돌린 채 멀어져 가는 사람들. 그들은 어딘가에서 몹쓸 바이러스를 밀어내고 있을 것이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지독한 고독과 부르짖는 침묵을  견뎌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도 오래도록 가족들과 함께 잃어버린 언어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말들을 쏟아내고는 가족이 되었다가는 또는 남이 되어버리고 있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는 불빛이 내는 안락함과 생명의 기운이 없어진 지 오래다. 숨어버린 것이 아니라 쫓겨난 사람들이 오히려 마음의 안락을 얻고는 서로의 등을 토닥이고 있다. 사자의 휘어진 칼이 깊숙이 눌러쓴 커다란 망토 속에서 번득이고 죽음을 기다리던 나이 든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람들은 때론 불행하게 때론 그동안 바라던 대로 자신의 소원을 채우고 있다.


우울한 기분은 아침부터 뇌 속을 마비시키고 엉뚱한 상상으로 혼란스럽다. 오늘은 여기가 끝인가 하여도 꺼진 촛불의 가느다란 연기를 붙들고 살아나는 불꽃처럼 자꾸만 멀어지는 마음의 꼬리를 애타게 붙든다. 눈을 감고 태양을 보아도 붉은빛이 검게 보인다. 출근길에 우연히 쳐다본 철탑 위의 십자가는 한 것 흐려진 날씨 탓에 죽음의 기호처럼 보여 허망하다. 살리자고 하는 표지인데 우습게도 죽음의 기호처럼 보이는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이기 때문이다. 얼기설기 아무렇게나 꼬여있는 전선들이 그 십자가를 지옥으로 끌고 가는 포박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십자가에 오히려 죽음이 꽂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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