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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ul 07. 2016

느낌의 공동체

시가된 산문-신형철

몇달전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화의 맨살"을 읽은 적이 있다. 읽었다라기 보다는 읽기에 도전했다는 표현이 맞을런지 모르겟으나 어쨋거나  이 무지막지하게 어렵고, 이해되지않는 현학적 허세(적어도 내겐)들로 가득찬 영화의 맨살은 나에게 엉뚱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탓에 영화비평집이라면 한번쯤 읽어보고 싶던 차에 우연하게 눈에띤 "영화의 맨살"은 왠지 제목부터가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일단 읽기 전에 저자인 하스미시게히코라는 인물에 대하여 그리고 그 책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보았다. 영화비평에 대해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한 인물이라는 평과 드디어 "영화의 맨살"을 국내에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호들갑스런 리뷰들과 뉴스들이 보인다. 호기심을 가질만한 글들이 많았기도 하겠지만 이미 맘을 정하고 있었으니 주저없이 "영화의 맨살"을 들었다. 하지만 몇페이지를 넘기지 못해 오히려 처참한 맨살이 들어난 내 지식의 한계를 절감했고, 내가 본 영화들이 영화라는 세계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들이였던지를 깊이 실감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숫제 그 책속엔 내가 본 영화들이 하나도 없었으니 영화에 대해서 만큼은 나름 자존감있다고 자부하던 나로서도 더이상 할말이 없어진 셈이다. 고전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  결국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몇 편 보게 된 수확말고는 - 히치콕 영화4편을 봤다는 건 대단한 수확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참 어렵고 힘든 책이었다는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하스미의 글은 문장이 길기로 정평이 나있다고 한다. 거의 한페이지가 한 문장으로 된 글도 있으니 어지간한 집중력이 아니면 읽어내기가 힘들다. "영화의 맨살"을 읽으면서 헤멜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도데체 누구에게 읽혀지기를 원하는 평론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평론이나 비평을 읽기 위해서는 그 책이 담고있는 1차적 텍스트에 대한 어느정도의 지식이 있어야 읽기가 그나마 편하다. 적어도 읽거나 본적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 비평이라는 한 분야가 독자들에게 외면받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비평가의 권위적인 비평자세 역시 비평문학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제아무리 이름난 평론가의 글이라해도 책읽기의 목록에서는 언제나 슬그머니 뒤쪽으로 밀어놓기 쉬운 책이되고 만다. 그런데 그렇게 "영화의 맨살"에 혹독하게 당하고도 평론집을 또 하나 들고 말았으니 바로 신형철교수의 "느낌의 공동체"다. 이 책은 묘하게도 평론집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저자 스스로도 산문이라고 밝혔으니 산문집을 가장한 평론집인 셈이다. 처음 이 책을 들고 목차를 살펴보면 충분히 시문학에 대한 평론이라 오해할 만하다. 하지만 정작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평론이라기 보다는 산문에 가깝다는 사실을 금새 느낄 수 있다. 산문이 또한 적절하게 시가 되기도 한다. 시에 대한 느낌을 적은 글이 그자체로 아름다운 시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저자는 시인과 그 시인이 토해낸 언어에 대하여 온몸으로 느끼고 감동한다. 그 감동이 읽는 독자에게도 그대로 느껴진다면 시가 뛰어난 것인지 그 시를 읽고 감동에 젖은 저자의 느낌이 뛰어난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시를 읽는 다는 것은 과연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    읽은   신형철 자신의   .        ....


