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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May 23. 2016

나는 왜 저인간이 싫을까?

죽도록 싫은 저인간을 어떻게하면 좋을까

우리는 사회생활하는 중에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이가 있다면 그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나의 기준에 맞도록 변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그 사람이 나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직장 내 위치를 이용해서 몹시도 괴롭힌다고 생각될 때는 특히 더 그런 생각을 하게된다. 자주 만나지 않는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내 삶에 영향을 끼 칠수 없는 사람은 그저 다시 않보면 그만이지만 직장내 상사나 동료들은 그렇치가 않다.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거의 매일 부딫히며 살아야하고 면대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결제서류를 들고 그 사람앞에 서야한다. 정말 죽을 만큼 싫다. 회식자리도 싫고, 같이 밥먹는 것조차도 싫다. 농담할 때도 별로 웃기지 않지만 웃어야 한다. 웃어주어야 한다는 것에 심히 자존심이 상한다. 그렇다고 항명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적절하지 않다. 이런 경우 거의 대부분 그 상사는 자신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있기도 하거니와 더 위에 있는 고위층들과의 관계성도 손발이 오글거릴 만큼 좋다. 때론 자신과 거의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에 만큼은 아주 근사한 안주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그 상사와 같이 있을 땐 자신은 외톨이가 되고 만다. 다른 동료들은 그 앞에서 아주 비굴하리만큼 굽신거리고 그 상사를 지켜세우기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난공불락이며 고립무원이다. 그 사람이 큰 실수라도 해서 윗선에 큰 못이 박힌다면 그나마 시원하거나 고소한 생각이 들겠만 이런 경우에는 거의 모두 승승장구하는 뛰어나거나 약삭빠른 처세술을 가진 인물이다.


오카다다사키의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라는 책에는 이런 것을 인간알레르긴이라고 정의한다. (이 책 제목 너무 맘에 든다. 딱 내맘에 든다) 알레르기라는 것이 원래 인간 면역체계가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물질에 대하여 이기거나 밀어내고자 하는 작용인데 작가는 이런 것이 인간 관계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요즘 나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로 인해 해결책을 찾고있다. 몹시도 싫은 인간 하나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런 중에 만난 책이 바로 이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우려스러운 점을 생각했는데, 이러한 자기계발류의 책들은 대게 근본적 원인을 독자 편에서 찾으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오롯이 자기가 바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마저 그런식으로 변해야하는 주체가 나라는 논조로 풀어 나간다면 하는, 다소 우려스런 맘으로 읽기시작했다. 우려가 곧 현실이된다. 오카다다사키는 이런 경우에 다른 직장을 찾아도 역시 그런 인간이 꼭 있다. 그러니까 독자가 변해야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로 그 우려를 현실이 되게했다. 답답한 일이다. 역시 내가 바껴야 하는구나. 그러나 그건 정말 어려운일이다. 그리고 끝까지 읽어봐도 어느 정도 다 아는 얘기다. 내가 찾아야 한다. 그 인간을 보내버릴 방법을.....


