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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Mar 25. 2016

팽목항 II

팽목을 다녀오다

 어젯밤 숙취로 무거운 머릿속에서 문득 팽목가는 것을 이대로 자꾸 미뤄서는 않되겟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 그리움이 뼛속까지 파고 들어 아파했던 것도 아닌데 이렇듯 팽목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한달 내내 지워버리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김탁환이라는 작가의 글이 죽은 양심과 세월에 딱딱하게 굳어져가는 감정없는 가슴을 서서히 자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늦은 가책은 이미 신영복교수의 담론을 읽을 때부터 생을 깨우는 자극이 되어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 자극이 마침내 어둡고 습기찬 무덤에 누어있는 양심이란 것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도에서 팽목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골풍경에 다름아니었지만 달리는 버스안의 나는 차오르는 감정탓에 그 평범한 풍경에도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애써 추모의 모양새를 차리지 않아도 이미 가슴속에서 뭉클한 것이 올라와 마치 체한 것처럼 답답해졌습니다. 

 팽목마을에 도착해 팽목항까지 몇분을 걸었습니다. 팽목항에 내려도 되었지만 왠지모르게 마음의 준비같은 것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머리속에서만 그리던 그  황망한 풍경이 준비없는 눈앞에 한꺼번에 나타난다면 숨이 막혀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휘청거리게 할 만큼 맹렬한 바람이 쓸쓸한 팽목마을을 휘감고 나와 버스에서 내리는 나를 한꺼번에 덮쳐왔습니다. 팽목마을은 겨울이기도 해서 그렇겠지만 몇채않되는 집들이 얼어버린 겨울 찬 바닥을 간신히 붙잡고 서있는 것처럼 약해보이고 황량해 보였습니다. 지도의 남단 끝,  조그만 이 마을도 근 이년이나 되는 시간동안 많이 지쳐있는 듯했습니다.  새빨간 팽목항의 등대가 멀리서 점차 시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문득 걸음을 더 늦춰버립니다. 다리가 가늘게 떨리는 듯해서 걸음을 떼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몆 개의 가건물들이 보입니다. 제일먼저 보이는 건물은 분향소 건물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마치 묘비처럼 바다를 향해 녹슨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예수가 달려 있어야 할 십자가 중간에 노란 리본이 메달려 있습니다. 

마치 수장당한 어린 영혼들이, 살아남은 우리를 위해 먼저 희생의 십자가를 진듯한 형상이어서 목이 탁하고 막혀왔습니다. 흐리고 어두운 날씨 탓에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어 영혼들의 울음소리 같았고 그 바람은 녹슨 십자가를  쉼없이 흔들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뒤편으로 철망에 달아둔 리본들은 노란색을 잃어 회색 빛을 내었고 갈기갈기 바람에 찢어져 공간을 더욱 침울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치 구원을 기다리는 처절한 손내밈같이 세차게 흩날립니다. 손을 내밀어 그 연약한 손을 잡아봅니다. 얼마나 그곳에 메달려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스라져 먼지가 될 것처럼 약했습니다. 이곳 팽목을 향해 출발하면서 나는, 분향소에 들러 고개숙여 그들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막상 그 앞에 서니 분향소에 걸려있는 306개의 영정사진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분향소 문고리를 잡고 생각에 잠겼지만 끝내 그 문을 열지는 못했습니다. 죄송했습니다. 미안했습니다. 존엄을 지켜 주지 못하는 위정자들의 이기심과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감정없는 폭력들이 마치 내 탓인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하고 온몸이 굳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끝내 그 문을 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뒤로 물러나 등대가 보이는 곳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해안을 따라 내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다는 타다 남은 재를 탄것 같은 잿빛이었습니다. 마치 부패한 물처럼 한 뼘도 채 않되는 깊이도 보이지 않았고, 만지면 끈적끈적할 것만 같았습니다. 영혼들과 함께 그 바다마져도 슬픔속에 죽어버린 듯 했습니다. 잿빛바다는 바람이 그토록 세차게 부는 데도 또한 이상하리 만큼 큰 파도를 내지 않았고 낮게 낮게 방파제만 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잔잔함이 아니었습니다. 맹골의 바다는 마치 크고 세찬 강물과도 같았습니다. 듬성듬성 솟아있는 섬들을 휘돌아 나가는 강물은 물밑으로 큰 덩어리를 만들고 마치 홍수 때의 그것과 같이 무었이든 삼켜버릴 것처럼 성난 괴물과도 같았습니다. 그 강물은 또한 어두운 하늘과 맞닿아 거대한 구가 된 것처럼 보였는데 아무도 빠져나갈 수 없는 갇혀진 공간에서 물은 계속 돌고 도는 것만 같았습니다. 

