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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Sep 07. 2016

봉하마을에서 만나는 "세상의 혼"

세상의 혼-크리스토퍼 듀드니

시간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누군가 시간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한다면 무었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시간은 늘 우리곁을 채우고 지배하고 함께 살아감에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든 무거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다가 어떤 별빛은 3백만년을 달려온 빛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30년전에 출발한 빛도 있을 테고 천년을 달려온 빛도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빛은 늘 우리에게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네요. 지금이란 것이 과거일 수도 있고 또한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혼을 읽은지 벌써 10개월이 다되어 갑니다. 두번 읽는 책이 드문 제게 "세상의 혼"은 다시 한번 꼭 읽어 보리라 다짐했던 책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출퇴근하면서 근 한달을 조금씩 다시 읽다보니 하나하나의 문장이 아름다운 시처럼 마음에 새로운 즐거움을 주기도 했고 시간에 대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두번 읽고 세번 읽어도 참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어젯밤 불금의 숙취를 이겨내고 봉하로 가는 길입니다. 고 노무현대통령의 70주년 생신 기념 "봉하음악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을 대통령과 실제적으로 같이 공유할 수는 없지만 왠지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또한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한 잠재적 공유의 선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마치 별빛이 70년을 달려와 오늘 처음 그 빛의 존재를 알리는 것처럼 노무현이라는 존재가 다시금 내 마음에 새롭게 인식되는 하루가 되리라는 기대감에,  말랐던 마음이 출렁거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시간을 서로 다른 공간 안에서도 함께 나눌 수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영혼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겁니다. 작가가 제목을 세상의 혼이라고 작명한 이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듭니다.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에 그의 말들이 너무 가볍다는 질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늘 권위적이고 무겁고 진지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제든 직접나와 해명하려했고 설명했으며 토론했습니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임기쯤은 조금 줄어도 상관없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이런 그의 성격과 돌출 행동 때문에 보좌진들이 진땀을 뺏다는 후문도 이제서야  들었습니다. 그의 솔직함과 책임감있는 행동들이 그렇치 않은 대통령을 두번씩이나 격고보니 참으로 아쉽고 또한 너무도 소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중한 것들은 시간이 흐른뒤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라는 시간을 고민하고 또한 충실하고 진지해야한다는 말일 수도있습니다. 현재라는 시간은 너무도 빨리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것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사진에는, 특히 인물 사진에는 마술적인 면이 있었다. 인물 사진은 그림을 통한 해석이 아니라 직접적인 이미지였다. 사진을 찍은 그 순간에 시간은 정지해 있어 사람들은 이 작은 역사의 창을 통해 과거를 직접 재방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은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가상 시간 여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대통령직을 퇴임하고, 남은 인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며 국민들과 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함께지내며 소통하겠다는 생각으로 봉하마을에 들어왔을 그때는 없었던 것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의 묘지이며, 또 하나는 대통령의 추모관입니다. 어쩌면 그의 의지대로 죽어서까지, 봉하로 들어올때의 생각을 이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임 대통령이었던 그가 정적들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비참한 수모를 당하고 결국 당신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끊었지만 이곳 봉하를 찾는 발길은 한해 수십만을 넘고 재단 후원자만도 5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는 오히려 죽어서 그가 바랐던 바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에서 짠한 것이 올라왔습니다.


