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기행 #25
1월경 전날 내린 눈이 아직 녹지않고 군데군데 하얀 꽃처럼 마당에 남아있었습니다. 차갑게 시린 하늘은 파란물이 쏟아질 것처럼 청명하게 떠있습니다. 전북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 223번지에 위치한 수류성당은 드넓은 평야와는 조금 떨어진 약간은 오지에 위치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화율리는 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가톨릭 신자들의 교우촌이 그 모태이기 때문입니다. 1895년 배재 본당에서 이 곳 수류리로 이전하여 수류본당으로 승격하였으니 수류성당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130년 가량이나 거슬러 올라갑니다. 1887년 한불 수호통상 조약으로 박해가 종식되고 비교적 선교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던 때였으니 숨어살던 이 지역의 신자들에겐 무엇보다도 성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1901년 10월 드망주주교님의 주례로 성당을 봉헌하였다고 합니다. 이 곳 수류리의 수류성당은 처음엔 목조로 지어진 성당이었습니다. 수류성당의 입구쪽에 있는 안내판에는 당시의 성당사진이 있었습니다. 입구쪽에는 목조로 올린 종탑이 아주 격조있게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성당은 1959년에 새로 지어진 성당입니다. 처음 수류성당을 마주하고 너무도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에 건축학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속에 담겨진 의미를 알고는 그 아름다움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수류성당은 일제말기 인근의 400세대가 모두 신자가 될 만큼 신심이 깊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신자들을 몰살하고자 미사중에 지른 화재로 목조건물은 전소되었고 화재를 피해 빠져나온 신자 50명이 공산군에 잡혀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수류성당은 이로부터 9년 후인 1959년 먹을 것이 모자라 겨우 연명할 수 있음에도 구호물자를 적립해 건축기금을 모으고 냇가에 가서 직접 모래와 자갈을 날라다 손수 벽돌을 만들어 성당을 건축하였다고 합니다.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마테오 복음서 13:44~46
이 처럼 수류성당은 자신의 안위보다 비록 자신들은 조금 덜 먹을 지언정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한 하느님의 성전을 먼저 건축한 것입니다. 수류성당은 아직도 주민의 대다수가 신자이며 오지임에도 미사참석자 수가 성당을 가득 메울 만큼 된다고 합니다. 문이 잠겨 아쉽게도 성당의 내부는 둘러 볼 수 없었지만 성당에 가득 베여 있는 그들의 신심은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수류성당의 신심이 깊어서인지 현재까지 20여명의 사제를 배출하여 그야말로 성소의 못자리라 할 만큼 가톨릭의 깊은 유서를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뜻한 빛과 하늘이 선사하는 여유로움 속에서 수류성당의 주변을 둘러보며 진정한 보물이 무엇인지 진정 기뻐하고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하는 하루가 되었습니다.
*수류성당은 보리울의 여름이라는 영화촬영지로도 유명하여 찾는 방문객이 제법되는 곳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