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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un 17. 2016

브런치

표현의 기술- 유시민


글을 왜 쓰려하는 거지?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그냥 넋두리일까? 그냥 넋두리라면 노트에 적으면 되지 공개된 장소에 적는다는 것은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줬으면 하는 바램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치 않아? 그렇게 적다보면 가끔 어떤 사람의 글은 잘보이는 곳에 게시되고, 어떤 사람의 글은 읽히기는 커녕 쓰다만 노트처럼 서버 어디선가에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내심 서글퍼진다. 죽어가는 그 글도 분명 누군가에게 읽혀지기를 원하고 있을텐데. 하지만 글이라는 것이 본래가 그 글의 본질에 대한 진실성과 쓰는 이의 기술적인 면도 고려되는 것이다 보니 이런 불평은 조금 억지 스럽기도하다.


브런치를 시작한지 벌써 두달이 넘어간다. 22개의 글들을 올렸다. 대부분 책을 읽으면서 느낀 생활 속 감정을 쓴 것이다 보니 책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분들에겐 적합하지 않는 것같다. 어차피 나 말고도 많으니까. 그런데 써놓은 글들을 보면 내가 가진 진솔한 감정보다는 미리부터 읽는 이를 염두해두고 쓴 글들처럼 간지럽기도하다. 조회된 횟수를 보니 꽤 많은 것도 있고 아예 조회숫자가 10개를 넘지 못하는 불쌍한 것도 있다. 어떤 이는 나보고 관심종자냐고 한다. 앗 하고 그 말이 가슴을 찌르는 것을 느낀다. 잘 쓰고 싶고 많이 읽혀지기를 원하는 맘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걸 들킨거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내심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결국 내가 글을 쓰자고 마음 먹은 이유도 그런 것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내 생각에 공감해주고 그래서 결국 내이름으로 된 책도 한번 내고.....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그냥 꿈이다.  헛웃음이 난다. 그런게 이 나이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 모르는 것도 아닌데 기대감은 있어도 결국 허망한 꿈에 굴복하고 마는 자신이 서글프고 안스럽다.


내가 쓴 여러 글들에서 수없이 느낀거지만 난 책을 놓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유년기, 청년기, 그리고 30대까진 그럭저럭 책을 사고 읽고 한 기억이 있지만, 40대를 넘어서면서 거의 책이란 것에서 손을 놓고 살았다. 읽지 않으니 쓰는 것이 자유로울리가 없다. 2016년을 앞두고 다시 꺼내들기 시작한 책들이 제법 많아졌지만 호기있게 쓰는 것에 들이대기엔 가당치도 않다. 대략 1,000권쯤은 읽어야 내가 봐도 그럴듯한 글이될까? 한달에 10권을 읽어도 거의 10년가까이 걸린다. 너무 멀다. 할 수 없는 일이다. 읽으면서 쓰는 수 밖에. 그러나 무었을 써야하는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대략 소설이란 것을 한번 써보고 싶은 맘이 진한데 머리속에서 올라오는 스토리같은 것들이 전혀 없다. 브런치도 그런 순수문학엔 영 어울리지 않은것 같다. 여행기나 수필처럼 일상의 이야기들과 감성적인 글, 특히 정보관련 글들이 많다. 물론 시나 소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문시대이다 보니 여전히 긴 글은 인기가 없다. 보통 브런치를 만나는 공간은 지하철이나 버스, 그리고 카페에서 한번쯤 열어볼 수 밖에 없는 가벼운 것이기 때문에 긴 글은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그런 글이라면 일치감치 닫아버리기도 한다. 브런치를 쓰고 있지만 여전히 내겐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남아있는 것이다.                     

독서는 타인이 하는 말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책을 쓴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 그 사람이 펼치는 논리, 그 사람이 표현한 감정을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겁니다. 평가와 비판은 그 다음에 하면 됩니다. 저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글 속으로 들어가 더 많이 배우고 느끼고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읽어야 평가와 비판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이입해서 책 속으로 들어갔다 나온 다음, 자기 자신의 시선과 감정으로 그 간접 경험을 반추해 보는 작업이 비판적 독해라는 말이지요. (유시민 표현의 기술 - 153p)

얼마전 유시민작가의 표현의 기술이란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는데 그 중 읽는 것에 있어서의 "감정이입"이란 말이 늘 뇌리를 맴돈다. 사실 읽는 것이 그저 남의 얘기를 흥미있는 스토리로 읽는 경우가 많은데 유시민은, 말하고자하는 것을 배우고 느끼고 깨닫기 위해서 글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서 읽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인문학이든 강좌든 그리고 소설이든 이렇듯 감정이입의 대상을 찾아 읽어보니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글에서 느끼는 공감의 정도가 상당히 향상된 느낌이었고 쓸때도 감정이입을 고려해서 쓰다보니 상당히 매끄럽게 잘써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한 하위장아의 "호모루덴스"를 보면 imagination이란 말이 나온다. 즉 글쓰는 이가 마치 그 글의 주인공이 된듯한 감정을 가지고 연극적인 자기 표현을 통해서 훌륭한 글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놀이로서의 글쓰기다. 마치 아이들이 역할극으로 놀이를 하는 것처럼 내가 마치 작가로 빙의되어, 그리고 마치 그 글의 주인공이 된 듯한 자기암시가 글쓰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같기도 하다.


누구나 자기글에 늘 만족하는 작가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진정성 담긴 글들은 누구든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듯 자기고백을 듣게된다. 그런 독자가 많은 작가는 얼마나 행복할까? 작가는 죽지만 독자는 늘 태어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은 대목이다.


그런데 여담이지만 브런치에서의 이 작가라는 말이 참 매력적이다. 웃기는 얘기지만 이미 작가가 된 듯하다. 그만큼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블러거나 에디터보다는 작가로 불리어 지는 것이 더 멋지지 않는가? 분명 이것은 획기적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이 작가라는 호칭이 그냥 가입과 동시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한 매력이 있다. 몇개의 글들이 미리 쓰여져 있고 그리고 신청이라는 절차를 거쳐 승인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브런치 운영진에서 글들을 점검하고 작가라는 이름을 준다. 이러한 절차 또한 매력적이다. 신청하고 일주일 이상이라는 긴시간이 필요하다. 정말 검토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신뢰가 가는 대목이다. 어느날 브런치로부터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보는 순간 신춘문예라도 당선된 것같은 기분이 들었다면 너무 오버인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누군가 불러주진 않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이 참 어색하면서 기분을 좋게 한다. 누가 불러주진 않는다. 명함이라도 파야할 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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