대통령의 추모관에는 깊게패인 굵은 주름만큼이나 치열했던 정치적 삶이 고스란히 베여있는 사진들이 있습니다. 그 사진들을 난 진지하게 뚫어져라 바라봤습니다. 마치 숨은그림이라도 찾을 것처럼 그의 열정들을 살펴봤습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카메라렌즈를 바라 볼 때 미래를 들여다 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후대의 사람들이 그 유리 눈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원칙과 소신대로 생각하고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나는 그 사진들을 통해서 정지된 과거를 거슬러 여행하고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을 다시 한번 되집어 보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과거의 결과를 한점의 오차도 없이 그 당시의 빛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으며 오늘의 현실에 대한 답을 말해주는 시간의 현신입니다. 그래서 사진은 오늘을 말하고 기록적인 면에서 보존가치가 있는 것이며 현재를 보여주는 거울이고 미래에 대하여 잘못된 것을 바꾸어 갈 수 있는 기회로서의 증거이기도 한 것같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지도처럼 사용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디 있었는지 가리킬 수 있고, 또 어디로 갈 것인지 계획할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의 지도 제작사이다. 언어의 도래 이후 이야기꾼들은 우리를 과거로 데러 갔고, 예언자들은 정찰대처럼 미래를 엿보아 왔다"



대통령의 사저는 완전 개방은 아니고 부분개방 즉 참관할 방문객들의 접수를 받은 후 그날에 정해진 수만큼만 참관이 허용되고 있었습니다. 관저 앞 마당 방문객들이 "나오세요 대통령님"하면 몇번이고 그들의 요구에 응해주고 나와서 짧게 또는 어떨때는 길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니 곧 대통령이 눈앞에 네하고 나올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가 했던 말들을 책(대통령의 말하기)에서 읽어보니 그의 소탈함과 격없음이 그데로 느껴졌습니다. 그리높지 않은 곳에서 어떨땐 같은 높이의 시선을 두고 방문객들을 향하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하고 자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시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자신은 당연 그가 살았던 시대를 이야기를 하곤했지만 그는 예언자처럼 오늘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더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생각하고 결정할 일들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는 시간의 저 먼 곳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를 정찰대처럼 엿보았고 설계자처럼 꿈을 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거기서 대통령을 보았던 나는 시간 여행자에 다름아니었습니다.


시간은 아끼던 것들을 빼앗아 가기도 하지만 어떨땐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도록 머물러 있기도 하는 것같습니다. 가고 없는 사람이지만 언제든 곁을 내주는 사람처럼 희망의 끈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그사람을 생각하면 옳바른 미래가 간절해지는 것처럼 아직도 마음속에 살아있는 대통령을 볼 때마다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언젠가는 이루어 진다는 신념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간은 다가오지 않도록 밀어내고 밀어낼수록 빨리 흐르기도 하고 또는 빨리오기를 고대하여도 더디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세상이 바뀌는 시간은 더딥니다. 바로 간절하게 고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은 살아 생전에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자신의 이임사를 통해 말했습니다. 어떠한 힘도 바다로 가는 물줄기를 막아서지 못하는 것처럼, 민주주의와 정의의 강물 또한 그의 외침처럼 결국 바다라는 목적지에 다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악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늦은밤의 버스는 처음 본 봉하마을과 그곳에서 느낀 벅찬 감정들이 차분하게 내 속에 자리잡기에 적당할 만큼 어둡고 잔잔했습니다. 별들은 적당하게 떠있었고 여름이었지만 적당하게 시원했습니다. 창에 비춰지는 내 얼굴도 밖의 적당한 어둠덕분에 흐릿하게 뭉그러져 꽤나 성장한 자화상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의 혼과 함께한 봉하마을의 짙은 감동이 버스안의 한시간동안 차분하게 정리되고 변하지 않는 견고한 대리석처럼 한구석에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뜨거웠던 여름밤이 그렇게 마무리 되고 있었습니다.


*아방궁이라고 퇴임후 연일 떠들어 대던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는 낮은 지붕과 아기자기한 구조로 되어있어 흔히 볼 수 있는 전원주택같았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국회의원의 집도 이정도는 되지 싶습니다. 집요하게 대통령을 음해하고 끌어내리려했었던 그 원인은 그날 봉하음악회에 참석한 8천여명의 관객들과 당일 봉하마을을 다녀간 2만여명의 평범한 국민들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질시하고 음해하던 그들은 이들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시민의 힘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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