시집을 읽은 적이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엔 시를 좋아했다. 특히 보들레르, 릴케, 프로스트를 좋아했다. 아마도 시인이셨던 국어선생님에 대한 영향이 큰 탓이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시인의 피를 유전자로 가지고 태어나지만 어느사람에게서 시인은 죽고, 또 어느사람에게서는 시인이 살아남는다" 참 느낌이 있는 말이다. "악의 꽃"을 들고 다니면서 감상적인 청소년기를 보냈으니 내게도 시인의 피가 흐른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 시기를 지나고서 지금은, 내 혈관에 존재했던 그 시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시집 한 권을 사서 읽지 않았다. 그런 내가 시에 대한 글을 읽는 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의 맨살"을 읽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아닐까. 그러나 "느낌의 공동체"에 처음 발을 딛는 순간부터 시에 대한 분석과 절묘한 해석으로 버무려진 비평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시에 대한 뛰어난 감상을 읽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신형철교수는 문장력뛰어나고 한국문학 특히 시에 대한 애정도가 깊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가슴엔 온전히 시인의 심장이 뛰고 있다. 시를 읽고 느낀 느낌. 그 느낌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하여 독자와 공동체가 되자는 것이다.   가가 . 신형철교수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썻다. 느낌은 희미하지만 근본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만큼 공유하기 어렵다. 잠을 자려고 하는 시인과 소설가들 앞에서 내가 춤을 추기도 했을 것이고, 내가 춤을 출 때 독자들이 잠을 자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 우리는 한 배를 타게 되지만 그 배가 하늘로 날아오를지 벼랑으로 떨어질지 대부분 알지 못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줄을 알면서도 그 어떤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젓는 일이다. 언뜻 거창해 보이는 이 책의 제목이 그 말의 가장 소박하고도 간절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를 나는 바란다.


이 책은 비단 시에 대한 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국에 대한 칼럼도 있고 소설에 대한 글도있다.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쓴 글을 한권의 책으로 엮은 것인데, 그 짧은 글마다에 마음을 움직일 만한 충동들이 구석구석에 박혀있다. 어떨 땐 잔잔한 파도를 그리고 또 어떤 경우에는 거센 파도와 같은 충격을 주기도 하였다. 결국 함께 생각하고 함께 느낌을 공유하자는 저자의 의도가 그대로 내게 전달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그가 쓴 글들의 모든 시와 책들을 진정 읽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이 점이 다른 평론가들의 책들과는 다른 점이다. 저자는 "영화평론은 영화가 될 수 없고 음악평론은 음악이 될 수 없지만 문학평론은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정홍수의 [소설의 고독]을 소개하면서 평론도 문학 그 본질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느낌의 공동체"야 말로 그 자체로 문학이된 평론이아닐까 생각된다. 읽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평론, 그리고 결국 그 책이나 시를 읽고 싶게 만드는 평론. 그래서 짧은 글들을 읽을 때마다 그 책들을 읽기위해 서점을 찾게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2009년 이전에 썻던 글들이라 소개된 책들 대부분은 절판된 책들이 많았다. 좋은 책은 수없이 재판되어야 함에도 대중적이지 못한 작가의 책은 이처럼 재판되지 못하고 몇사람만의 소장품이 되고 만다. 아쉽다.


얼마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상을 수상했을 때의 일이다.  5.18을 앞두고 한강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넷교보문고에는 준비된 재고가 없었다. 출판된지 10년이 가까우니 재고가 바닦나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맨부커 수상소식 이후 교보문고에는 각 지점마다 수십부에서 수백부에 이르는 재고가 검색되었다. 수상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채식주의자와 한강열풍에 휩싸였고 출판계는 오랫만에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님에도 단순히 시류에 휩싸여 책을 구매하여 읽은 사람도 있을테고, 이미 한강이라는 작가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독자들은 반가운 마음에 구매해서 읽었으리라 생각된다. 한강 자신도 이러한 한국의 독서 문화에 대하여 조금쯤 당황스럽다는 소감을 내기도 한걸 보면 우리나라의 독서 문화는 너무 대중적이기도 하다. 좋은 책들이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 재판되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느낌의 공동체"를 읽고 난 후의 아쉬움이기도 했다.


결국 다섯권의 책을 주문하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랬다. "로드" "카프카와의 대화" "몰락의 에티카" "인권의 발명" 그리고 "소설의 고독"을 주문했다. 시집은 아쉽게도 한권도 없지만 혹 서점에 들릴 기회가 생긴다면 꼭 몇권을 사고 싶다. 자격이 있는지 모르겟지만 "느낌의 공동체"안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꿈꾼다. 누구나 될 수 있기도 하고 그러나 누구나 될 수 없기도 하겟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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