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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ul 06. 2023

최초의 서양식 성당 약현성당

성당기행 #28

오랜 시간이 흘러 처음의 것을 본다는 것은 항상 마음을 설레게 만듭니다. 그 앞에 서면 세워지던 그때의 모습이 상상이 되기도 하고 초기 신자들의 피와 땀의 내음이 전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약현성당은 1784년 이승훈 베드로가 한국인 최초로 세례성사를 받은 이후 108년 만인 1892에 한국땅에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성당입니다. 100여 년의 기나긴 박해기간에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켜내며 지탱해 온 이 땅의 가톨릭이 마침내 성전을 건립하고 미사를 집전한 첫 성당이니 당시 신자들의 감격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은혜로 충만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건축기술과 재정이 부족하여 로마네스크양식과 고딕양식을 절충해 성당의 형태를 간소하게 하였지만 신자들이 벽돌을 직접 굽고 제조하여 사용하고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라는 면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성당입니다.


여름이 한걸음 저 멀리 뒤로 물러난 가을의 초입. 서울 중림동에 있는 약현성당을 찾았습니다. 서울의 성당들을 순례하기 위한 2박 3일의 여행기간 내내 좋지 않은 날씨로 조금 어려움은 있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을 만나는 기쁨은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하고 곧바로 중림동의 약현성당을 향해 궂은 날씨였지만 천천히 도보로 이동하였습니다.


얕은 언덕 약초가 많이 자란다 하여 약현이라는 이름이 붙은  고개 위에 세워진 약현성당은 100년이 넘는 기나긴 박해의 끝에 세워진 성당입니다.  조선시대 수많은 순교자의 사형집행 지였던 서소문 네거리가 바라보이는 곳에 성당이 건립된 것도 박해의 시대에 순교한 많은 선조들을 잊지 않고 이 땅에 하느님의 말씀을 곳곳에 전파하라는 사명처럼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1896년 3월에는 한국에서 최초로 사제서품식이 거행되었던 장소이기도 하였으니 사제들의 사명감 또한 성령충만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명동성당이나 대구의 계산성당처럼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만큼은 그 어느 성당에 견주어도 결코 작지 않을 듯합니다.


전체적인 성당의 규모는 작지만 석조건물이라서 더욱 단단해 보이고 내부의 제대와 장식들 역시 화려해 보입니다. 내부로 들어서면 중압감과 함께 경건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에 압도되고 맙니다. 성당 내부는 처음 지어지던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흰색의 주랑들이 더욱 무게감 있게 보입니다. 그 주랑들은 아치로 연결되어 또한 멋스럽기도 합니다. 제대 뒷벽은 붉은색 벽돌에 뾰족아치로 창을 낸 스테인드글라스로 치장되어 고풍스럽게 보였습니다. 이에 반해 회중석의 창은 창의 모양은 같은 뾰족아치이지만 그림으로 된 유리화가 아니라 도형으로 색을 내어 단순하면서도 격조 있게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고풍스럽고 격조 있는 성당 안에 앉으면 절로 두 손이 모아지고 기도하는 마음이 됩니다. 한참을 성당 안에 앉아서 삶에서 생긴 기도제목들을 내어놓고 간절하게 소원하였습니다. 오래된 성당의 향기 같은 것이 코끝에 마치 조용한 안개처럼 지나갈 때마다 하느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약현성당의 밖은 크지 않은 소담한 정원 같습니다. 성모동산과 시계탑 그리고 조각상 같은 십자가의 길이 또한 많은 것을 묵상하기에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에덴의 동산 같은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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