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기행 #13
왜 신앙을 위해 목숨을 버려야 하는지요. 한국의 어느 지역을 가나 맞닥드리게 되는 순교의 현장에서 가끔 나에게 또는 신에게 묻는 질문이다. 관아에 잡혀온 천주교도를 문초한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고 한다. ‘왜 천주를 믿느냐’고 물으면 순교자들은 떳떳하게 ‘내가 임금을 존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천상에 하느님이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됐는데 그렇다면 내가 따라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존재함을 알게된 자가 가지는 진리에 대한 양심. 하나님을 경외함이 목숨만큼 소중하다. 그래서 박해하는 자 앞에서도 믿음으로 알고 보게 된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아는 것을 모른다고 했을 때 생기는 자기상실을 그들은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11장1~3. )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은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 후서 4장18절)
믿음이라는 것이 참으로 신비하다. 보이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가물하여지기 마련인데 보지 못한 것을 믿는 믿음이야 말로 신앙의 신비로움이며 살아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싶다. 난 어렸을때부터 개신교 신자라 그런지 카톨릭 성경이 조금 어색하고, 하느님과 하나님의 차이도 어색하다. 오랜 시간 떠나있었던 믿음의 세계다. 하지만 요즘 성당순례를 하면서 조금쯤 신앙이 회복되는 것같아 머지않아 집으로 돌아갈 탕자가 될 듯하다. 그때도 탕자의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시리라 믿는다.
진교성당은 곡성에서 시작된 정해박해를 피해 하동의 작은 마을 진교로 삶의 터를 옮긴 박해받는 자들의 땅이었다. 정해박해는 1827년 곡성에서 시작된 박해로 이때를 기점으로 전국에서 500명이나 되는 천주교인들이 검거된 대규모 박해 사건이다. 조정에선 배교한다면 죄를 묻지 않았고, 믿음을 지키고자 했던 교인들은 모진 고문으로 고초를 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배교문서에 서약하였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 형장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했다. 검거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터전을 뒤로하고 깊은 산골로 숨어들었다.
진교성당이 있는 진교리, 때이른 더위로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성당이 있는 아래쪽에 주차하고 위를 올려다 보니 성당의 모습이 보인다. 성당의 겉 모습은 소박하다. 높게 철탑을 올린 고딕풍의 성당은 아니지만 건축적으로 꽤나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 지은 듯한 인상이다. 너른 앞마당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내는 오래된 나무들이 방문자들을 처음 맞는다.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햇살이 오묘한 색으로 성당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십자고 상뒤의 빛이 오묘하다. 맨 앞자리에 앉아 십자고상을 올려다보며 기도한다. 내 삶을 송두리채 들썩대게하는 지친 시간들에 대한 자기고백에 이어 옳바른 삶으로의 회기를 소원했다. 믿음이 없어 세상가치만을 좆아가는 못난 탕자의 고백도 이어졌다. 텅빈 성당에서 오로지 그분과 나만 있는 느낌. 그분은 빛으로 어루만져 주셨고 회복될 삶을 십자고 상의 눈과 상처를 통해 위로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