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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Jun 30. 2016

종의 기원

정유정작가의 책을 처음 만난다는 것은? 

주말 아침 "7년의 밤"을 읽을 때 처럼 "종의 기원"도 그냥 내친김에 끝까지 달리고 싶었다. 정유정작가의 책은 "종의기원"이 비록 2권째 읽는 책이지만 처음과 마찬가지로 읽는 중간에 책갈피를 넣고 쉬기가 힘들만큼 스토리구성이 뛰어나다. 읽는 속도가 느린 나로서는 꼬박 5시간이상은 책에 매여 있어야 하지만, 책을 펴든 순간부터 내리 시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또 다시 몰두했다.  다들 이것이 정유정작가의 마력이라고들 한다. 한번 들면 놓지 못한다는 것은 소설의 가장 큰 덕목중에 하나가 아닐까. 이로서 그녀는 성공한 소설가이며 베스트셀러 작가됨의 이유이기도 하다.


정유정작가는 5년동안 신경외과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다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끝으로 전업한, 이력이 특이한 소설가이다. 그런 그녀의 소설엔 대부분 인간의 악에 대한 내용이 많다. 악의 본질을 밝히겠다는 거창한 인문학적 목적보다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를 인간내면의 악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잔혹한 묘사가 늘 따라다닐 수 밖에 없고 또 그 내용이 도를 넘을 만큼 잔인하기도 하거니와 비윤리적이다. 한데 간호사로서의 직업적인 면도 어느정도 영향을 끼진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내 아내도 수술실 간호사다. 나역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우리 둘은 잔혹한 하드고어류의 영화를 좋아한다. 병원에서 겪는 일상적인 죽음과 상처, 피 등등과 관련된 일을 하기때문에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어찌되었든 작가 역시 이러한 장르의 소설을 쓰는데 간호사로서의 경력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걸보면 그리 틀리지는 않을성 싶다. 


“소설이란 작가가 실험적 자아(인물)을 통해 실존의 중요한 주제를 끝까지 탐사하는 위대한 산문 형식이다(밀란쿤데라)” 


작가는 거의 3년이란 시간을 들여 "종의 기원"을 썻다고 한다. 썻던 내용을 두번씩이나 갈아업고 세번만에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하니 여기에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이 얼마나 컷던가 짐작할 수 있다. 정유정 작가의 실험적 자아가 세번씩이나 판을 뒤집어 업은 뒤에야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으니 그 산고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처음엔 너무 독해서 맘에 안들었고 두번째는 너무 약해서 맘에 안들었다고 한다. 소설가 자신이 용납할 수없는 소설은 세상에 내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번씩이나 새로 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주인공인 한유진은 싸이코패스다. 그래서 그는 감정이 없다. 어머니를 면도칼로 살해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보다는 사건의 뒷처리에 너무도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 참 독한 얘기다. 얼마전 스티븐 킹이 쓴 "별도없는 한밤에"란 중단편 소설집 서문에서 킹은 자기가 생각해도 너무 독한얘기라는 말로 본인의 스토리가 심상치 않음을 내비친 적이 있다. 누군가 정유정을 빗대 한국의 스티븐 킹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워낙 세계적인 호러작가이며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스티븐킹과 견주기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나름 한국적인 스릴러의 새장을 열었다는 측면에서는 설득력이 있기도 하다. 


언젠가 꿈을 꾼적이 있다.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어 잠에서 깬순간부터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앉아 있었던 적이있다. 누군가를 살해하여 화장실에 유기하는 꿈인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몇일 동안이나 계속해서 같은 꿈을 꾸다보니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두려웠다. 사람을 죽였다는 자괴감이 그당시 몹시도 나를 혼란스럽게 했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난 그 사건이 현실인지 아닌지 두렵다. 사람의 내면에는 이런 악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있는지 모른다. 다만 그 본성이 꿈이라는 형태로 표출되었을 뿐이다. 살인이라는 끔직한 행위를 비록 꿈이었지만 모호한 형태로나마 경험했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인 한유진의 심리안에 머물면서 싸이코패스라면 충분히그럴수도 있겠다라는 공감의 이유였기도 하다. 이런류의 소설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선택되어지는 것 역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대리만족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편의 재밋는 스릴러 영화를 본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그럭저럭 소설 한권을 읽은 가치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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