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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Aug 02. 2016

The Road

황량한 공간을 메우는 휴머니즘 - Cormac McCarthy

신형철교수의 책은 끊임없이 도는 미로와 같다. 얼마전 처음 대면한 그의 책 "느낌의 공동체"를 읽고 들게된 코맥맥카시의 [로드]. 신형철의 공동체 안에서는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나 큰 머릿속 장서가 된다. 장서가 빼곡히 차인 그 미로같은 책들의 목록을 걷다가 보면 혹 그곳에서 길을 잃을 지라도 행복하다.


언제인지 시간을 알 수 없는 어느때에 인간의 모든 삶이 폐허속에 묻히고 만다. 황량한 도시의 풍경 오히려 생명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이 기적처럼 보인다. 아우슈비츠의 수용자처럼 대충 옷가지를 둘러 만든 신발을 신고 잿빛 먼지가 눈처럼 쌓인 길을 무의식적으로 쓸며 걷는다. 수백만 광년을 날아와 눈에 박히는 좁쌀같은 희망이 두사람을 좌표없는 남쪽으로 걷게한다. 두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책은 아버지와 아들이 희망을 찾아 가는 험난한 과정을 아주 멀리서 바라본다. 몇 차례의 죽을 고비와 위험에도 꺼지지 않는 희망처럼 번번히 살아남는 것을 작가는 그리 긴박하지도, 그렇다고 느슨하지 않게 마치 늙은 아버지가 말하는 것처럼 나즈막하게 읇조린다. 그 이야기를 읽고 있던 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파란 바다를 상상했다. 함께 바라보는 그 희망의 종착지. 하지만 아버지는 폐 깊숙한 곳에서 기침과 함께 올라오는 선혈을 보고는 결코 그 희망을 둘이서 볼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아차린다. 그래서 아들의 기억속에 살아남기위한 생존의 방법들을 차곡차곡 채워넣어준다. 


"기억속에 넣어두렴 언제든 꺼낼 수 있도록"


시간적 공간, 지리적 공간은 확실하지 않다. 그것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구의 수명이 다하고, 아니 인간의 운이 다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오로지 나만 남은 것처럼 느껴지고 죽은 이들이 오히려 부럽기까지한 황폐화된 지구의 어느 공간에 너무나 여린모습으로 남겨진 두사람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묵시록의 한장면이다. 코맥맥카시의 묵시록을 읽으며 T.S Eliot의 황무지가 생각났다면 지구의 마지막 풍경을 읇조리는 맥카시의 글도 그 자체로 오롯이 시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마저도 시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불을 옮기는 사람이야"


식량이 부족해 자기가 낳은 아이를 먹는 극악의 카니발리즘속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자신들 속에 있는 인류를 위한 가느다란 희망조차 오로지 자신들이 옮기는 것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두사람에게만 남은 마지막 인간성이었을 것이다. 독자에게는 함께 걷는 그 긴여정이 쉽사리 버릴 수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남게된다.


책은 읽기가 쉽지는 않다. 과거에 대한 회상과 꿈과 현실을 그다지 설명을 하지 않고 써내려 갔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 읽지 않아서, 작가와 함께 그 황폐하고 어두운 세계를 보는 것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발자욱을 따라가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이들은 대단한 작품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이들은 너무 어렵게 읽었다고도 한다. 나 역시 읽기는 쉽지 않았지만 대단한 작품이라고 느꼈다면 제데로 읽은 것은 맞는 것같다. 


[로드]는 영화로도 나와 많은 이들이 보았다. 누군가 내게 이 영화를 추천한 적이있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 역시 그러했으니까. 책에서 상상했던 풍경들을 영화로 볼 때, 책에서 읽은 감동들이 실제화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만 아버지와 아들의 연기의 잘함과 못함을 떠나서 책속에 흐르던 그 애절한 감정만은 영화에서 다시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머릿속에서 그리는 그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영화가 그대로 표현해 내기엔 한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로드]는 묵시록적 시였다. 매카시의 묵시록과 엘리엇의 황무지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이 곳에는 물 없고 바위만 있다
바위만 있고 물 없는 모래사막 길
산간의 꼬불꼬불한 길
물 없는 바위산들
물 있다면 걸음 멈추고 마시련만
바위틈에선 걸음 멈추거나 물 마실 수 없어
땀 마르고 발이 모래 속에 빠졌다
바위틈에 물만 있다면
침 뱉을 수 없는 썩은 이빨의 죽은 산 아가리
여기선 서지도 눕지도 앉을 수도 없어
산에선 고요마저 없다
비 없는 마른 천둥소리만 울릴 뿐
산에선 조용히 혼자 있을 수도 없구나
흙 갈라진 집 문에서 내다보면서
벌건 침울한 얼굴들이 비웃고 으르렁거릴 뿐  


황무지 [The Waste Land] - 황무지에 장미꽃이 피기까지는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2006. 5. 22,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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