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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un 27. 2021

베토벤 현악사중주

음악은 지금 이곳을 떠나가고 싶은 사람의 거주지다.

"음악은 '지금 이곳'을 떠나가고 싶은 사람의 거주지다. 거기에는 갈 수 없는 지난 세기와 모르는 언어가 있고 국가도 정부도 없다. " 


누가 한 말인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김갑수 시인의 책에서 본듯한데 기억은 잘 안납니다. 아무튼 음악을 이렇게 절묘하게 묘사한 문장도 드물겠다 싶어 적어두었던 글인데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제게서의 현악사중주는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가 처음이었습니다. 첫 음부터 강열하게 울리는 현의 소리는 마치 운명의 동기 같은 베토벤 5번의 첫음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의 운명은 열어졌히는 것이고 슈베르트의 첫 동기는 닫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과 소녀" 첫 악장에서 토해내는 첫음절은 현악사중주의 깊은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의 현악사중주는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이었습니다. 듣기에 어렵고 힘든 불협화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치 전위음악처럼 말입니다. 이렇듯 현악사중주의 듣기는 때론 어렵기도 하더군요.


이번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란 책을 읽게 된 동기도 바로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악사중주를 제대로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클래식에 대해 잘 모르는 초보중의 초보라 모든 것이 새롭고 가슴설 레게 듣고 있어서 현악사중주의 매력이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만, 왠지 현악사중주를 듣다 보면 작곡가의 내밀한 일기를 읽는 듯해서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암호 같던 멜로디들이 귀를 파고 들어오고 그 선율이 서사가 되는 특이한 체험은 교향곡이나 독주 피아노 같은 것보다는 조금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전곡은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지는 어쩌면 베토벤의 인생 이야기 같다는 생각입니다. 거기에 나성인 저자의 재밌게 풀어낸 해석은 저에게 현악사중주를 더 깊이 알게 하는 라이너 노트 이상이었습니다. 


작품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으면서 들었습니다. 마침내 16개의 현악사중주곡을 다 듣고 나니 베토벤의 소리라 할지 그런 것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작은 작품 하나에 깃든 베토벤 특유의 감정 같은 것 말입니다. 사실 여러 작곡가의 작품을 듣다 보면 일정한 리듬이 자주 차용되는 느낌이 큰데 그래서 한 작곡가의 음악이구나 하고 알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베토벤의 음악은 베토벤의 음악이지만 독창성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같지만 전혀 다른 창조물 같은 그런 느낌 말입니다.


"베토벤 음악의 힘은 보편성에서 나온다. 그 보편이란 다시 말해, 소리의 카타르시스를 통해 모든 의심과 갈등을 하나로 화합하여 이윽고 죽음에 대한 공포부터 삶에 대한 사랑까지 인간 감정 전체를 아우르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중에서 


내친김에 [인간으로서의 베토벤]이라는 에드먼드 로리스의 베토벤 평전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베토벤 아홉 개의 교향곡] 그리고 [베토벤 현악사중주]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베토벤]까지 베토벤에 관한 세 권의 책을 읽게 되었네요. 앞서 두 개의 책에도 베토벤의 삶에 대한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좀 더 많이 알고 싶어졌나 봅니다. 마치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더 알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음악이 내 삶의 마지막 거주지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클래식이라는 음악 장르가 왠지 제 감정을 뒤 흔드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삶이라던가 인생이라던가 하는 것에 깊게 생각이 빠져들만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일까요. 클래식 하나 듣는 다고 거창한 인생씩이나 들먹거린다 싶겠지만 삶이 녹아있는 그들의 작품들을 들어보면 머나먼 시간의 거리를 가로질러 같은 언어로 말하는 것 같습니다. 치열한 삶을 떠나 긴 여정의 종착지 같은 저마다의 마지막 거주지를 맘껏 즐기는 것도 자유로운 아나키스트의 삶이 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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