실제 어떤 사람이 싫어지게 되면 거의 증오에 가까울 정도로 싫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참 이상한 것은 그 증오에 가깝도록 싫었던 사람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같이 술자리를 하기도하고 믿고 따르기도 했고 될 수있으면 거의 모든 일에서 순종적으로 따랐던 사람이다. 이건 참 중요한일이다. 사람이란 서로를 잘 알게 될수록 싫어질 수도 있다는 것인가? 실제로도 그렇다 어느정도의 거리를 두었던 사람일수록 그 관계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직장생활에서도 서로 존대를 하고 격식을 차리고 그래서 서로가 자기 잡job외에는 서로 공통되는 것에 대하여는  서로 협력하게 될 뿐이다. 저 인간이 싫을 이유가 애초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난 지 불과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 벌써 몇차례 술이나 여러 취미 생활에서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면 주의해야한다. 그들은 벌써 형 동생하기 시작했고, 마치 어릴 적부터 만나 큰 산을 넘기도 하고, 큰일도 여러번 같이 격었던 동지처럼 행동한다. 그렇게 많은 만남은 아니지만 만날 때마다 이건 뭐 그런 동질감은 없을 정도로 친하다. 그사람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술한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인간을 판단하는 뇌가 우호적인 편이 되는 것이다. 참 좋은 사람이네. 그런데 이건 참 문제가 있다. 충분한 근거없이 감정적이며 주관적인 생각이라는 거다. 사람은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내린 결정에 대하여 쉽게 허물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신의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각에 반하여 행동할 때에는 급속도로 그 신뢰감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저 사람이 저럴 줄몰랐는데. 그러나 이건 오해다. 그 인간은 처음부터 그랬다. 그때는 그사람에게 별다른 기대감이 없었기 때문이고 특별히 기대할 이익에도 얽매여 있지 않았기때문에 그런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설사 그랫더라도 대부분 그럴 수도 있지머 하는 식으로 쉽게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제 그 인간이 싫어지기 시작한 시점에는 나 자신의 이익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 인간이 나를 위해 어느 정도 좋은 생각으로 대하리라는 기대감이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그 인간을 험담하기 시작하고 악의적인 말에 공감해줄 동료들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뒷담화에서 또 다른 동질감을 얻는 동지를 얻게된다.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선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생각하는 것인데 정치인들은 어떤 면에서 대단한 재량을 가진것 같다. 그들은 오늘의 적을 아군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오늘은 잡아먹을 것처럼 물어뜯다가 내일은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행동한다.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물과 기름, 좌파와 우파의 논리가 같이 섞일 수도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 과거의 상황이 악의적이었더라도 언제 그랫냐는 듯이 활짝 웃고 악수하고 친근한 허그를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아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과연 정치인은 무뇌적 인간이며 가슴이 없는 인간들이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도무지 그렇게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것을 해내니까 국회의원도 되고 그러는 가보다. 어찌보면 부러운 인간들이다. 내 맘대로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내편에서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국회의원이되자.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면 그들을 본받자. 이렇게 적고 보니 참 허무하다. 하지만 이런 것이 인간관계에는 참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국회의원들 그러니까 정치인들을 본받자. 그러니까 딱 꼬집어 말하자면 별볼일없는 정치인들이며 또한 나름의 정치철학같은 것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 오로지 뱃지만 중요한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이익에만 집중한다. 타인들에게 비쳐질 자신의 뒷모습 따위는 전혀 게의치 않는 사람들이다. 오로지 나만 좋으면 된다. 타인과의 관계성에서 촛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이런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오카다다사키는, 나라는 사람은 타인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가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관심없는 사람들의 관심따위는 생각지 말기로 하자. 내가 해야할 일만 충실하게 책임감있게 해나가자. 때론 내가 싫어도 웃어줄 줄 알아야한다. 그러나 조직내에서는 중요한 사람이 되자. 내가 싫어하는 그 인간이 결국 나를 필요로하고 그래서 그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식할 때까지 적이되는 것은 조금쯤 보류하자. 내가 아무리 그 인간을 싫어 해봤자 그 인간을 내가 속한 조직에서 먼 곳으로 쫏아 버릴 수도 없다. 묵묵히 참고 열심히 일하며 훗날을 도모하자. 그게 최상이다.


이런 일로 고민하는 나라는 사람은 어쩌면 이상주의자였다. 직장이 추구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조직의 모습을 내 식대로 만들어 놓고 시궁창같이 더러운 일면에 화가나서 괴로워하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하게된다. 여기는 우리의 신념을 위해 싸우고 지켜야할 푯대가 있는 곳이 아니다. 세상이 그렇다. 그저 다수의 사람들이 먹고 살기위해 참고 견디며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 그런곳이다. 너무 순진했고 너무 바보같았다. 그런 사람에겐 그런식으로 대하기만 했으면 됐을 것을 괜히 자존감에 상처만 받게됐다. 직장을 바꾸려 하지말자. 바꾸려고 발버둥쳐봐야 나만 손해다. 거기엔 내 이기심도 한몫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직장은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자기일에 그 누구보다 정통하게 실력있는 사람이 되면 저절로 바뀐다. 그 직장을 보는 눈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헛된일에 너무 애써서 증오하고 그래서 내 소중한 열정을 낭비하지말자. 그게 죽도록 싫은 저인간에게 복수하는 일이며 사람을 바꾸고 직장을 바꾸는 키워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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