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기행 #17
여행길, 계획되지 않았던 장소에 우연히 들리게 되면 거의 대부분 기분 좋은 여행에 훌륭한 덤이 됩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백두대간 수목원 가는 길에 우연히 이정표를 발견하고 들리게 된 춘양성당. 춘양성당은 안동교구 소속으로 봉화군 춘양면에 있는 고딕 양식의 제법 규모가 있는 성당이었습니다. 넓은 대지에 우뚝 세워진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춘양성당을 알리는 커다란 석물이 있고 그 뒤로 조그만 정원에 입꼬리를 흐뭇하게 올라가게 만드는 성가정상이 방문객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시골의 성당들은 대부분 대지가 넓습니다. 춘양성당도 탁 트인 공간에 성당의 앞뒤 주변이 마치 공원처럼 잘 조경이 되어 있어 성당 주위를 산책하는 맘으로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성모상이 있는 곳도 잘 조성되어있고 성당 사무실로 쓰이는 뒤편의 화장실 문에는 아름다운 성모상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봉헌 초가 담긴 봉헌초 보관함 옆에도 십자가를 그린 이쁜 그림. 누가 그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사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붉은 벽돌에 그려진 그림은 주위를 화사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군데군데 놓인 벤치와 소나무들. 춘양 성당은 그렇게 우연히 오게 된 순례자의 발길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묵직한 성당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오묘한 빛들이 은은하게 성당 내부를 비춰주고 있습니다. 제대 양쪽엔 단아한 한복을 입고 머리에 쪽을 지은 성모상과 김대건 신부님의 상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줍니다. 둥근 아치로 창을 내었는데 둥근 아치는 마치 웃고 있는 눈썹 모양이라 부드러운 인상을 줍니다. 아무도 없는 아름다운 시골 성당은 곧바로 나만의 기도처가 됩니다. 빈 공간을 하느님의 음성으로 가득 채우듯 여행에 들뜬 마음을 따뜻하게 눌러줍니다. 일대일로 대면하여, 대화하듯 기도하는 경건한 장소.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청명한 하늘. 그 눈 시린 가을 하늘 밑에 세워진 아름다운 성당의 모습이 평온한 천국의 한 자락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며 서로 소중한 인연으로 살며 이해하고 배려함으로써 평화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 춘양 성당 사명선언문입니다. 신앙공동체의 순전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