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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ul 02. 2021

피로회복제 Nocturn

늦은 저녁을 먹고는 오늘도 오디오 앞에 앉습니다. 컴퓨터 모니터와 양측에 조그마한 스피커를 두었습니다. 모니터 아래에는 비좁은 책상에 어울릴만한 조그만 앰프가 있고요. 책상 아래에는 중고로 산 CDP와 오래된 튜너. 책상 왼편엔 30년도 훨씬 넘은 턴테이블이 하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디오에 그리 큰 투자를 한건 아닙니다. 적당히 맘에 드는 음을 내주길 바라면서 장만한 빈자의 오디오입니다.  이 만큼도 제겐 과분하네요.


오늘도 읽던 책 하나를 들고 책에서 소개된 음악을 듣습니다. 요즘은 클래식만 듣고 있습니다. 재즈도 좋고 그냥 가요들도 좋은데 어쩌다 보니 몇달 전부터 클래식이란 장르에 온 맘을 뺏기고 말았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클래식에 푹 빠져 사는 분들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근데 이러고 있으니 사람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인가 봅니다. 


지친 하루가 음악과 함께 스르륵 녹기 시작합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들로 지친 몸과 마음을 음악이 만져줍니다. 영혼 깊숙한 곳에 들어오는 클래식 선율은 그렇게 하루의 피로회복제가 됩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엔 자면서 들을 CD를 고릅니다. 몇 장 되지 않은 시디들 앞에서 늘 고민스럽지만 대부분의 날은 쇼팽입니다. 쇼팽의 음반들 중에서도 단연 녹턴이 많아요. 다른 건 어쩐지 잠자리에서 녹턴만큼 편하진 않더군요. 


내겐 루빈스타인과 모라 빅, 피레스 그리고 백건우의 녹턴이 있습니다. 녹턴을 우리말로 야상곡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예전엔 녹턴과 야상곡이 같은 음악이란 걸 몰랐습니다. 밤에 듣기 좋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야상곡이란 말이 오히려 음악과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생각에 빠져드는 밤이라고 생각해보면 사뭇 운치 있는 녹턴의 번역인 것 같아서 그런가 봅니다.  


CDP에 누구의 녹턴이든 올려놓고 쇼팽을 듣다 보면 어느새 잠에 빠져듭니다. 어느 연주자의 녹턴이 제일 좋은가 묻는다면 아직은 초보라 어떤 특색이 있는지도 모르니 대답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그렇치만 백건우의 음반을 추천하고 싶기도 하네요. 왜냐하면 다른 음반들은 작곡된 순서대로 이지만 백건우의 녹턴은 순서가 조금 다르더군요. 처음엔 잘 몰랐는데 장조와 단조를 두장의 CD에 각각 수록했다는 사실을 알고 들어 보니 듣는 기분도 달라졌습니다. 약간 밝은 분위기의 장조와 어둡고 무겁지만 차분한 단조의 음악이 그때그때 감정에 따라 들어보면 정화되는 느낌도 듭니다.


녹턴의 첫 번째 곡은 7분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이 7분도 안 되는 연주시간을 넘겨본 적은 자주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당연하게도 내겐 1번이 제일 귀에 익습니다. 녹턴을 듣다 보면 늘 느려지는 삶이 떠올려집니다. 관조하는 삶의 여유랄까요.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내게 있는 녹턴의 연주자들은 나이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느 정도는 익어야 맛깔나게 연주할 수 있는 것이 녹턴인가 봅니다. 연주자는 작곡자를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쇼팽의 짧은 삶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거울은 어느 정도 삶을 살고난 후에나 가능한가 봅니다. 녹턴은 쇼팽의 가장 내밀한 목소리가 담긴 선율이기 때문에 그러한가 봅니다. 


녹턴을 듣다 보면 많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떠다닙니다. 음악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거나 슬픈 감정을 치유해주는 묘한 작용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 깊은 심연까지 무거운 마음이 가라앉을 때도 음악은 그 마음과 같이해서 더 슬프게 하기도 하고 그 끝까지 내려간 마음을 다시 함께 다잡아 주게 하는 것도 같아요. 세상에 수많은 음악들이 있지만 잠자리에 드는 이 순간만큼은 쇼팽의 녹턴이 지쳤던 하루를 어루만져주고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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