옷깃을 더욱 여미고는 바다로 떠밀어 버릴 듯한 바람을 안고 걸었습니다. 바람에 머리를 들지 못하는 나는 곁눈질로 팽목항을 힐끔거렸습니다.  팽목의 모든 것들은 의아하리만큼 슬픔몸짓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2년이나 되어가는데도 시간은 그날에 머물러 있는 듯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유령처럼 내 앞에서 바다를 향해 통곡하고 거친 바다에서 조난자를 구조하는 듯한 환상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날의 슬픔이 아직도  작은 항구 곳곳에 묻어있어 결코 잊혀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바람에도, 하늘에도, 방파제에도, 등대에도 그리고 민박집과 여객선 대합실의 덜컹거리는 문 앞에도 어둡고 슬픈 그림자 일색이었습니다. 주민들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지친 듯 생기없어 보였고 낚시를 하거나 관광을 온 사람들의 얼굴은  마치 즐겁게 웃고 떠들어야하는 그들의 작고 소박한 권리조차도 이곳에서는 마치 허용되지 않는 금기인 것처럼 어두운 표정이었습니다. 

  방파재를 따라 난 길 끝에 빨간색 등대가 서있습니다. 길옆으로는 추모와 애도의 글들이 적힌 타일들이 박혀있습니다. 노란리본들과는 달리 타일들은 마치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하게 벽에 박혀있었고 큰 추모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애들아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적혀있는 글들이 하나하나 가슴을 찟고 통곡할 만큼 슬픈 글들이었습니다. 등대를 향해 걷는 내게 바람은 더욱 거세게 밀고 당기고 흔들어, 영혼들의 억울한 손길처럼 느껴졌습니다."내가 왜 이 찬 바다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데" "날 좀 꺼내주세요" "어두워요 숨이 막혀요" "내말 좀 들어보세요 왜 내가 이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데요" "내 말좀 들어보세요"나를 향해 어깨를 흔들어 대는 그 말들에 나는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듣는 것조차도 힘든 외침과 절규였습니다. 

“어쩌면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에 대한 판단은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에 얼마나 심각한 위해를 가했느냐 하는 것의 결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피터 비에리의 『삶의 격』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국민을 제데로 지킬 수 있는 메뉴얼하나 없는 나라입니다. 생떼같은 아이들의 작은 존엄도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 다자란 성인이 너무도 터무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처럼 이 나라는 그런 터무니 없는 실수로 인해 치르는 희생이 너무나 많습니다. 성장의 초기에는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이런 의미없고 엉터리같은 죽음앞에서는 분노와 함께 참담한 마음마져 들게 합니다.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 나라는 아무래도 시간이라는 망각의 약물에 너무도 익숙한가 봅니다. 노란리본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되었고 기억은 가족들만의 슬픈 트라우마가 되어 미친사람처럼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 힘없는 그들만의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곧 2년전 그날이 다가옵니다. 또 한번 온 나라가 그날의 기억을 들춰내어 슬픔에 졋어 버릴지 아니면 총선이 끝나고 어수선한 끝에 조그만 추도식이라도 열릴지 모르겠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죽은 영혼들의 억울함은 슬프고 괴로운 일이지만 무었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그날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다는 것은 그런 말도 않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않게 하겠다는 약속이고 맹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그날이 되길 소망해봅니다. 

월요일 무표정하게 등굣길에 서있는 또래의 학생들이 버스넘어 차창너머로 유령처럼 보여 흠칫 놀랍니다. 다녀온 팽목의 기억이 이미 내게 트라우마가 된 것같아 씁쓸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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